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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an 17. 2022

말린 민어 한 마리

무엇이든 받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머리가 점점 없어져 가는 이유가 공짜를 좋아해서라는 우스개 소리를 실없이 할 때도 있지만 사실 나는 보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불편할 때가 많다. 마음의 빚을 지는 걸 싫어하다 보니 주는 편에 서는 것이 낫다.


그래서 뜻밖의 선물을 받을 때면 놀라기도 하고 내가 뭐라고 나한테 이런 선물을 하나 싶어 감동도 잘 받는 편이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마다 나를 살려준 것은 따뜻한 말 한 마디든 작은 커피 쿠폰 하나든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선뜻 내밀어준 따뜻한 손길이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시간과 자원과 마음을 내어주는 일이 쉬울 것 같지만 막상 행동으로 옮기자면 보통 일이 아니다. 나 스스로도 남들 SNS 포스팅에 좋아요 하나 누르는 것도 귀찮은데, 그 이상의 무언가 행동을 취해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제일 고마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나를 만나러 와준 사람이라고 답한다. 정말 그렇다. 점심 먹자고 멀리서 지하철 타고 여의도까지 찾아와주는 후배, 같이 사진 찍으러 가자고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서 나를 데리고 가는 친구, 앞으로 자주 못 보게 돼서 아쉽다며 커피나 한 잔 하자며 불러내는 동료. 온라인에도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내가 올린 SNS 포스팅에 잊지 않고 좋아요를 눌러주는 분들, 거기에 더해 글에 대한 감상평까지 남겨주는 분들(이건 정말 대단한 정성과 애정이 있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글을 공유해주는 사람들.


사람이 늘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없다. 때로는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질 때도 있고 스스로가 하찮게 여겨질 때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사람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작은 슬럼프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저런 분들이 마음을 다잡게 해주었다.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영상을 만드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주변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이제 민어 이야기를 할 때가 됐다.

고흥맛집 김나현 사장님은 여의도에서 남도음식으로 이름난 분이다. 손맛도 좋고 입담도 좋은 분이라 여의도 바닥에서 남도 음식 찾는 분들에게는 인기가 많다. 식당 벽에 걸려 있는 유명인들의 사인을 보면 이 식당의 영향력에 새삼 놀랄 만하다. 회사의 어르신들을 모시고 다니다가 맛있는 음식 나도 같이 먹자는 마음에 고흥맛집에 단골이 되었다.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사장님과 친해졌고 페친도 맺었다. 여의도에서 유일하게 사장님과 안면을 트는 식당이 고흥맛집이다. 잊을 만하면 찾아간 것 말고는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사장님은 나를 항상 좋게 봐주시고 뭐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하신다. 회사 주변에 그런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식당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일주일 정도만 있으면 이제 여의도에서의 7년 생활을 접고 광화문으로 간다. 섭섭한 마음에 다른 부서 동료들이 점심밥을 사 준다고 해서 겸사겸사 고흥맛집으로 예약을 했다. 예약을 한 후배가 내가 곧 광화문으로 옮길 거라고 귀띔을 했나 보다. 밥을 먹고 나오는데 사장님이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건네 주신다.

"삼춘(그 분은 나를 호근이 삼춘이라고 부른다.), 섭섭해서 어쨔요. 나가 줄 것은 없고 민어 말린 것잉께 명절 때 가져가서 잘 쪄 잡수시요이."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나이 들면 눈물이 많아진다. 음...원래 잘 우는 사람은 아니다. 정말이다. 내가 뭐라고 이런 대접을 받는가. 외국으로 떠나는 것도 아니고 겨우 강을 건널 뿐인데도 앞으로 자주 오지 못할 손님에게 저런 마음을 베풀어 주신다는 말인가.


귀인(貴人)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기꺼이 나를 위해 내어주는 사람이 귀인이다. 연초부터 귀인을 만나 큰 기운을 얻었다. 사장님이 베풀어 주신 따뜻한 마음을 잘 갈무리해 두었다가 봄보다 먼저 널리 퍼트려야겠다.

#고흥맛집 #민어 #말린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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