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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도민 Sep 20. 2023

함께 하는 예술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문화예술계, 특히 클래식 음악계는 보수적이다. ‘라떼는’뿐 아니라, 지금도,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 하여도, 여전히 보수적이다. 이런 필드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받아들여지기란 쉽지 않다. 특히 그 새로운 무언가가 소수를 위한 것이고, 그 소수가 없더라도 지금 당장 필드에 엄청난 재앙이 들이닥치는 것도 아니라면, 대부분은 무관심하거나 무신경하다. (사실 세상사가 다 그렇긴 하다)  

   

버즈비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술개발도 아니고, 공연 기획도 아니었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고, 넓게는 문화예술 전반에 꼭 필요하다고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그 과정이 가장 어렵다.

아무리 진보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온다고 하여도, 사람들이 이것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면 사장될 수밖에 없다. 다 함께 하는 예술을 위해서는 결국에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과정이 필수 불가결이다.     

버즈비트는 장애 예술인을 위해 개발됐지만, 사용자는 실질적으로 두 부류다. 하나는 진동을 받는 쪽, 한 마디로 퍼포머, 그리고 또 하나는 진동을 주는 지휘자다. 

지금까지 모든 프로젝트는 진동을 받는 쪽에 초점을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진동을 주는 쪽, 지휘자 혹은 교향악단의 예술감독 등 실제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이 장치의 존재를 알고, 사용해 보고, 필요성을 느끼고, 받아들였을 때 비로소 지속될 수 있다.


프로젝트 <지금아니면언제?>의 두 번째 기획은 “더 많은 지휘자에게 버즈비트를 알리자”에 초점을 맞췄다. <버즈비트 노리미트 콘서트>(이하 노리미트 콘서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새로운 프로젝트는 포디움 세션에서 착안했다. 포디움 세션이란, 지휘계에서는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오케스트라 전체가 연습 지휘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휘 전공자가 지휘를 연습하는 과정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연습을 위해 지휘 전공자는 우선 교향곡 총보를 펼쳐두고 음악 없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지휘를 한다. 그렇게 악보와 지휘를 익힌 다음에는 포핸즈(두 명의 연주자가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는 것)로 편곡된 교향곡을 다른 사람이 자신의 지휘에 맞춰 연주하도록 한다.(꼭 이 순서는 아니더라도, 큰 틀은 이렇다.)

그다음에는 진짜 오케스트라와 맞춰봐야 하는데, 여기부터 허들이 높아진다. 교향곡은 적게는 수십 명, 많게는 백여 명에 이르는 인원이 필요한데, 이 머릿수만큼 이 돈이다. 한번 연습하자고 개인이 수백만 원을 쓰는 것은 아무래도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소하고자 운영되는 프로그램이 포디움 세션이다. 

실제로 많은 교향악단에서 이 포디움 세션을 운영하고 있다. 지휘자를 모집해서 참가비를 받고(국공립 단체의 경우 참가비가 없기도 하다), 지휘에 맞춰 연주하고, 때에 따라 연주까지 이어진다. 보통 다수의 지휘자를 선발하기에 리허설부터 연주회까지 여러 작품 혹은 악장마다 지휘자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지난 몇 년 동안 세상을 혼돈의 카오스에 빠트렸던 코로나 때문에 포디움 세션은 없다시피 했다. 이 포디움 세션이 없다는 것은 지휘 전공자에게는 단순히 연습 기회가 없는 것 이상의 문제가 있다. 포디움 세션 중 본인이 지휘하는 장면을 촬영해서 유학 갈 학교나 해외 콩쿠르에 자료로 보내야 하는데, 최근 몇 년 동안은 그럴 기회가 없었다.     


포디움 세션은 진솔 지휘자의 제안이었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에 딱 들어맞았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지난 몇 년간 팬데믹으로 인해 포디움 세션이 운영될 수 없었기에, 버즈비트 프로젝트에서 포디움 세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면 충분히 수요와 관심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지휘자 모집 공고를 냈고, 3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원했다. 진 지휘자와 나는 서류와 영상 심사를 거쳐 5명의 지휘자를 선발했다. 고백하자면, 지원자를 받기 전에는 지원자가 부족하거나 실력이 부족한 사람이 올까 봐 걱정했었다. 다행히 이는 기우였고, 지원자 모두 신진 지휘자로 매체에서 주목을 받고 있거나, 이미 현장에서 다른 예술가에게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고수들이었다. 덕분에 심사가 쉽지 않았고, 오히려 빠듯한 예산 때문에 더 많은 지휘자와 함께 못 했던 것이 아쉬웠다.


지휘자 여럿이 돌아가며 시각장애 연주자와 합을 맞춰본다는 점에서 보통의 포디움 세션과 다르지 않았지만, 지휘자에게 따로 참가비를 받진 않았다. 오히려 지휘비를 지급했는데, 나는 이들을 경험을 쌓으러 온 사람이 아닌 일종의 연구자로 세팅했기 때문이다. 버즈비트를 사용하는 것부터 시각장애 연주자와 함께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이전에는 없던 시도였고, 그만큼 이들의 피드백이 나에게는 자료로서 유의미했기 때문이다.      


