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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an 16. 2022

당일치기 혼자 제천여행(5)

제천의 상징 의림지와 소도시의 풍경

종교도 영혼의 자유도 좋지만 배 고픈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없으니 제천에서 첫 끼니를 먹기로 한다. 현지인 택시기사님께 선택을 맡겼다. 현지인과 택시기사의 조합은 맛집을 찾는 데 최고의 조건이다. 알려지지 않은 나만의 맛집을 소개해줄 것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기사님을 안전을 택했다. 의림지 근처에 있는 깔끔한 묵밥집으로 안내했다. 현지인도 관광객도 모두 다 좋아하는 곳이라고 한다. 묵밥 정식은 15,000원. 식당은 깔끔했고 음식도 무난했다. 가격 대비 종류도 많고 푸짐한 편이라 가성비가 좋은 식당이라고 할 만했다. 


점심을 먹고 의림지로 향했다. 역사는 과거의 사건으로 지나가 버리지만 사건의 장소는 세월을 이기고 현재로 이어지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또다른 역사의 현장이 된다. 삼한시대부터 있었다고 하니 2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농업용수를 공급하면서 사람들을 살리고 있었다. 상류에 있는 제2의림지와 함께 여전히 저수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제천시민들의 휴식처로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엇보다 둘레길을 우레탄이나 나무 데크로 깔지 않고 흙으로 남겨 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제천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 쯤은 소풍으로 왔을 의림지에서 삼한시대의 흔적은 찾을 수 없지만 자연 모습 그대로를 최대한 유지하며 사람들을 품어준다. 마음의 고향처럼 언제나 찾아올 수 있는 있는 의림지가 있는 제천 사람들이 잠시 부러웠다. 의림지역사박물관은 월요일에 휴관이라 아쉽게도 관람하지 못했다. 


기사님과 약속한 5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장소인 교동민화마을에서 내리고 기사님과는 헤어졌다. 5만원을 결제하고 마음 속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좋은 기사님을 만나 제천여행이 즐거웠다. 교동민화마을은 민화라기보다 그냥 벽화마을에 더 가까운 듯 했다.사진을 찍으러 오기는 좋은 듯 한데 흐리고 추운 1월의 월요일 오후에는 적합한 곳은 아닌 듯 했다. 한 바퀴 10분이면 다 돌아볼 수 있는 곳이다. 그래 거기는 사람 사는 곳이지. 


처남이 밀양에서 공공미술을 하는데 처남 같은 젊은 예술가들이 시청에서 발주 받아 도시의 풍경을 바꾸고 있었다. 유행처럼 번진 벽화마을이 조금 더 지역색을 띠면 좋겠다. 벽화마을이라고 되어 있는 곳 어디를 가도 다 비슷해서 사진을 찍어 놓고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면 선뜻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소음, 쓰레기 문제가 발생하는 것처럼 내가 사는 곳이 너무 유명해지는 것도 현지에 사는 분들은 원치 않을 것이다.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 보호받아야 하지만 한편으로 그들이 조금이라도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주는 방향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서 온 객은 이렇게 아무 말이나 해댄다.


제천 시내는 관광이라고 할 것도 없을 만큼 평범한 도시다. 역전에 있는 관광안내소 해설사 선생님의 말처럼 이곳은 100년 넘는 건물이 거의 없다고 하니 볼거리가 있을리 만무하다. 사람 사는 평범한 지방도시의 풍경과 다르지 않다. 큰 길을 중심으로 번화가가 형성되어 있고 큰 길을 딱 한 블럭만 벗어나면 시간이 몇 십년 뒤로 물러난다. 이런 도시에서 여행자는 뭔가를 특별히 보려고 하는 대신 스며들기를 하면 된다. 현지 시장을 둘러보고 아무 데나 내키는 곳으로 들어가서 끼니를 때우고 주전부리를 사 먹는다. 그리고 스며들기 제일 좋은 방법은 프랜차이즈가 아닌 지역의 카페에 죽치고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러고 앉아 있으면 내가 여행자인지 현지인인지 티도 나지 않는다. 도시의 공기에 익숙해 지는 데도 안성맞춤이다. 제천서 드립 커피로 유명하다는 관계의미학이라는 카페에서 온두라스 원두로 내린 커피를 한 잔 하면서 언 몸도 녹이고 여행도 차분하게 정리했다. 카페 놀이는 맛집을 찾아가는 일만큼이나 나에겐 중요한 의식이다. 


저녁을 먹고 올라가기로 했으니 기차 시간 1시간 전에 카페에서 나왔다. 40년 전통의 막국수집은 5시에 갔더니 15분은 더 기다려야 된다고 심드렁했고 찹쌀떡이라도 사려고 간 분식집은 당일 재료 소진으로 영업이 종료되었다고 한다. 주말도 아니고 월요일에 조기종료라니. 유명맛집을 내가 너무 싶어봤나보다. 반성한다. 내가 가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다. 이미 카페에선 나왔고 더 있을 이유가 없어 급하게 1시간 빨리 KTX를 예매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다음에 방문할 곳을 남겨두는 것도 괜찮다. 제천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싶지만 사람 일은 알 수 없으니 지도에 잘 표시해 두었다. 사실 청량리할머니 냉면을 어떻게 하면 먹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싶어 택시를 잡아탔다.


제천여행은 서울 청량리에서 냉면으로 마무리되었다. 냉면은 겨울 음식이고 막국수나 냉면이나 거기서 거기 아닌가.


[비용]

아침 커피 2,800원

기차 왕복 9,200원 + 15,400원

점심식사(묵 정식) 30,000원

커피(관계의미학) 5,000원

관광택시(김영탁 기사님) 50,000원

택시 3,300

할머니냉면 5,000원


[일정]

0600 집에서 출발

0735 청량리에서 열차(무궁화)

0930 제천역 도착

1000 관광택시 탑승

1030 배론성지

1130 박달재, 목불암

1300 꿀참나무 묵요리 점심

1350 의림지, 솔숲공원

1450 교동민화마을

1520 관계의 미학 커피

1727 제천역에서 열차(KTX)

1830 청량리 도착

1845 청량리 할머니냉면

2030 집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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