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칸은 한국에 약 한 달간 머물렀다. <노리미트 콘서트>와 관련한 수많은 리허설과 워크숍, 공연에 참여하는 게 주된 이유였지만, 다른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노리미트 콘서트>를 기획하는 동안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연락이 왔다. 영국에서 테크 디자이너, 그것도 장애 예술에 특화된 전문가가 온다고 하니,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자는 제안이었다. 놀면 뭐 하나? 기왕 한국에 불렀으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제안은 장애 예술가 혹은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기술개발 아카데미였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은 최근 몇 년 동안 문화예술계의 화두인데, 장애 예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정보나 기회는 기대에 못 미친다. 장애 예술 분야와 관련한 테크 디자이너가 절대적으로 적은 데다, 예술가나 기획자가 이런 기술 전문가를 만날 기회 역시 별로 없다. 바하칸의 방문은 꽤 좋은 기회였다.
나는 바하칸에게 <노리미트 콘서트>와 관련한 일정은 얼마든지 조정할 테니 무언가 꼭 해보자 이야기했고, 그 역시 달가워했다.
이미 유사한 성격의 워크숍이나 마스터클래스를 여러 번 운영해 봤던 바하칸은 역으로 제안했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그러면서 기술개발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모여 장애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필요한 것을 만들어보는 일종의 해커톤을 제안했다.
바하칸이 제안한 프로그램의 특징은 결과물을 특정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결과물이 없어도 된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무엇을 만들지 중요하지도, 심지어는 아예 만들지 않아도 된다. 그저 함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 세부 계획안을 제출 후 몇 번의 수정을 거쳐 <모두의 소리 도구 실험실>라 명명된 일종의 사회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모두를 위한 소리 도구 실험실>(이하 소리 도구 실험실)의 틀은 다음과 같았다. 전문 예술가로 활동하는 장애인이 각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들은 활동하는 장르도, 장애 유형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르기에 각자가 나름의 유니크함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은 참여자는 각종 기술 도구를 활용해서 이들의 예술 활동을 확장시킬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게 된다.
바하칸은 멘토 역할을 맡게 될 예술가는 3~4인의 신체장애가 있는 사람으로 제한했으며, 이들이 멘토링에 상응하는 금전적 대가를 받아야만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서구권에서도 장애 예술가가 정당한 대우나 대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에 본인은 언제나 이 조건을 우선으로 건다고 했다.
참여자 모집에는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장애 예술가와의 협업이나 간단한 전자회로 작업과 같은 기초적인 기술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그렇게 해서, 교육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공연 기획자, 컴퓨터음악 작곡가, 음향 전문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그러면 바하칸은 무엇을 하는가? 바하칸의 역할은 간단하다. 사람들을 이끌어 준다. 장애 예술가의 이야기가 끝나면, 적절한 질문을 던져 기술적 접근이 가능할 부분을 끌어낸다. 그리고 참여자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구현할 수 있도록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와 같은 방안을 제시한다.
<소리 도구 실험실>은 하루 4시간씩 4일간 진행됐다. 음악, 무용 분야 장애 예술가 4명과 교육, 예술, 기술 분야 등에서 활동하는 8명의 참여자, 그리고 바하칸이 함께 했다. 기초적인 전자회로, 전도 페인트, 코딩 등을 활용, 장애 예술가의 표현 방식 확장을 위한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중 일부는 시제품으로 완성됐다.
시제품으로 제작된 것 중에는 흥미로운 장치도 많았다. 손과 팔의 일부가 마비된 음악가를 위한 위치 신호를 사용하는 음향 제어 장치, 장애로 인해 무거운 악기를 들거나 건반을 누를 수 없는 연주자를 위한 허공에서 연주할 수 있는 악기, 공연이나 리허설 중간에 조율이 어려운 시각장애인을 위한 진동 튜너 등이 있었다.
앞에서 말했듯, 이 프로젝트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이것을 만들겠다!”라고 규정짓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말은 무엇을 만들지 모르니까 전부 다 준비해놔야 한다는 것이었다. 바하칸은 나에게 쇼핑리스트를 줬다. 대부분이 처음 듣는 단어, 이름이었다. 심지어 영어로 되어 있으니 더 난감했다. 일단 영어사전과 백과사전을 뒤져 단어를 번역하고, 한국에서 어떤 명칭으로 통용되는지도 찾아보고, 판매자에게 문의해서 적당한 규격을 구매했다. 일부는 바하칸과 함께 방산시장과 세운상가를 돌아다니며 구매했다.
이 프로젝트의 준비 단계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아마 공간 대관이었을 것이다. 미리 준비해야 하는 소모품의 종류와 수량도 엄청났지만, 준비해야 하는 하드웨어도 많았다. 노트북이야 개인 지참하면 되지만, 3D프린터, 목재 재단기, 납땜 장비, 대형 프린터, 각종 음향 장치, 화이트보드 등이 갖춰진 공간이어야 했다. 그러면서 장애인의 접근성까지 좋아야 했다. 사실 한국에는 이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 있다 하더라도 대관료가 상당해 가용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그러다 찾아낸 곳이 꿈이룸학교였다. 이곳은 기술교육에 특화된 대안학교로, 위에서 언급한 장비가 모두 구비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휠체어 접근성이 좋았는데, 스튜디오가 1층에 있어 휠체어 이용자가 굳이 층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됐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공간 바닥에 턱이 없어서 휠체어 이용자를 비롯해 시각장애인의 보행이 편했다. 대관료도 다른 민간 기업에서 운영하는 공간에 비하면 매우 저렴했기에, <소리 도구 실험실>을 운영하기에 최적의 공간이었다.
