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투의 시그널

투투 이야기

by Eli

"후다닥, 호다닥, 다다다닥 툭, 툭,

다다닥, 끽, 다다닥, 왁~ 으르릉, 틱, 찹찹찹 "


거실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뛰다가 물을 마시나보다. 그리곤 깡패처럼 두 발로 안방 문을 텅하니 차고 들어와 침대 아래서 말없이 나를 올려다본다. 못 본 척하는 나. 각종 장난감을 물고 와 바닥에 놓는다. 또 외면. 장난감 하나를 물고 슥~나가더니 저렇게 뛰어다닌다. 음.... 저건 시위다.


한참을 뛰어다니던 투투는 다시 방으로 들어와 헐떡거리며 눕더니 갑자기 머리를 번쩍 쳐들곤 곱지 않은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또 짐짓 못 본 척 외면하며 책으로 얼굴을 가린다.


불만에 찬 투투의 눈


"투투야, 휴일에 손님들이 다녀갔잖아. 나 피곤해. 오늘 아침엔 책이나 읽으며 게으르게 뒹굴거리면 안 될까. 벌써 아침 일찍 나갔다 왔잖니. "


누워있고 싶은 나와 달리 에너자이저 투투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는 듯 각종 장난감을 물고 와 놀자고 한다. 침대 아래 자신을 외면하며 책장 넘기는 소리를 듣던 투투 드디어 크게 하품을 하며 "깽" 신호를 보낸다.


소위 스트레스 시그널이다. 투투는 차에 탔을 때나 간식을 주려다 말고 내가 전화를 받을 때, 동물병원에 들어가려고 할 때, 지금처럼 놀자고 하는 것을 무시할 때 크게 하품을 하며 날카롭게 "깽" 하는 소리를 낸다. 짜증 난다는 신호다. ㅋ 이것이 바로 '개짜증'이다. 이미 " 으~~ 응, 아르~~ 릉, 아~~ 항 "같은 소리로 여러 번 내게 신호를 보냈지만 외면을 하자 최후통첩을 날린 것이다.


투투는 보통 물이 마시고 싶으면 정수기 앞에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고 특정 물건 -이를테면 시끄러운 삑삑이나 곰인형-을 원할 땐 물건이 놓인 곳을 향해 앉아 있다. 졸리면 누워서 장난감을 질겅거리고 문을 열고 나가고 싶으면 문을 향해 앉는다. 소파에 올라가 망부석이 되어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산책을 원하는 거다. 이처럼 각종 신호를 보냈는데도 반응이 없으면 그땐 연이은 "끄으~응 " "아르릉" 소리를 낸다. 그러고도 모자라면 하품과 함께 "깽" 하는 시그널을 보낸다.


녀석, 하품을 해대며 쨍, 하는 소리를 내도 모른 척 침대에 누워만 있자 더는 못 참겠다는 듯이 금지되어 있는 침대로 겅중 올라와 내 팔을 발로 긁어댄다. 이쯤 되면 버틸 재간이 없다.


아이고, 알았다고. 나가자고. 양말을 신고 모자를 쓰면 빙글빙글 돌며 겅중거린다. 두 귀는 벌써부터 착 눕히고 신이 난 표정이다. 가슴 줄을 매 주면 세상 얌전한 자세로 고분고분하게 서서 혀로 내 얼굴을 쓱 핥는다. 잊은 물건을 가지러 현관에서 돌아서니 문을 긁어대는 투투. 알았다고.


4개월의 투투, 녀석의 시그널이 늘고 있다.

투투는 날마다 우리에게, 특히 내게 시그널을 보내지만 처음부터 크게 짖거나 " 아르릉 "하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며 기다린다. 충분히 기다렸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면 2차 시그널을 보낸다. 그것이 "아르 릉"이다. 이것도 통하지 않으면 문을 긁고 이 역시 응답이 없으면 그때 짖는다. 계속 기다려야 되는 상황인지 또 다른 신호를 보내야 하는지 사람을 주시하고 기억한 후 행동한다.


투투가 내게 보내는 시그널들을 보니 불현듯 나도 수많은 신호를 보내고 또 받으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쿵, 다가온다 . 나의 시그널은 어떤 모습인가. 이런, 이 화제에 대해 나는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까. 상대에게 전해지는 나의 시그널은 건강한 방법인지, 일방적 신호만 담은 것은 아닌지, 성급한 판단과 유치하고 미숙한 방식은 아닌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니 수많은 오해와 오류가 괜히 생긴 건 아니었다. 나는 종종 솔직함을 가장한 직접적인 말과 행동으로 단번에 해결하려고만 했다. 배려를 담은 신호를 보내고 상대의 시그널을 기다리는 인내가 부족했다. 그 행동의 이면엔 내가 옳다는 지독한 독선이 있었구나! 인정하기 싫지만 상대를 배려하는 그 순간에도 나는 자기중심적이었다. 아,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게 전해지는 시그널에 대해선 어떻게 처리했을까. 어느 때 어떤 형태의 누구의 시그널인지 알고 대했나. 나의 시그널에만 집중하느라 놓쳐버린 신호는 또 얼마나 될까. 역시 이 질문들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구나. 빗나간 주파수가 되어 삐걱거린 여러 시간과 얼굴들이 떠오른다. 왜 가까운 사람들의 시그널을 이해하지 못했을까. 설사 알았다고 해도 왜 그리 오래 걸리는 것일까. 내 시그널만 보내기에 급급했던 까닭일까. 이 과정들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고 여전히 어려워 나는 자주 실패한다.


투투, 너의 시그널엔 단계가 있고 너는 너의 본성을 거슬러 나를 참고 기다려주는구나! 그래서 나를 그렇게 자주 바라보는 거구나.


인간은 쓸데없이 복잡한 상황과 이해관계로 얽혀있고 각기 다른 시그널을 가지고 있어서 그 신호를 알아보는 일이 쉽지 않다. 내것은 물론 상대의 시그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무지하다면 소통은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경험은 그리 믿을만한 것이 못된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개의 시그널을 이해한다는 것과 인간의 소통과는 많은 차이가 있겠지만 투투를 보며 새삼스러울 것 없는 단서를 다시 얻는다. 서로의 시그널을 감지하는 것은 관심에서 출발한다는 것, 서로 인내가 필요하다는 , 그것은 자주 변하기에 그 앞에서 유연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투의 시그널을 간과했을 땐 거실에서 녀석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정도겠지만 우리의 관계나 여타의 일에선 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생긴다. 소중했던 관계의 균열이 생기고 뒤따르는 여러 불협화음과 다퉈야 하니 삶은 더 고단해질 수 밖에.


마당에 나선 투투, 마저 신발을 신는 나를 기다려준다. 꼬리는 더 활발히 움직이고 귀가 바짝 누운 걸 보면 투투는 지금 매우 신이 났다. 투투가 좋아하니 나도 좋다.


"투투, 날이 ~ 좋지? 너의 시그널을 알도록 시간을 좀 주겠니?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구나. 너를 통한 나의 성찰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헤, 하고 혀를 내밀며 나를 바라보는 투투의 두 눈이 햇살에 반짝인다.

"이런, 어느새 붓꽃이 피었네.

오늘은 어느 쪽으로 한 걸음 더?

숲길 거쳐 약수터까지? "

투투가 빙글빙글 돌며 꼬리가 끊어져라 흔들어댄다.

"콜? 오 케이,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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