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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Nov 08. 2023

수술

투투 이야기


언젠가부터 다리 한쪽을 딛지 않았다. 산책 후 돌아올 때는 마치 집에 가기 싫다는 것처럼 자주 멈추곤 해서 더 걷자는 신호인 줄만 알았다. 최근엔 버티는 투투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일까지 생겼다.  이러지? 왠지 불안했다. 지인의 우려와 조언대로 소파를 치워버리고 거실엔 대형 카펫 두 장을 깔아놓았다. 긴 산책 대신 짧은 배변 산책을 하며 주말이 지나면 병원에 가야지, 했다.


저녁 배변산책을 한 투투는 기분이 좋았나 보다. 마당에서 탱이와 노는 모습이 평소보다 과했다. 신나게 뛰어노는가 했는데 갑자기 깨갱, 하며 비명을 지르곤 주저앉았다. 놀라서 달려가니 다리를 만지지 못하게 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집안으로 들어온 투투는 일어나 걷지 못했고 뒷다리를 만지려고 하면 싫어했다. 설마....


다음 날 오전, 서둘러 병원에 갔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슬개골 탈구가 된 상태였고 인대도 끊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엑스레이엔 인대가 보이지 않았다. 또 철렁! 엑스레이 사진은 의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 보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상황이 빠보였다. 뼈와  사이가 간격 없이 바짝 붙어 있고 아래 뼈는 휘어져 있었다. 수의사는 그동안 통증이 심했을 거라며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눈물이 쏟아졌다. 겁에 질려 덜 떠는 투투를 끌어안고 또한 겁이 나 울었다.


휘어지고 맞닿아 있는 뼈


치료에 필요한 수술과 처치에 동의하고 그 후의 결과에 대해서 법적인 다툼을 하지 않는다는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한 후 투투는 수술을 했다. 인대 상태를 걱정하며 들어간 수의사가 도중에 나와서 걱정한 대로 양쪽 인대가 다 끊어진 상태이니 슬개골 수술과 함께 인대 재건 수술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의 말이 귓가에서 윙윙댔고 눈물이 쏟아졌다. 수술은 2시간 30분이 걸렸다. 수술 후 다시 찍은 엑스레이엔 휘어진 다리뼈를 교정하느라 박은 핀이 두 개씩 하얗게 박혀있고 뼈 사이의 간격도 처음 사진과는 다르게 벌어져 있었다. 관절 바로 아래엔 작은 구멍도 하나씩 나 있었는데 인대를 고정해 놓기 위해 뚫은 구멍이라고 했다. 그 사이로 인대를 통과시켜 슬개골 뒤쪽에 핀으로 박아 고정했단다. 핀을 박은 것도 뼈에 구멍을 뚫은 것도 그저 놀랍고 무서웠다.


두 살이 채 되지 않은 강아지가 슬개골 탈구와 함께 양쪽 인대가 다 끊어지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며 재활이 오래 걸릴 거라고 했다. 원인을 물으니 휘어진 다리뼈가 어긋나 뼈끼리 부딪쳐 슬개골 탈구로 진행된 것인데 아마도 다리뼈가 휘어진 기형으로 태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사는 추측했다. 또 마음무너졌다. 그런 것도 모르고 가을이라고, 날이 좋다고 그리 열심히 산책을 다녔다. 투투는 아프다는 신호를 왜 보내지 않았을까. 날이 좋아 창문을 열면 왜 나가자고 졸라댔을까. 아니, 뒷다리가 안 좋다고 신호를 보냈는데 엄마가 간과했어. 개들은 원래 아픈 티를 안 낸다고,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의사는 말했지만 엄마 잘못이야. 자책이 되어 눈물만 흘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육이 잘 발달해 있고 건강상태가 좋아서 재활에 도움이 될 거라고 다. 다만 다리에 박아놓은 핀이 근육의 움직임에 따라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리에 박은 핀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두꺼웠는데 핀이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였단다. 만일 핀이 빠진다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 맙소사!


회복실에 누워있는 투투


수술 다음 날 병원에 가니 의료진들이 투투 앞에 모여있다. 무슨 일이지? 또 가슴이 철렁했다. 치료를 하고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데 투투가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으르렁대고 있었다. 의료진은 투투를 만질 수 없어서 난감해했다. 의사가 반색을 하며 엄마가 꺼내서 옮겨달란다. 투투를 보니 한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 빨갛고 두 뒷다리엔 깁스를 해 놓았다. 마취에서 깬 투투가 사납게 성질을 부린 통에 눈의 핏줄이 터진 거란다. 그 모습이 처참해 또 눈물이 났다. 엄마를 본 투투는 꼬리를 흔들며 참았던 오줌도 누고 순하게 치료를 받았다. 의사가 그런 투투를 보고 억울하다고 말해서 울다가 웃었다.


