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궁 Jan 15. 2022

당일치기 혼자 제천여행(4)

울고 넘는 박달재의 목불암

천등산은 지등산, 인등산과 함께 천지인의 조화를 이루며 서 있는 제천의 상징과도 같은 산이다. 그리고 천등산 하면 우리 님이 울고 넘었다는 박달재가 저절로 떠오른다. 영남의 선비들이 과거 보러 한양으로 가기 위해 넘던 고갯길이다. 산이 험하니 도적 떼도 있었겠고 주막과 로맨스도 있었을 것이다. 금봉이와 박달의 이루어지지 못한 애달픈 사연이 남았다.


서울로 유학가는 제천의 학생들은 박달재를 넘지 않는다. 박달재 아래로 시원하게 뚫린 38번 국도 박달재터널을 통과한다. 박달재 옛길은 거의 관광목적으로만 사용되는 과거형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현재진행형의 역사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천에서 박달재를 넘자마자 왼쪽 산자락에 목불암이 있다. 사찰임이 분명한데 현대적인 건물로 지어진 것도 낯선데 건물 안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은 어디서도 본 적이 없을 만큼 특이하다. 카페인가 싶게 생긴 건물은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인간의 의지와 공력이 어떤 힘을 갖고 있는지를 실감하게 된다. 



목불암과 오백나한상은 다른 방에 각각 모셔져 있는데 아찔한 높이의 거대한 느티나무의 속을 파내고 내부에 부처님과 오백나한을 새겨 넣은 작품이다. 오백나한상은 제작에 총 3년 반이 걸렸다고 한다. 나무의 크기에 놀라고 그 작품을 나무망치와 끌로만 만들었다는 데 또 한 번 놀란다. 오백나한상에는 직접 세어 보진 않았지만 오백 분의 각기 다른 표정을 가진 나한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불교를 믿든 안 믿든 한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이룬 작품을 보면 저절로 머리가 숙여진다. 오백나한상을 보고 있자니 그 다채로운 표정들이 정겹기도 하지만 고개 너머 배론 골짜기 토굴에 숨어서 두 자 짜리 작은 무명천에 깨알같은 크기로 만삼천자를 적었던 황사영이 겹쳐보였다. 1801년의 황사영은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글을 썼고, 2022년의 성각 스님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을 두드리고 있다. 종교는 달라도 종교적 신념을 실천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 진리를 결국 하나로 통하는 것이 아닐지.



마침 작업실에서 나무와 씨름하고 있는 스님을 만나볼 수 있었다. 우리 스님 많이 외로우셨는지 처음 보는 객에게 목공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요즘 세태에 대한 평론까지 거침없이 토해내신다. 몇 분이면 끝날 것 같던 이야기가 30분 가까이 계속되었다. 


목공을 누구한테 배운 적은 없다고 한다. 스승이 없으니 진 빚도 없고 넘어서야 할 기준도 없었다고 한다. 느리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처음부터 하나씩 하다보니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나무를 오래 다루다 보니 어느 순간 나무가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졌고 자신은 그저 나무가 가진 본성을 발견해주기 위해 애쓰다 보니 어느덧 작품이 쌓여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말씀을 듣고 보니 성각 스님의 법명은 깨달음을 이룬다(成覺)는 뜻이 아니라 어쩌면 본성을 조각한다(性刻)는 뜻이 아닐까 싶었다.   


목불암, 오백나한상에 이어 지금은 산신상 작업을 하고 있는데 작업실 뒤편에 파란색 천막에 덮혀 있는 느티나무 안에서 호랑이의 기운을 받게 해 주셨다. 산신상이 완성되면 성각 스님의 3부작이 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나무의 자성을 발현시켜주는 목공처럼 우리도 물질적인 화려함을 좇기보다 내면의 자성을 발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 드라마 하우스오브카드 시즌3, 에피소드 7에는 티베트 승려들이 백악관에서 모래 만다라를 만드는 장면이 나온다. 커다란 판위에 오로지 색을 입힌 모래만으로 몇날 며칠에 걸쳐 정교한 만다라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만든 작품은 완성과 동시에 붓으로 쓸어서 없애 버리곤 모래를 강물로 흘려 보낸다. 우리가 집착하는 눈에 보이는 화려한 물질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다.


전기톱 외에는 다른 전동공구 없이 오로지 끌과 나무망치로만 나무의 자성을 밝히고 있는 스님의 마음도 비슷한 것이 아니었을까.



종교의 형태는 달라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찾고자 하는 것은 참다운 인간됨이 아닐까.

어떻게 하다 보니 이번 여행의 주제가 '종교를 찾아서'가 되는 듯하다.


이전 07화 당일치기 혼자 제천여행(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