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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도민 Sep 22. 2023

공연의 접근성을 높이는 가장 간단한 방법

공연 만드는 일하는 사람의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관객이 오도록 할까이지 않을까?

사람들은 홍보·마케팅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버즈비트 프로젝트가 창작의 접근성에 관한 것이면, 이 글은 더 많은 관객이 찾아올 수 있도록 내가 공연 기획에서 어떤 장치를 사용했었는가, 다시 말해 향유의 접근성에 관한 내용이다.     


1. 온라인 상세페이지의 접근성

보통 공연을 보기 위해서는 예매를 먼저 한다. 아마 사람들 대부분은 티켓 예매 사이트를 이용할 것이다. 인xx크, 예xx4, 멜xx켓 같은 사이트 말이다. 아마 비장애인 중 대부분은 온라인상에서 예매부터 결제까지 완료하고, 장애인은 복지할인을 받기 위해 콜센터를 통해 예매한다.(많지 않지만, 일부 공연의 경우 복지할인까지 온라인에서 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면, ‘내가 이 공연을 봐야겠다.’ 마음먹기 전에는 공연에 관한 정보는 어디서 얻게 될까? 관련 기사나 다양한 홍보물, 매체 등등 방법은 많은데, 가장 세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보통 이 예매처 사이트의 공연 상세페이지다. 기획사는 이 상세페이지에 꽤 공을 들인다. 관객이 마음을 먹게 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이랄까? 그런 만큼 이쁘고 화려하게 꾸민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쁘고 화려하게 만들기 위해 문자 정보를 얹은 이미지 파일로 상세페이지를 구성한다. 이게 정안인에게는 별문제가 없지만, 시각장애인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시각장애인은 문서 데이터나 웹 사이트의 정보를 얻기 위해 화면의 글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텍스트만을 읽어주고, 이미지 파일은 인식을 못 하기에 기획사에서 공들여 올린 이쁜 그림은 이들에겐 무용지물이다. 물론 최근에 나온 프로그램은 이미지 파일도 인식하긴 하지만, 여전히 문자 자체만을 입력하는 것이 인식률이 낫고 정확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이미지 파일 하단에 텍스트만 넣으면 끝난다. 상세페이지의 이미지 파일이 담고 있는 정보를 그대로 복사해서 붙여 넣기만 하면 된다. 간편하고 따로 비용이 들지도 않는다.     


2. 티켓 박스에서의 접근성

관객이 공연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찾는 곳은 티켓박스다. 물론 일찍이 예매해서 우편으로 티켓을 받은 관객이라면 상관없겠지만, 그 외 예매 시 현장 수령을 선택하거나 복지할인, 국가유공자 할인 등 추가 증빙이 필요한 할인율로 구매한 관객의 경우 꼭 찾게 되는 곳이다.


청각장애인 관객 역시 그렇다. 다른 관객과 마찬가지로 같은 곳을 향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는 스태프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다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도, 정확한 안내를 받을 수도 없다. 많은 청각장애인은 독순술(상대방의 입술을 읽는 것)로 말을 알아듣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거치며 마스크는 필수품이 되었고, 규제가 완화된 지금도 여전히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 하는 사람의 경우 마스크를 착용한다. 이는 공연장 티켓 스태프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아직도 티켓 스태프에게 마스크 착용을 권한다.)


이건 립뷰 마스크(혹은 투명 마스크)로 해결할 수 있다. 일반적인 마스크를 입이 보이도록 뚫어서 투명 PVC를 덧댄 것인데, 마스크를 착용한 채로 청각장애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해 준다. 이게 비싸다면 비싸다. 일반 마스크가 몇백 원 수준이면, 립뷰 마스크는 3,000원 정도 한다. 이 마스크를 일상에서 계속 써야 한다면 문제겠지만, 어차피 공연장에서 잠깐씩 쓰는 거라면, 비용적으로 큰 부담은 아닐 것이다.(그리고 수작업으로 제작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3,000원은 그렇게까지 비싼 금액은 아니다)     


3. 프로그램북의 접근성

티켓을 찾은 후,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그 사이 관객은 프로그램북과 같은 인쇄물을 읽는다. 출연진에 관한 정보나 연출 의도 같은 정보를 얻고 최근에는 SNS 인증샷 용으로도 이용된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북을 통해 시각장애인도 정안인과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아마 프로그램북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는 것부터 힘들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프로그램북이 무료 배포라는 전제하에) 티켓박스에서 티켓을 나눠주면서 프로그램북도 함께 전달해 주는 것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북을 성공적으로 받았다 쳐도, 시각장애인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왜냐면 대다수의 프로그램북은 정안인을 위한 일반 인쇄로만 제작되기 때문이다.


이는 프로그램북을 점자로도 제작하면 쉽게 해결된다. 제작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시각장애인용과 정안인용, 두 가지 버전을 제작하는 것이다. 정안인용은 보편적인 인쇄물로 만드는 것이고, 시각장애인용은 하얀색 종이 위에 점자만 인쇄하여 제본한 것이다. 점자의 경우 같은 정보량이면 더 많은 지면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정안인이 보는 인쇄물과 같은 양의 정보를 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인쇄물의 대상을 구분해서 각각 제작한다면 시각장애인도 모든 정보를 온전하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인쇄물의 종류 자체가 늘어나기에 제작비가 많이 늘어난다.


다른 방법으로는 프로그램북 하나에 점자와 일반 인쇄 모두를 넣는 것이다. 글자 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정안인보다 시각장애인이 비교적 적은 양의 정보를 얻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일반 인쇄에 약간의 점자 인쇄비만 추가하면 되기에, 기획사 입장에서는 금전적 부담이 적다. 

혹자는 점자로 인한 종이 손상이 미학적으로 안 좋아 보인다고 하는데, 나는 오히려 이게 더 좋아 보이니, 개인적인 취향이라 생각한다.


점자 인쇄에는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종이에 압력을 가해 돌출시키는 원판방식, 그리고 특수물질을 종이에 뿌려 굳히는 UV방식, 두 가지가 있다. 원판방식은 비용이 저렴하고, 가독성이 좋으나 읽다 보면 종이가 금세 닳아서 손상된다. UV방식은 비용은 비싼 편이고 제작 기간이 원판방식에 비해 길다. 하지만 오래 사용할 수 있고, 종이에 ‘상처’를 입히는 것이 아니기에, 정안인이 느끼는 가독성이 높다.     



이 외에도 음성해설, 유니버설 디자인 사용 등 장애인의 문화예술 향유 접근성을 높이는 장치는 많지만,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는 모두 큰돈 들이지 않고, 장애인 관객이 좋은 공연을 찾아오고 즐길 수 있게 하는 장치다. 

공연 만드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런 요소가 문화예술계에서 당연해진다면, 그만큼 관객도 늘 것이다. 


단순히 관객이 많아지는 것 외 또 다른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관객 중 누군가는 공연장에서 이런 부분을 눈여겨보고, ‘이 공연은 장애인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하는구나’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건 곧 예술가, 공연장, 기획자, 작품의 브랜드 가치로 이어진다. 

지금은 ESG의 시대 아닌가? 이러한 브랜드 가치는 그 어떠한 홍보 활동보다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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