수술 후 4일째. 여전히 겁에 질려있지만 투투의 표정은 조금 나아졌다. 물티슈로 몸을 씻기고 집에서 가져간 밥을 먹이니 먹지 않았다. 좋아하는 간식도 외면했다. 잘 회복하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투투는 좀체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긴  어디? 나는 왜 여기 있나? 하는 얼굴로 불안하게 두리번거리며 헥헥거렸고 여전히 의사를 보면 몸을 떨면서 으르렁댔다. 안아주니 엄마 얼굴을 핥는 투투. 투투의 심장은 크게 벌렁거렸다. 내일은 집에 갈 거니까 착하게 있어야 한다고 당부하고 돌아서는데 한없이 엄마만 바라보는 투투. 또 마음이 미어졌다.


투투야...


집으로 와서 의사의 말대로 대형 켄넬과 유모차를 주문했다. 깁스는 3주간 해야 하고 그동안은 걷거나 움직이지 말아야 하기 때문에 대형켄넬이 필요했다. 산책 또한 당분간 어려울 것이므로 이동이 편리한 유모차가 있어야 했다. 재활은 약물과 레이저 치료로 두 달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금 걷는 건 되지만 재활이 끝나도 뛰거나 점프하는 것은 안 된단다. 투투는 켄넬을 싫어하는데... 


투투의 수술비는 250만 원이 나왔다. 앞으로의 재활치료비도 더 들어갈 것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며 함께 산다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새삼 실감한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동물들도 나이 들며 약해지고 각종 병에 걸리므로 적절한 치료와 돌봄이 필요하다. 개든 고양이든 키우기 전에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그들이 병들거나 보호자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볼 수 없는 상황은 누구도 가볍게 말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다. 그래서 외롭다고, 귀엽다고, 동물을 좋아한다며 키우려 한다면 다시 한번, 아니 두 번  번 생각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며 귀한 생명을 외면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면 말이다.


투투는 수술 5일 만에 퇴원하여 집으로 왔다. 집에 온 투투는 크게 한숨을 쉬더니 호흡이 빠르게 안정되었고 밥도 뚝딱 먹어치웠다. 킁킁대며 냄새를 맡더니 다리를 죽 뻗고 편히 잠을 잤다. 켄넬과 유모차는 역시나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움직임을 최소화하기 위해 켄넬에 들여보냈지 심하게 헥헥거리며 짖어댔다. 투투의 눈이 다시 불안과 공포로 슬퍼 보였다. 유모차에선 뛰어내리기까지 하여 아주 식겁했다. 아, 녀석 참 힘들다... 그래, 겁 많고 예민한 건 네 탓이 아니야... 그렇지만 엄마가 좀 힘들구나. 물끄러미 엄마를 바라보던 투투는 엉덩이를 끌며 다가오더니 엄마 다리를 핥고는 옆에 바짝 붙어 엎드린다. 그 모습에 눈물이 다. 마치 켄넬에 들어가지 않고도 얌전히 있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제스처 같았다. 온전히 우리의 처분과 보호에 놓인 투투를 보니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아이들이 아프던 때와 다른 감정이다. 더 아프고 깊이 측은하다. 이 집과 이 집의 사람들이 투투의 세상이고 투투에겐 전부이다. 


투투야, 수술받느라 고생했어. 많이 무서웠지? 엄마도 그랬어. 투투가 잘못되면 어쩌나 하고... 근데, 많이 움직이면 안 된대. 그러니 조심해 줘. 깁스는 3주 후에 풀 거구, 피부 치료, 재활치료도 해야 돼. 의사 선생님께도 좀 친절하게 대해 주고. 엄마가 번번이 사과해야 하잖아. 다시 기다려야 하는 시간에 들어섰구나. 엄마는 기다리는 것이 참 싫어. 기다리는 건 견디고 참아야 하는 일이거든. 그런데 아픈 시간을 견디는 건 너로구나. 하지만 우리가 있잖아. 아빠랑 엄마랑 형아와 함께 조금만 더 참고 잘 이겨내 보자. 너는 다시 건강해질 거야. 그렇지? 투투...


수술 후 9일째. 투투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서툰 걸음이지만 퇴근하는 아빠를 반기러 나가고 밖으로 나가 꽃밭에 오줌도 누었다. 투투 발에 진한 향기의 노란 메리골드 꽃잎이 붙어있었다.


집에 오자 호흡이 안정되었다


투투를 걱정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잘 돌보겠습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모든 가정이 아무 일 없이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수술 전 날의 투투. 다시 이 모습으로 돌아갈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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