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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Dec 18. 2018

얼갈이겉절이

얼갈이겉절이. 얼갈이겉절이. 가만히 소리내서 읽어 보면 라임이 잘 맞는 랩 가사처럼 들린다. '-이'로 끝나는 말이 되풀이되기도 하거니와 글자수도 같다. 랩의 가사로 쓰이면 유행깨나 할 것 같은데 아직 발견하지는 못했다. 얼갈이는 채소의 명칭이니 그렇다 치고, 겉절이라는 말은 직관적이다. 얼갈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를 이름만 들어보고도 알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먹거리에는 조리법이 뒤에 붙는 이름이 제법 된다. 갈비찜, 오징어볶음, 닭무침, 떡볶이(물론 지금 우리가 먹는 떡볶이에는 볶는 과정이 없다. 아마 과거에는 달랐을 것이다.), 고등어조림, 갈치구이 등등. 읊어보고 보니 배가 고파진다. 


겉절이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겉절이는 김치의 아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김치는 절이는 데 하루, 양념을 바르는데 또 하루가 걸릴 정도로 만드는데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걸리지만, 제 맛을 내기까지 숙성이라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적어도 3~4개월은 지나야 김치라 할 만 하고, 1년 정도는 돼야 김치찌개나 김치볶음밥, 김치전계에 얼굴을 내밀 수 있으니 김치 입장에서는 만드는 데 10분이면 되는 겉절이를 발 아래 둘 만하다. 아류든 이류든, 김치든 겉절이든 취향과 입맛, 필요에 맞게 만들어 먹으면 된다. 사실 겉절이도 아주 훌륭한 음식이다. 숨이 죽지 않은 신선한 채소를 정히 씻어서 물기를 탈탈 털고 약간의 양념을 겉에 살짝 절여서 먹으니 제철 채소로 입맛을 돋우는 데는 그만한 게 없다.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양푼에 하얀밥 담고 갓 만든 겉절이 올려서 고추장, 참기름, 김가루 올려서 슥슥 비벼 한숟갈 가득 떠서 입안에 밀어 넣고 오물거리면 마땅한 반찬 없다는 말이 머쓱해질 정도로 맛나다. 물론 잘 지은 밥, 좋은 고추장과 참기름은 필수다. 


두고두고 먹을 만한 음식은 아니지만 겉절이를 만드는 방법은 본류 내지 형님에 속하는 김치의 맛을 지향한다. 얼갈이는 푸른 잎 부분에 상처가 나지 않고 시들지 않은 걸로 고른다. 마트에서 포장해 놓은 제품을 사는 우리들에게 딱히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지만 여러 개를 놓고 비교해 보면 개중에 나은 녀석도 보이기 마련이다. 고르고 골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찬물에 담가 놓거나 분무기로 물을 뿌려서 밀봉해 두면 아삭함이 살아나기도 한다. 얼갈이는 찬물에 잘 씻는다. 포기째 씻어도 되지만 밑동에 흙이 모여 있는 경우가 있어서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 다음 양재기에 물을 담아 놓고 헹구듯 씻는 것이 좋다. 다 씻은 얼갈이는 채에 밭쳐서 물기를 충분히 뺀다. 성질 급한 사람은 채소 탈수기의 원심력에 기대도 좋다. 샐러드가 드레싱을 멀리하여 눈쌀을 찌부리게 하는 이유는 다 물기를 제대로 털어내지 않아서이다. 겉절이도 마찬가지다. 국물로 질척한 겉절이는 겉절이가 아니다. 잘 준비된 얼갈이가 양념을 맞이할 차례다. 겉절이의 맛은 김치를 지향한다고 했으니 김치의 맛 하면 떠오르는 건 우선 매운맛, 짠맛, 감칠맛이다. 잘 익은 김치는 신맛도 오묘하게 돈다. 약간의 단맛도 균형을 잡는 데 필수. 그렇다면 양념 재료를 떠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매운맛은 고춧가루로, 짠맛은 소금으로도 낼 수 있지만 감칠맛을 더하자면 조선간장, 멸치액젓, 까나라액젓, 새우젓 중에서 취향에 맞게 고른다. 발효할 시간이 없는 관계로 신맛은 식초로 더하고, 단맛의 균형은 급한대로 설탕으로 맞춘다. 레시피에는 정답이 없다. 취향과 입맛이 있을 뿐. 그러므로 양념 재료의 비율은 내가 좋아하는 대로 정하면 되고, 이번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음에 고치고 고쳐서 나름의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게 답이다. 양념 재료는 한 번에 그릇에 넣어서 섞어서 만드는 방법이 있고, 모든 양념 재료를 따로따로 뿌릴 수도 있다. 버무린다기보다 슬쩍슬쩍 무쳐줘야 하는 겉절이의 특성상 양념장을 만든 다음 무치게 되면 골고루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그것 역시 각자의 선택이겠으나 나는 모든 양념 재료를 따로따로 흩뿌리면서 무치는 것을 좋아한다. 양념을 해서 무칠 때는 숟가락보다는 역시 맨손이 제격이다. 손의 섬세한 감각도 요리의 한 구성요소라는 믿음 때문에 비닐장갑은 잘 쓰지 않는다. 손가락을 잘 놀려서 부드럽게 골고루 섞으면 얼갈이 겉절이가 완성된다. 어떤 재료로 어떤 방식으로 조리하든 마지막 한 방울이면 한국음식으로 바꿔줄 수 있는 마법의 참기름 몇 방울도 좋다. 


이 얼갈이 겉절이를 나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한식 쿠킹 클래스에서 Fresh Kimchi라는 이름으로 가르쳐 준다. 샐러드와 다를 바 없으니 주변에서 한국 슈퍼마켓만 있다면 재료를 구해서 얼마든지 만들어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이 음식을 한식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Final Magic Touch인 Sesame Oil로 잊지 말라고 일러둔다. 100여명의 외국 손님이 다녀갔지만 몇이나 이 신선한 김치(Fresh Kimchi)를 만들어 보았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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