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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도민 Sep 21. 2023

버즈비트 노리미트 콘서트

지휘자를 선발하고, 무용수를 모으는 동안 연주자를 확정했다. 

실내악 이상의 규모를 염두하고 기획된 공연인 만큼 시각장애 연주자의 수도 많아야 했고, 실력도 이미 검증된 연주자여야 했다. 오케스트라는 개개인의 실력도 중요하지만, 연주자 간의 합 역시 중요하기에 기존에 활동하는 단체를 섭외하는 편이 합리적이었다.


다행히 한국에는 시각장애인을 중심으로 하는 전문 연주단체가 있다. 바로 하트시각장애인체임버오케스트라(이하 하트체임버)다. 2007년 창단 이후 국내외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단체로, 매년 열리는 정기연주회와 연 40회 이상의 연주회를 통해 그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는 민간단체다. 버즈비트 프로젝트의 이전 사업에 참여했던 예술가들 역시 이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많았으며, 이를 통해 하트체임버 이상재 예술감독 역시 버즈비트에 대해 이미 알고 있어 협의는 수월했다.     


레퍼토리는 하트체임버에게 익숙한 작품으로 구성했다. 완전히 새로운 작품을 연주하려면 악보를 외우는 시간이 추가로 필요한데, 이 부분을 피하고자 함이었다. 대신 보편적인 클래식 연주회의 틀인 ‘서곡-협연곡-교향곡’ 구성은 갖추려 했다. 악기로 협연곡을 구성할 수도 있었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대중적인 작품을 넣고 싶었다. 지난 공연이 무거운 분위기의 작품이었기에 그보다는 편안한 분위기로 가길 원했었다.

레퍼토리 관련해서는 지휘자와 관련한 이슈도 있었다. 레퍼토리를 구성할 당시에는 지휘자 모집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어서 되도록 범용성(?) 있는 작품이 고려 대상이었고, (물론 나중에 지휘자들의 실력을 보니 별걱정을 다 했던 거였다) 다수의 지휘자가 돌아가며 지휘를 해야 했기 때문에 작품 수를 맞춰야 할 필요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서곡 하나와 네 개의 짧은 성악곡, 교향곡 하나, 앙코르 하나로 구성된 프로그램이 완성됐다.


<노리미트 콘서트>는 기술적으로 위험부담이 있었다. 버즈비트의 동시 사용 인원이 절대적으로 많은 것도 있었으나, 사용자, 그러니까 지휘자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차고 풀고 하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소요되며, 그 과정에서 기기 자체가 불안정해질 수도 있었다. 기술적인 부분에 약했던 나는 리허설이나 공연 도중 문제가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해결할 사람이 필요했고, 그렇게 해서 바하칸을 한국으로 부르게 됐다.     

본격적으로 공연 제작 과정에 들어갔다. 아직 바하칸이 한국에 도착하지 않았을 때, 시각장애 연주자와 나는 한 차례 모임을 가졌다. 우선 버즈비트를 처음 써보는 시각장애 연주자가 다수였기에 이들을 대상으로 착용법과 사용법을 알려주는 시간을 가졌다. 버즈비트는 사용자가 직접 착용할 수 있도록 고안됐지만, 아무래도 처음에는 손에 익지 않으니 쉽지 않다. 한 번은 시범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기술적으로도 테스트해 보는 시간이 필요했다.

착용하는 위치도, 체형도 모두 다른 연주자 10명이 버즈비트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도 일이었다. 현악기는 팔을 많이 쓰니 손목 대신 발목에 착용해야 했고, 어떤 연주자는 손목 발목이 굵어서 진동 장치의 스트랩을 연장해야만 했다. 버즈비트를 처음 경험해 보는 연주자는 불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겨우 상황이 정리됐고, 본격적으로 사용법에 대해 알려줬다. 처음에는 진동의 느낌을 어색해했지만, 곧 본인이 직접 진동 강도를 조절하며 편안한 정도를 찾아갔다.

