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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Feb 02. 2022

장인어른 호떡 사건


직관적이며 돌려서 생각하지 않은 직진남 장인어른이 며칠 전 소주를 사러 마트엘 갔다가 먹음직스러운 호떡 사진이 떡하니 박혀 있는 작은 박스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요즘 밀키트니 배달음식들이 발달하니 냉동피자처럼 호떡도 데우기만 하면 먹을 수 있을 걸로 생각했다. 더구나 포장박스에 있는 호떡 사진은 너무나도 먹음직스러웠다.


서윗하기까지 한 장인어른은 이 호떡을 장모님과 함께 먹고 싶었다. 소주 안주 말고는 딱히 마트에서 사본 적이 없는 장인어른은 이날 처음으로 호떡을 마트에서 사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마누라, 요새는 마트에서 호떡도 팔더라. 함 데파(덥혀)봐라. 같이 호떡이나 하나씩 묵자. 마, 겨울에는 호떡 아이가!"


 단 간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장모님도 그날따라 호떡이 당겼다고 한다. 더구나 서윗한 남편이 사 온 호떡이니 즐거운 마음으로 잔뜩 기대하며 박스를 개봉했다. 생각보다는 가벼운 박스에 호떡이 몇 개 안 들어있겠거니 생각했다. 박스를 거꾸로 기울이자 큰 비닐봉지 두 개와 작은 비닐봉지 하나가 툭 하고 떨어졌다. 느낌이 쎄했다. 투명한 비닐랩에 싸인 호떡이 나왔어야 했다. 봉지를 들고 흔들어 보니 무슨 입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침침한 눈으로 비닐봉지에 적힌 글씨들을 읽어 보니 믹스를 물에 개서 반죽을 만들고 잼믹스를 넣어서 후라이팬이나 에어프라이에 구우라고 되어 있었다.




'아뿔싸! 내 이럴 줄 알았다. 이 직진 영감탱이.'


장인어른이 사 온 호떡은 호떡 믹스였다. 주방에서 이것저것 일을 벌이는 걸 딱 싫어하는 장모님 성격상 절대 만들어 먹지 않을 호떡. 제 아무리 간편한 믹스라도.


전자레인지에 대한 뜨끈한 호떡을 나눠 먹으려던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이것이 호떡이 아니라 가루였다는 사실을 알고 망연자실.




버리기는 아까워서 뜯지 않고 두었던 호떡 믹스는 우리가 접수했다. 그리고 연휴 마지막 날 나른한 오후에 막내딸과 함게 맛있게 구워먹었다. 무려 10개가 나오더라. 주방은 기름 천지가 되었지만 직진남 스윗가이 장인어른 덕분에 간만에 맛있는 호떡. 잘 구운 호떡 사진으로 장인어른을 위로해 드렸다. 다음엔 제가 가서 구워드릴게요. 장인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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