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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도민 Oct 04. 2023

모두를 위한 예술

앞으로 버즈비트를 가지고 어떤 시도를 해볼까를 고민하고 있을 때, 와이프가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 말했다. “교육 사업이지. 당연히 교육 쪽으로 가야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니, 매우 옳은 말이다.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선 사용자의 니즈에 맞춰 용처를 바꿔야 하고, 무엇보다 많이 쓰여야 한다. 현재 버즈비트의 사용자층은 협소하고, 그만큼 쓰이는 분야도 제한적이다. 이 부분을 개선해야 하는데, 이에 가장 적합한 것이 교육 분야다.

문제는 나는 교육 프로그램 쪽으로는 아는 바도 없고, 경험도 많지 않다는 점이다. 이전에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K-POP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적은 있지만, 행정적인 운영과 커리큘럼을 제작하는 건 완전히 다르다. 물론 버즈비트 프로젝트 안에는 교육 프로그램도 있지만, 와이프가 말했던 것은 전문 예술가나 장애인만이 아닌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었다.      


문화예술교육이란, 예술을 매개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을 일컫는다. 전문 예술가를 양성하는 교육과는 목적이나 성격도 다르며, 그 대상 계층 역시 훨씬 넓고 다양하다.      

우선 문화예술교육에 관해 배워볼 필요가 있었다. 한국에는 문화예술교육사라는 명칭의 국가 공인 자격증 제도가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관리하는 이 자격증 제도는 2012년부터 시행됐다. 벌써 10년이 넘었으니 내 주변에도 이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지인이 꽤 됐다. 나처럼 예술대학을 졸업한 사람은 학부에서의 이수 내용을 인정받아 5과목만 추가로 들으면 된다. 사실 버즈비트 때문이 아니라 이미 몇 년 전부터 와이프는 나에게 혹시 모르니 일단 따 놓으라고 했지만, 역시 나의 나태함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버즈비트라는 분명한 동기가 있어서 지체하지 않고 신청했고, 한 학기 동안 5과목을 모두 이수했다.     


문화예술교육사 과정을 들으며 버즈비트와 관련한 교육 커리큘럼을 제작했다던가, 직접적인 힌트를 얻진 못했다. 그러나 큰 소득이 있었다.

지금까지 버즈비트 프로젝트에서 진행해 왔던 교육은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전문 예술가를 위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지휘 교육이나 음악 감상 교육과 같이, 좋게 말하면 직관적이고 냉정하게 말하면 단편적인 발상에 머물렀다. 그래서인지 “버즈비트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라고 했을 때 내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아이디어는 “지휘 체험 교육” 정도였다. 물론 이것도 전문 연주자나 지휘자를 지망하는 이에게는 유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문화예술교육사 과정을 거치며 어떻게 하면 버즈비트를 창의적으로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 보게 됐다.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진동 장치가 반응한다던가, 아니면 아예 진동 장치를 떼어 내고 다른 것을 연결, 움직임에 시각과 청각적 요소가 동시에 반응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지난 몇 년간 버즈비트와 관련한 프로젝트를 만들어왔지만, 사실 나의 시각은 이 장치의 기존 목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문화예술교육 과정을 통해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힐 수 있게 됐다.     

버즈비트라는 기술이 단순히 지휘라는 행위, 또는 음악이라는 장르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 대상 역시 무한한 다각화가 가능하다. 애초에 시각장애인을 위해 개발됐지만, 이미 청각장애인이 무용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고, 창작의 영역을 벗어나 교육의 영역으로 간다면 버즈비트의 사용자층은 더 넓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연이라는 기본 틀을 완전히 놓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전히 무대의 영역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는데, 아직 준비 단계에 있는 창작 무용 작품 <~ㅐ서 ㅆ어>가 그것이다. <병사이야기>부터 함께 작업해오고 있는 고아라 안무가의 신작으로, 청각장애인인 안무가 자신이 음성 대화 중 놓치게 되는 많은 언어로 인한 소통의 부재를 다룬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에서 ‘안녕’이 아닌 ‘하세요’만 들음으로써 정작 중요한 내용을 놓치게 되는 상황, 그리고 그런 본인의 특성(?)으로 인해 가지게 된 자신만의 소통법을 다룬다.

이 작품에서 버즈비트는 다른 청인 무용수와의 소통의 도구로 사용된다. 직접적인 ‘지시’를 내리는 것이 아닌, 안무가의 동작에 따른 빛이나 소리에 맞춘 즉흥 움직임을 연출한다. 시각장애인과 음악 장르를 위해 고안된 장치가 청각장애인과 무용 장르에서 또 다른 형태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전 <병사이야기>에서는 단순하게 지휘자의 움직임을 무용수에서 전달하는 기능이었다면, <~ㅐ서 ㅆ어>에서는 창작과 소통의 도구로 기능한다. 지휘자의 움직임이 아닌 안무가의 움직임, 그리고 이것은 곧 진동이 아닌 빛이나 소리로 발현된다.     


솔직하게 말하면, 여전히 이 작품에서 버즈비트가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무용수나 안무가에게 어떤 영감을 줄지 예측이 어렵다. 그리고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며, 어떤 인상을 주게 될지 역시 감이 안 잡힌다. 

안무가와 연출이 제안하는 그림이 구현 가능한가를 기술적으로 고민하고, 제안하는 것 외에는 나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 기술지원 역시 최종원 감독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결국 예술작품은 창작자의 손에서 만들어지고, 관객의 감상과 후기로 완성된다. 작품이 완성되고 무대에서 관객을 마주하는 순간 버즈비트의 새로운 방향성 역시 완성될 것이다.     


버즈비트는 시작했을 때와는 그 용처가 많이 달라지고 있다. 음악 장르에서 시작됐지만, 이제는 무용 장르와 교육의 도구로의 활용을 고민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의 연주 활동을 위해 개발됐지만, 청각장애인의 창작활동의 매개체로 사용되고 있다.

예술이든 기술이든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건 없다. 상황이 바뀌고, 새로운 사람이 등장하면 완전히 다른 시각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시각은 같은 장치라 해도 사용법, 심지어는 목적까지 바꿔버리게 된다.

이 점 때문에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무언가를 꾸준히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마도 나 역시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와 비교하면 조금이라도 달라졌고, 시야도 그 당시에 비하면 지금이 조금이라도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라고 기대하다가도, 무언가 새로운 기획을 구상하다 보면 자기 복제 내지 아예 막다른 길만 보인다. 


결국 사람은 잘 바뀌지 않고, 아무리 연구하더라도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려면 나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었다면, 버즈비트 프로젝트를 6년이나 끌고 올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휘인지 기술의 필요성을 알려줬던 사람부터, 실제로 이 기술을 만들어낸 전문가, 기술적으로 문외한인 나에게 꾸준히 팁을 주고 다양한 시도를 제안하는 사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나태한 나에게 적당한 푸시를 하는 사람까지, 수많은 사람이 이 프로젝트를 완성해가고 있다.      


공연 만드는 일도,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일도 결국 사람 장사다. 

버즈비트의 시작은 기술개발이었지만, 점차 인식과 환경을 개선해 가는 쪽으로 방향이 맞춰지고 있다. 연주자와 지휘자를 연결해 주는 장치에서, 무용수와 지휘자를, 그리고 이제는 창작활동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고, 앞으로는 교육으로 그 영역을 확장하려 한다.  


버즈비트라는 장치를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결국 이런 변화는 예술가와 기술 전문가와 같은 사람들이 만들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곧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 모두를 위한 예술이 당연한 세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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