사실 이 테스트 전까지는 이 정도 인원이 사용해도 잘 작동하는지 불분명했다. 이전 프로젝트에서는 동시 사용 인원이 많아 봐야 5~6명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장치 자체는 잘 작동했고, 발열이나 시차도 거의 없었다. 단지 많은 인원이 동시에 착용하고 세팅하는데 절대적으로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테스트 이후 착용 시간을 줄이기 위한 체계와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실제 리허설과 본 공연에는 연주자뿐 아니라 지휘자까지 착용할 걸 생각하니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리허설은 바하칸이 한국에 입국한 이후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서 혼자 세팅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연습했다. (아마 이 프로젝트에서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이 아닐까 싶다.)    


그사이 무용팀은 리허설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었다. 버즈비트의 진동 장치만 떼어내서 음악 재생 장치에 연결하고, 그 음악의 진동을 느끼는 작업이 주였다. 세 명의 무용수는 모두 청각장애인이었으나, 장애 정도는 각자가 달랐고, 평소에 음악을 감상하는 방법 또한 달랐다. 누구는 진동으로만 느끼고, 누구는 볼륨을 크게 하면 인지가 될 정도로 들리는 등 각자만의 방법이 있었다. 이 때문에 하나의 방식이어도 모두가 다르게 받아들였다.

우리는 이 과정을 통해 버즈비트가 음악 감상에 있어 새로운 방식이 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실제로 무용 창작 과정에 있어 ‘즉흥’은 중요한 부분인데, 프로젝트에 함께 했던 청각장애 무용수는 청인과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받아들이기에 이 과정이 쉽지 않다. 그런데 버즈비트를 활용한 음악 감상법은 조금이나마 이 과정을 유연하게 만들어줬다.

무용팀은 연구와 공연 외에 다른 숙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영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도 연구 과정의 하나였다. 지휘자의 움직임을 기록한 진동만으로 춤을 추는 것. 이것을 남기기 위함이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는 <노리미트 콘서트>에서 무용수가 출연했던 부분의 지휘 진동을 기록했다. 공연이 끝난 후, 스튜디오에 모여 음악 없이 그 진동만 가지고 춤을 추는 장면을 촬영했다. 부연 설명 없이 영상만 보면 이들이 청각장애인인지 청인인지, 실제 음악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분간이 어렵다. 의도한 바다. 나는 시청자가 이들의 춤에 집중하길 원했기에 기술을 가리고, 별다른 해설을 붙이지 않았다. 사실 이게 홍보 면에서 보면 썩 좋은 선택은 아니긴 하지만, 프로젝트 <지금아니면언제?>가 추구하는 바에는 이러한 연출이 적합했다.     


바하칸이 한국에 입국하고, 지휘자와 연주자가 드디어 리허설에 돌입했다. 총 다섯 번의 리허설을 가졌고, 지휘자와 시각장애 연주자는 서로 합을 맞추며 음악을 만들어갔다. 무용팀은 아홉 번에 걸친 리허설과 워크숍을 통해 작품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해서,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연주하고, 청각장애인이 춤을 추며, 두 명의 성악가가 출연하고, 다섯 명의 지휘자가 번갈아 지휘하는데, 지휘자가 바뀔 때마다 웬 남자 하나가 나와 지휘자 팔에 무언가 채워주고 나가는, 아주 특이한 공연이 완성됐다.     


<노리미트 콘서트>를 기획하며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프로젝트가 단편적으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이전 프로젝트와 비교했을 때, 새로운 거 없이 단순히 규모만 키운 것으로 비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런 우려는 예술가와 다른 제작진이 해소해 줬다. 


노정식 안무가와 고아라 무용수 등 무용팀은 다양한 아이디어로 버즈비트를 활용한 무용 창작활동의 단초를 마련해 줬고, 무용 영상을 기획했던 최종원 감독은 구상으로만 존재했던 방식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진솔 지휘자는 시각장애 연주자와 다른 지휘자 간 소통의 다리 역할을 하여, 어려웠던 리허설 과정을 유연하게 만들어줬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각자가 얻어가는 것도 분명 있었다. 장애 예술가와의 협업을 앞두고 막연히 불안해하던 지휘자는 비장애 예술가와의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그리고 음악 이해의 깊이와 같은 부분은 시각장애 연주자가 오히려 강할 수도 사실을 깨닫게 됐다. 시각장애 연주자는 지휘자와의 협업을 통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다.


기획 단계에서는 단순히 참여 인원이 커지고, 회차가 늘었다는, 규모 확대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것 없어 보였던 <노리미트 콘서트>는 이렇게 예술가와 제작진에 의해 완성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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