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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Oct 10. 2021

일요일 늦은 점심

서울서 시골밥상

일기예보는 정확했다.

오전 내내 묵직했던 먹색 하늘은


오후로 시간이 바뀌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장대비를 퍼부었다.


10월에 장마라니.


날짜를 몰랐다면


여름 소나기라고 해도 되겠다.



삼일 연휴 중에 가운뎃날.


보통의 일요일 같으면


벌써 다음 날 출근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스멀스멀 올라왔겠지만


쉴 날이 하루 더 남았으니


토요일 오후 급으로 여유를 부린다.



오전에는 커피 한 잔 내려서


베란다 마루에 앉아서


바깥을 구경했다.


음악도 곁들여 책 몇 페이지 보았다.


읽지 않고 보았다.



때에 맞춰 밥을 먹을 필요는 없지만,


출출해지기 시작해서 뭐라도 먹어야 했다.


비가 오니 장보러 나가기도 귀찮다.


이럴 땐 집안에 있는 재료를 활용해서


털어먹는 게 상책이다.



세상 만만한 게 김치볶음밥.


마침 오징어가 있었다.


대파와 양파를 달달 볶아서


단맛과 향을 올리고


잘게 썬 오징어를 볶았다.


스위트콘과 잘게 다진 김치를 넣고


수분이 날아갈 정도로 또 볶았다.


볶음밥의 생명은 질척거리지 않는 것.


살짝 데운 식은 밥을 넣고


알알이 분리되도록 이리저리 누르고 섞는다.


고슬고슬하게 되면 불을 끄고


부쳐둔 계란후라이를 올린다.


통깨를 뿌린다.


주말농장을 하는 지인이 주신 호박이 있어서


반찬을 급하게 만들었다.


다진 마늘과 양파를 살짝 볶다가


썰어둔 호박을 넣고


자박하게 볶듯이 끓인다.


20년 묵은 집간장과


간간한 광천 동백하젓으로 간했다.


두부는 그냥 먹어도 맛있지만


기름에 살살 지지면 더 맛있다.


양파와 파를 넣고 만든 양념장을


곁들였다.


비오는 날은 전이 땡긴다.


호박전은 비오는 일요일 오후의 주인공.


호박을 가늘게 채썰고


다진 청양고추를 더한 다음


밀가루와 튀김가루를 섞어


되직하게 반죽을 만들었다.


기름을 충분히 둘러 달군 팬에서


앞뒤로 노릇하게 지져냈다.


어릴 때는 지천에 호박이 널려 있어서


돌아보지 않았는데


나이 먹으니 호박같은 채소도 좋아진다.


어른의 맛이라고 할 만하다.


아내가 전날 끓여둔 된장국을 데웠다.


아내의 된장국 솜씨는 갈수록 좋아진다.


어머니의 된장 맛 자체가 좋기도 하지만


내가 끓일 때보다 훨씬 더 맛있는 걸 봐서는


솜씨의 차이가 분명히 존재함을 느낀다.


늦은 오후 밥상은


밥그릇을 싹 비우면서 끝났다.


아내랑 마주 앉아 밥을 먹는데


날씨와 완벽하게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한 순간에 잠시 행복함을 느꼈다.


향이 좋고 부드러운 연잎차 한 잔 하면서


일요일 오후의 여유로움을


그대로 연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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