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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Mar 08. 2022

당일치기 혼자 김제여행(1)

첫 발을 떼는 것이 어렵지

글을 쓸 때 제일 어려운 것은 첫 문장을 쓰는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첫 문장을 밀어 넣기만 하면 그 다음은 비교적 술술 풀린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첫 발을 떼는 것이 제일 어렵다. 마음 속으로야 누구든 어디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대문을 열고 집을 나서까지는 여사 노력으로는 잘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혼자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은 몸과 마음이 가벼워서 쉬운 편이다. 그것조차 보통 일이 아니라는 사람도 있지만.


목포와 제천을 다녀왔고 기왕에 올해 안에 15개 소도시를 가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세 번째 도시를 정하는 일은 쉬울 줄 알았다. 첫 발, 두 번째 발을 이미 성큼성큼 떼었으니까. 우리나라에는 2020년말 기준으로 총 226개의 자치 시군구가 있다. 자치단체에 소속된 시군구까지 포함하면 무려 260개. 예를 들면 제주시와 서귀포시는 제주특별자치도에 속한 시라서 자치시가 아니다. 그러니까 제주시장과 서귀포시장은 선거로 뽑지 않고 도지사가 임명한다는 뜻이다. 이 글을 쓰려고 자료를 찾아보다 알게 되었다. 


열다섯 개를 그 중에서 고르는 일은 내 마음대로이긴 하지만 은근히 균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특정한 도에 치우쳐서도 안 되고 산이 있는 곳을 골랐다면 바다를 마주한 곳도 목록에 넣어야 한다. 생각이 많으면 실행이 늦다. 이러다가 어디도 못 갈 것 같아서 얼른 고른 곳이 전북 김제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기차로 바로 닿을 수 있는 곳이니까. 더구나 KTX가 정차하는 곳이기도 했다. 이미 많은 도시가 후보군에 들어있지만 몇 군데는 대중교통 사정을 생각했을 때 과연 당일치기가 가능할지 걱정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기차 한 번 타기만 하면 닿을 수 있는 곳은 매력적이다. 


방문할 지역이 정해졌다면 그 다음엔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할지를 찾아봐야 한다. 김제관광이라고 검색하면 많은 자료가 나오지만 나는 김제시 문화관광 홈페이지로 직진한다. 모든 지자체가 마찬가지다. 놀러 와서 돈 쓰라고 관광 홈페이지를 많은 돈을 들여서 만들어 놓는다. ㅇㅇ 8경이나, 가볼 만한 곳이라는 이름으로 그 도시가 가장 내세우고 싶은 곳이 잘 소개되어 있다. 차 없이 대중교통이나 걸음에 의지해야 하는 당일치기 여행의 동선은 짧다. 선택의 폭이 좁고 선명하다. 이동 시간을 빼고 현지에서 주어지는 시간은 근로시간과 비슷한 8시간 정도 되는데 서너 군데를 돌아볼 수 있다. 그러니까 도시가 자랑하는 대표 관광지 5순위 안에서 고르기만 하면 된다. ‘거기를 왜 가? 뭐 볼 것 있다고?’ 할 만한 곳이라도 최소한 한두개씩은 있다. 우리가 몰라줘서 그렇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든 흔적이 있고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걸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 여행은 사람의 수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다. 김제로 떠나볼까 이제.


영등포역에서 6시 38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를 타기 위해서는 집에서 5시 40분 쯤에는 나와야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날 밤에 준비물은 단단히 챙겼다. 노트북, 똑딱이 카메라, 노트와 필기구, 텀블러, 이어폰을 가방에 넣었다. 단절의 두려움을 잊게 해 줄 충전기도 잊지 않았다. 영하는 아니지만 한뎃바람을 마주해야 해야 하므로 위아래 내복까지 단단히 입었다. 조조할인이 되는 새벽버스는 한산했고 새벽 기차를 타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영등포역 대합실에도 한기가 가득했다. 헤드라이트를 켠 기차가 새벽의 어스름을 가르며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승객들이 띄엄띄엄 앉은 객차 안은 히터에서 나온 공기로 따뜻했다.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소리의 리듬에 맞춰서 단잠을 청했다. 내가 좋아하는 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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