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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선 Sep 29. 2023

가족 단톡방을 나왔다.

가족 단톡방을 나왔다. 

언제부턴가 단톡방의 대화들이 불편해졌다.

왜 시시콜콜한 얘기를 단톡방에서 해야 할까? 가족이라는 이유로? 

수시로 울리는 알림음도 거슬린다.

좋은 얘기도 있지만.. 때론 누군가의 넋두리도 알게 되니..  마음도 불편하고 우울해진다.


"언니야! 왜 카톡에서 빠졌노?"

"다음 달 브런치에 응모하는 것이 있어서 거기에 좀 집중하려고 카톡을 좀 안 하려고 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갑자기 단톡방을 나가니 무슨 일인가 걱정이 된 동생이 묻는다.

애써 핑계를 둘러댔지만 당분간(?) 단톡방에 들어가지 않을 생각이다.


'며느리 사표' (영주 지음. 사이행성 출판. 2018년)라는 책은 제목이 흥미로워서

단숨에 읽게 된 책이다.

며느리 사표

책 내용 중 이런 글귀가 있다.

'25년은 어머니의 착한 딸로 살았고, 23년은 며느리. 엄마. 아내 역할로 살았다. 

 남은 인생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저자의 나이를 짐작건대 내 또래인 듯하다.

그래서인지 공감 가는 부분이 많고 생각도 비슷했다.

종갓집 장손에게 시집가서 제사나 명절 때마다 수많은 일가친척을 대접해야 했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부부의 삶도 없이 삼시 세끼 밥 챙겨드리고 

두 아이 건사하고 남편 뒷바라지까지...  남편의 외도를 솔직하게 표현한 대목도 있다.

그래도 참고 인내하며 착한 딸, 아내, 며느리로 동분서주하며 20년 넘게..

여자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명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시부모님께 며느리 사표를 내밀었다고 한다.

다행히 시부모님은 그런 며느리를 받아들이셨는데 남편은 난리를 쳤다고 했다.

저자는 이혼까지 불사하겠다며 남편을 설득시켰고

그 후 시댁 행사에도 가지 않았고, 며느리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분가를 했고, 남은 인생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겠노라고 가족들에게 선언을 한 후

자신만을 위한 삶을 당당하게 개척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담은 내용이다.

그 용기와 도전으로 책까지 출간했으니, 부럽고 대단하다.


50살이 되면 퇴사(은퇴)하겠노라 공언을 했다. 나답게 자유를 누리며 살고 싶어서.

그 바람과 선언대로 지금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고 있고 너무 행복하다.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크게 걱정할 것도 신경 쓸 것도 없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굳이 애써서 미리 걱정하고 신경 쓸 거리는 줄이거나 차단시키고 있다.

그런데도 유일하게 나의 자유를 방해하는 존재는 가족이다.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원인은 착한 딸 콤플렉스, K-장녀 콤플렉스 때문이다.


어려운 살림살이에 고생하며 오 남매를 키워준 부모님을 존경하지만, 부담스러운 면도 있다.

경제적, 심리적인 면에서 그렇다.

노후준비가 전혀 안된 부모님의 경제상황은 부담이다.

오 남매가 각자 한 달에 얼마씩 생활비를 보태드리고 두 분 앞으로 나오는 얼마의 연금으로 생활을 하신다.

그나마 자식이 많아서 그 부담을 나눌 수 있으니 다행이고 부모님도 그 점은 미안해하고 고마워하신다.

팔순을 넘기시니 이런 저런 병원비도 많이 든다. 

수술이나 입원을 하시면 조금씩이라도 부담을 해야 한다. 

자식 된 도리로 나 몰라라 할 수 없다. 

그럴 때마다 부모님도 마음이 편치 않고 자식들도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은퇴하신 지 30년이 되어가니... 그 후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오남매간의 불문율이다.


가족 단톡방을 나온 이유는 심리적인 면이 크다.

이런저런 안 좋은 소식(소음)을 듣고 싶지 않아서다. 

안 좋은 소식을 들으면 마음도 불편하고 신경이 쓰인다.


엄마의 목소리가 힘이 없고 심상치 않으면 꼭 안 좋은 일이 있다.

얼마 전에도 오빠에 대한 안 좋은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와는 상관도 없고 어찌할 수 없는 일인데도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불편하다.

엄마의 속상함이 이해도 되고 그 넋두리도 잘 들어줘야 착한 딸이겠지만 솔직히 짜증이 난다. 

매번 반복되는 그 넋두리를.. 이제는 그만 듣고 싶다.

가족이라고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모르는 게 약일수도 있다.

좋은 소식, 안 좋은 소식을 가려서 들을 수는 없지만... 신경 쓰이는 일은 더 이상 안 듣고 싶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가족의 일이고, 그들도 이미 나이가 많은데.. 부모형제라고 해서 그 세세한 내막까지 

알 필요는 없다. 


가족 간에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

심리적, 정서적인 독립도 해야 할 것 같다. 과감하게

착한 딸, K-장녀 사표도 내고 싶다.

자식으로서 도리를 저버리겠다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언제까지나 나 자신을 옭아매고 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조금은 불편한, 그리고 평생 풀지 못한 마음의 숙제는 언제나 가족이었다.


'28년은 부모님의 착한 딸로 살았고, 29년은 엄마. 아내 역할로 살았다. 

남은 인생은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살고 싶다. 아니 그렇게 살 것이다.

지금도 나 자신으로 살고 있지만, 가족과의 심리적, 정서적 거리 두기를 통해 

더 나답게 온전한 나로 살 것이다.

그들이 섭섭해할 수 도 있고 이기적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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