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투투는 차츰 활발해지면서 예전의 에너지를 찾아가고 있었다.
죄 없는 사람도 떨게 할 만큼 때아닌 천둥 번개가 요란하던 날, 천둥소리가 무서웠던 마당의 탱이가 집안으로 후다닥 들어왔고 그걸 본 투투는 흥분을 했다. 탱이의 발을 닦이는 동안 다시 번쩍 하고 번개가 쳤고 탱이에게 줄 장난감을 가지러 갔던 투투가 장난감을 문 채 놀란 얼굴로 후다닥 달려왔다. 탱이와 투투 모두 겁을 잔뜩 먹고 안절부절못했다.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아지자 탱이를 마당으로 내보내고 돌아보니 투투가 이상했다. 왼쪽 뒷다리를 동동 들고 낑낑거리며 딛지 못하더니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아, 탈이 생겼구나. 서둘러 병원에 데려가 X 레이를 찍었다. 수술한 인공 인대가 늘어난 채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며 원장 선생님이 한숨을 쉬었다.
"왜요? 왜 제자리로 안 돌아가나요?"
"투투가 뛰었나요?"
"뛰는 것을 보진 못했는데요...."
"그러면 아마 "악" 하는 어떤 순간이 있었을 거예요. 재수술할 수도 있겠어요."
" 재수술이라고요??"
슬개골을 감싼 인대는 늘어났다가 줄어들며 보행을 하는데, 투투의 다리 인대는 탄성을 잃은 고무줄처럼 늘어난 채 되돌아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충격이 가해진 게 분명하다고 했다. 충격? 혹시 아, 번개 치던 날.... 일주일을 지켜본 후 호전되지 않으면 재수술을 해서 늘어난 인대를 잡아당겨 놓아야 한다고 했다. 맙소사! 수술을 또? 투투는 낑낑거리며 벌벌 떨고 있었고 그걸 보는 마음은 심하게 내려앉았다. 처음과는 다르게 몹시 심란했다.
"지금 투투에게 통증이 있나요?"
" 아뇨. "
"그런데 왜 저렇게 몸을 떠나요?"
" 모르겠어요. 반사작용 같은데.... 통증은 없지만 염증이 생길 수 있어요. 염증을 막는 약을 먹이면서 일주일간 지켜보고 금요일까지 그대로면 재수술을 해야 합니다. 재수술비용은 없습니다."
"아.... 안 돼요....ㅠㅠ"
약을 먹고 잠이 든 투투 병원을 다녀온 후 투투와 나는 몹시 우울해졌다. 투투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만 잤고 나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집안은 하루종일 적막했다. 오랜만에 간절한 마음이 밀려왔다. 투투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하늘의 자비가 투투에게 내리길 빌었다. 투투는 겁나고 슬픈 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꼬리도 치지 않았다.
"괜찮을 거야. 엄마 손은 약손."
무겁고 느리게 며칠이 흘렀다. 재수술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다. 목요일 아침, 자고 일어난 투투는 기지개를 켜더니 왼쪽 뒷다리를 딛으며 걸었다. 딛지 않던 다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마당에 내놓으니 천천히 미스코리아처럼 걸었다. 체중이 오른쪽으로 쏠려 있긴 했지만 확실하게 왼쪽 다리를 사용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나를 보며 헤헤거렸다. 병원에 전화를 하고 동영상을 보내니 인대가 다시 기능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감사한 마음으로 올려다본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다행스럽게도 왼쪽 뒷다리 재수술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혹시 모를 인대의 염증을 예방하는 약을 먹으며 더 지켜보기로 했다. 2주일치 약을 받았고 7만 원의 약값을 지불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품는 애착은 상대가 주는 기쁨뿐 아니라 상대가 야기하는 근심에서도 비롯된다. 상대는 전적으로 당신의 책임이기에 성스러운 존재다. (어떤 개의 죽음, 장 그르니에)'
'타이오가 있음으로써 발생되는 어려움들은 오히려 그에게 애착을 느끼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같은 책 )
'동물들은 매일 아침 당신을 찾아오고 애정을 표한다. 그들의 하루는 사랑과 신뢰의 행위로 시작한다. 동물들은 적어도 솟구치는 애정을 품고 있다.( 같은 책 )'
투투의 수술 후 다시 읽은 장 그르니에의 산문 <어떤 개의 죽음>은 너무 아픈 글이었다. 예전에 읽었을 때와 다르게 어떤 페이지에선 밑줄을 몽땅 그었다. 투투를 키우며 감정이 달라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개를 개답게 키워야 한다고 한다. 소중한 자녀 대하듯 특별한 애정을 쏟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그러나 개답게 키운다는 것이 한편으로 방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사정에 따라 개들은 실내에서 지낼 수도 있고 바깥 마당에서 지낼 수도 있다. 실내에서 지내는 개들의 삶이 더 낫다거나 밖에서 생활하는 개들이 불행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처지에 맞게 환경을 살펴주고 질병예방을 위한 정기적 검진과 조치, 규칙적인 산책을 함께 하며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애정을 품고' 생활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최소한의 보호고 당연한 돌봄이 아닐까. 개들은 '적어도 솟구치는 애정을 품고' 우리를 바라보는 존재이니 생명유지가 아닌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적극적인 보호로 동물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슬개골 탈구와 인대재건 수술 후 두 달.
재수술의 불안을 떨쳐내고 투투는 언제 아팠냐는 듯 다시 씩씩하게 걷고 있다. 약도 중단했다. 눈이 많이 내린 날, 마당에서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반갑고 기쁘지만 조심스럽다. 쫓아다니며 뛰지 말라고 주의를 주니 장난인 줄 아는 투투가 플레이 바운드 자세를 취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더니 내게로 뛰어와 얼굴을 핥아댄다. 투투는 이렇게 애정 공세에 적극적이다. 그런데 투투야, 조금 전에 탱이와 서로 입을 핥고 엉덩이 냄새도 맡지 않았니? 투투는 갸우뚱갸우뚱하다가 기습적으로 또 얼굴을 핥았다.
조심조심! 넌 아직 환자, 아니 환견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투투는 신이 났다. 녀석, 네가 바로 자연이구나. 스스로 회복하느라 기다렸던 것이구나. 하늘은 하루종일 포근한 눈을 펑펑 내려주었고 투투는 눈 위에 뒹굴며 즐거워했다. 집에 들어와 발과 배를 씻고 간식을 먹은 후 투투는 내 발치로 와 잠을 잤다. 잠든 투투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근심 걱정이 사라졌다.
'우왕~ 눈이다!' 투투의 짧은 다리가 눈에 묻혔다
눈 치우는 앞집 아저씨를 바라보는 탱이와 투투
'산책 더 해요.' "선생님이 20분 정도만 하라고 하셨어. " '안 들어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