장애인의 접근성을 위해 바하칸과 나는 다양한 장치를 준비했다. 참여자 중에는 장애인이 없었지만, 멘토는 장애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특수한 상황에서 “접근성을 위해 어떤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가?”부터 참여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접근성이란 상황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다른 장치와 환경 조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바하칸은 ‘자기소개’로 워크숍을 시작하길 원했다. 보통 이런 행사에서 참여자 소개로 시작하는 것이 그리 특이한 상황은 아니지만, 바하칸이 말했던 ‘자기소개’는 참여자와 멘토, 주강사는 물론, 현장 스태프, 통역사, 영상작가, 학교 선생님 등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이름과 역할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이 과정을 넣었던 이유는 장애 예술가 중 시각장애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소개이지만, 시각장애인은 이 시간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순간 누굴 찾아가면 될지”를 알 수 있다. 당장은 바쁜데 시간을 잡아먹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 시간은 결국 시각장애인과 정안인의 정보의 균형을 만들어주는 것이자, 결과적으로 서로 시간을 아끼는 것이다.
더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선택했던 방식은 간소화된 버전이라 볼 수 있다. 각자의 이름과 역할에 더해, 생김새, 옷차림과 같은 외형적인 부분까지 소개하는 것이 정석이긴 하지만, 워낙 빡빡한 일정이었고, 며칠을 연달아 만나기에 옷차림과 같은 부분은 생략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소리 도구 실험실>은 일정 동안 문자 통역 서비스를 운영했다. 청각장애인을 비롯하여 그와 소통하는 모두를 위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청각장애인이라 하면 수화 통역을 떠올리지만, 수화는 작은 그룹에서의 대화 혹은 강연이나 발표와 같은 일방적인 의사 전달 상황에 적합하다. 여러 사람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 대부분인 <소리 도구 실험실>에는 수화 통역보다는 문자 통역이 적합했다.
문자 통역을 신청하는 건 어렵지 않다. 문자 통역 전문 업체에 연락해서, 일시, 장소, 행사 성격, 참가자 규모 등 정보를 알려주면 견적 진행 후 계약한다. (정말 간편하다) 문자 통역에는 별도의 스크린과 문자 통역사가 앉을자리 정도가 필요하기에 큰 자리를 차지하거나 운영에 큰 어려움은 없다. (심지어 스크린은 문자 통역 전문 업체에서 준비해 준다.)
청각장애 예술가의 참여로 문자 통역 서비스를 운영했지만, 의외의 장점이 있었다. 워크숍이 종료된 후 속기록도 따로 공유해 주기에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기술개발 쪽에 있어서는 문외한인 나에게 이런 프로젝트는 쉽지 않았다. 어떤 것을 어디서부터 준비해야 하는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고, 바하칸이 말을 해줘도 알아듣는 내용이 50%나 됐을까 싶으니까 말이다. 아마 바하칸도 적잖이 답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소리 도구 실험실>은 분명 모두에게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
장애 예술가는 기술의 도움을 받음으로써 본인의 예술 활동 영역이나 표현 방식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엿봤다. 사실 이 부분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자명한 사실이며, 굳이 이 워크숍이 아니어도 다른 기회가 많다.
예술가에게 기술이란 어렵고 머나먼 이야기다. 창작이나 연주, 춤추는 것은 자신 있지만, 어떤 기술이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처럼 접근법에 대한 정보를 얻거나 경험을 쌓을 기회는 적다. 이러니 기술 전문가를 만난다고 해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는지,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지와 같이 대화를 풀어가는 방법 자체를 알 길이 없다.
<소리 도구 실험실>은 시작부터 “무언가 만들어 내는 것”보다 “서로를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 워크숍은 장애 예술가가 기술 전문가에게 본인의 예술 활동을 어떻게 전달하고, 이들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유효한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기술적 보조가 창작 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소리 도구 실험실>에는 기술을 비롯하여, 미디어아트,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했다. 대부분 장애인과 함께 작업해 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아마 전문 분야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 워크숍에서 공통으로 얻어간 것을 꼽자면 아마 “장애인의 사용자 경험”이 아닐까 싶다.
장애인이 사용하기 편한 기능은 결국 비장애인에게도 편리하다. 우리 일상에서도 전동칫솔, 컴퓨터 키보드, 문자서비스, 휘어지는 빨대와 같이 장애인을 위해 개발됐지만, 지금은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기술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삼성이나 애플 같은 거대 IT 기업에서도 장애인의 사용자 경험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 하여도, 큰 조직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개인이 장애인의 사용자 경험을 체감할 기회는 적다.
<소리 도구 실험실>은 장애 당사자와 직접 소통하고 함께 디자인과 프로그래밍 작업을 진행하며, 장애인의 사용자 경험을 가까이서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여기 더해, 장애 “예술가”라는 직업적 특수성까지 더해져 참여자는 기술개발과 함께 미적 체험까지 경험하는 자리였다.
참여자 모두가 기술 분야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분야와 상관없이 이러한 경험은 앞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활동할 때 장애인의 접근성을 고민하고, 새로운 기술을 시도하게 되는 아이디어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