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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궁 Jan 15. 2023

제철 꼬막을 삶자 요리가 되었다.

그 남자의 요리생활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 우리 가족이다. 주말 요리를 책임지는 아빠에겐 매주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는 셈이다. 반응이 좋았던 음식을 다음 주에도 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3주 연속으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질리기 마련이니까. 취향이 각자 다른 가족들의 취향을 모두 만족시키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안전한 길을 택하는 건 제철 식재료에 눈을 돌리는 일이다. 요즘은 식재료의 생산, 보관, 유통이 워낙에 발달하다 보니 제철과 제철 아닌 것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뜬금없이 아무 음식 이름을 대도 검색을 위한 손가락품을 팔면 대부분 해결된다.


제철 음식이 따로 있냐 싶지만 제 때를 만난 식재료가 주는 매력을 거부할 길은 없다. 식물은 식물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제 본성을 지키며 사는데 그 본성의 변화가 우리는 먹기에 가장 좋은 때를 취할 뿐이다. 직업의 세계와 노동의 고단함을 다루는 방송에서 제철은 맞은 꼬막 이야기가 나왔다. 이 추운 겨울에 꼬막을 채취해서 가공하는 이들의 노고에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가 꼬막이 먹고 싶어졌다. 꼬막을 사다가 맛있게 먹는 것도 그들의 노력에 대한 자그마한 보상이라는 마음을 갖고 집 근처 수산시장으로 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그럴 싸한 명분이 충분하다. 단골집에 갔더니 티비에서 본 까만 망에 새꼬막이 잔뜩 담겨 있었다. 만원 어치를 샀다. 1킬로그램 조금 넘는 양이었다. 꼬막으로 배 채울 일은 없으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꼬막을 양재기에 붓자 경쾌한 소리가 났다. 찬물을 틀어 바락바락 씻는다. 고무장갑을 껴도 손이 시리다. 미지근한 물을 써도 될 법 하지만 행여나 꼬막이 숙회가 되어버릴까 봐서 찬물을 고집한다. 갯벌에서 자란 꼬막은 생산지에서 세척하는 과정을 거쳐도 먹기 전에 씻어야 한다. 껍질의 골과 골 사이에 낀 이물질도 있고 표면에 묻은 뻘도 있다. 깨끗해질 때까지 서너 번 씻는다. 아무리 깨끗하게 씻어도 끓이면 불순물이 나오지만 음식에 정성을 얹는 건 정서적인 면보다는 기능적인 면이 더 크다. 잘 씻을수록 꼬막맛만 난다. 꼬막이 잠기도록 물을 붓고 삶는다. 삶으면서 한쪽 방향으로 저어 주면 꼬막이 잘 까진다고 해서 다들 그렇게 한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꼬막을 일렬종대로 세워놓고 그 위치를 한 번도 바꾸지 않고 한 방향으로 저을 수 있다면 관자가 붙은 쪽이든 반대쪽이든 한쪽으로만 살이 몰리겠지만 한쪽으로 젓든 휘젓든 끓는 물속에서 꼬막은 이리저리 굴러다닐 뿐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같은데 혹시 이것 때문에 맛없어지나 싶기도 하고 반박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 소심하게 저어 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표면으로 거품이 생기기 시작한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이 거품이 맛있을 리가 없으므로 걷어낸다. 꼬막 삶은 물은 버리기 때문에 거품을 굳이 걷어내야 하나 싶기도 하다. 그대로 두고 삶은 다음 체에 밭쳐서 거른다고 해도 거품의 일부가 다시 꼬막으로 돌아가 고약한 맛을 낼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일로 바쁘지 않으면 걷어내는 것이 좋다. 탁한 꼬막 삶은 물만 봐도 얼마나 깨끗하게 씻고 얼마나 정성스레 거품을 걷어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피곤할수록 먹는 사람은 행복해진다.


삶은 꼬막은 반은 다 까서 살만 따로 담고 그 나머지는 한쪽 껍질만 떼어내서 접시에 가지런하게 올렸다. 시원한 겨울무는 가늘게 채 썬다. 배춧국을 끓이고 남은 알배추도 가늘고 얇게 썰었다. 마늘 두 쪽을 칼 손잡이로 콩콩 빻았다. 대파는 어슷 썰기로 조금 준비했다. 그 모든 재료를 양재기에 담고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식초로 간했다. 깔끔한 맛을 위해 고추장은 넣지 않았고 꼬막맛을 살리느라 양념의 양은 최소화했다. 그대로 조물조물 무쳤다. 상큼하고 아삭한 채소와 꼬들꼬들한 새꼬막이 잘 어울린다. 막걸리 좋아하는 사람들은 안주로 삼기 딱 좋을 맛이다.


그냥 한 알 입에 넣고 우물우물해도 짜고 달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삶은 새꼬막은 양념장을 살짝 더해도 좋다. 껍질을 접시 삼아 올려놓은 꼬막 위에는 다진 대파, 간장, 고춧가루로 만든 양념장을 아주 조금 올린다. 양념장이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되니까 양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양념장은 그저 거들어야 할 뿐이다. 그것이 신선하고 좋은 식재료를 대하는 바른 마음가짐이다. 뚝딱하고 만든 꼬막요리 두 가지를 이 꼬막이 우리집 부엌까지 오기까지 손을 보탠 모든 이들에게 감사하며 맛있게 먹었다. 내내 따뜻하던 날씨가 비 오고 눈 오더니 제 때의 온도를 찾았다. 꼬막은 겨울이 제철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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