<노리미트 콘서트>는 이전 <병사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무용도 다뤘다. 전국을 뒤져 청각장애 무용수 4명을 찾았고, 아직 중학생이라 학업에 집중해야만 했던 1명을 제외하고 3명과 함께 하기로 했다. 이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고아라 무용수는 당시 만삭인 상태라 무대에는 함께 못 오르고, 안무지도로 참여했다.

기획 단계에서 무용팀은 버즈비트를 어떻게 무용 창작에 활용할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무용 부분을 연구에 집중하려던 이유는 음악 부분의 규모가 이전보다 월등히 커졌기에, 두 가지를 다 무대에 올리기엔 예산 면에서나 나의 체력적으로나 벅찼다.

하지만 오리엔테이션 이후 노정식 안무가와 고아라 무용수는 연구와 실연을 병행하길 제안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무용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또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클래식 음악 쪽은 몇 차례 프로젝트를 거쳐왔기에 당장 새로운 아이디어를 짜내기도 어려웠다. 그렇다고 프로젝트의 규모를 키우자니, <노리미트 콘서트> 이상은 당분간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무용이면 말이 달랐다. 무용과 버즈비트가 만나면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노리미트 콘서트>는 이전 <병사이야기>와 같이 음악과 무용, 시각장애, 청각장애, 그리고 비장애 예술가가 함께하는 종합예술 무대로 발전됐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버즈비트는 사용자가 매우 한정적이다. 시각장애인 중 전문 연주자로 활동하는 사람에 한정돼 있던 걸 청각장애 무용수로 확장하였지만, 여전히 소수를 위한 장치로 남아있다. 사용자를 더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무용 분야에서 버즈비트를 창작의 도구로 사용해 보는 것을 연구하려는 이유는 이 ‘확장성’과 연관이 있다. 우리는 <병사이야기>를 통해 청각장애 무용수가 춤을 추는 것에 버즈비트가 실효성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결국 장치가 사용되는 원리는 시각장애 연주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단순히 사용자와 장르만 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버즈비트가 ‘창작의 도구’로서 사용된다면 조금 더 다각적인 시도가 가능할 거고, 이런 시도는 ‘창의적 도구’로의 활용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우리는 여러 회차에 걸쳐 버즈비트를 활용해서 나의 움직임에 맞춰 상대방이 즉흥 춤을 추도록 하는 인터렉티브 실험, 음악을 촉각으로 느껴보는 실험, 그리고 기록된 지휘 진동에 맞춰 춤추기 등 다양한 시도를 했다. (마지막 ‘기록된 지휘 진동’은 이전 비대면 합주 프로젝트에서 시도했던 방식이다) 우리는 이 시도를 통해 다양한 데이터와 경험, 그리고 짧은 무용 영상을 얻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성과는, <노리미트 콘서트>에서의 이런 시도가 이후 제작되는 고아라의 창작 신작 <~ㅐ서, ㅆ어>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노리미트 콘서트>에서는 예술적인 부분 외의 것도 다루었다. 장애인식개선교육 프로그램이었는데, 음악 부분에서 선발된 지휘자와 참관인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한국장애인식개선교육원의 김영웅 원장이 구성한 프로그램으로, 보편적인 장애인식개선교육에 클래식 음악계만의 특성을 가미했다. 

굳이 이걸 왜 하냐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거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싶다. 버즈비트와 관련한 프로젝트 대부분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 지금까지는 공연 기획과 매체 홍보, 영상 제작과 같은 대외적인 측면을 공략했다면, 이 교육 프로그램은 외부가 아닌 내부, 그러니까 실사용자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이 달랐다.     

개인적으로도 이런 과정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왔다. 문화예술계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아무리 ‘장애인의 권리’ 같은 이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하여도 말실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누군가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지만, (사실 사소한 것은 없다) ‘지휘자와 연주자’라는 관계 안에서는 더 예민하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 연주자와 함께 리허설하는 지휘자가 대화 중에 장애인의 반대되는 단어로 “일반인”이나 “정상인”이라고 말했다 치자. 과연 그 연주회가 제대로 될 수 있을까?

행여 프로 정식이 투철한 연주자여서 연주회가 어찌어찌 잘 끝났다 하더라도, 앞으로 연주자가 그 지휘자와 작업을 할 수 있을까? 아니, 같이 하고 싶을까?

결코 아닐 것이다. 말에는 엄청난 무게가 있고,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 이런 단어 선택 오류는 사소한 에피소드로 치부되고 무시되기 마련이다. 적어도 이 프로젝트에서는 이런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최근 장애인식개선교육이나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을 법정의무교육으로 지정하고, 국공립 기관이나 일정 규모 이상의 민간 기관이라면 이를 이수하도록 한다. 좋은 변화이나, 장애인식개선교육의 경우 대다수 예술단체에서는 온라인 교육으로 대체하거나, 심지어는 아예 진행하지 않는 곳이 많다. 실제로 <노리미트 콘서트>에 참여한 지휘자 중 일부는 어느 정도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교육 프로그램을 처음 접해봤다고 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이 없었다고 해서 프로젝트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거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인식 개선’이란, 단순히 ‘옳은 단어’를 알려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어떻게 보면 문화예술계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다른 분야와 비교했을 때 폐쇄적이고 보수적이다. 모두 다 같이, 함께 하는 예술을 위해서는 이를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것을 위해서는 장애인식개선교육(그리고 성폭력 예방 교육 역시)은 어쩌면 가장 효과적이고 유익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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