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말, 코로나19는 좀처럼 가실 분위기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심각해져만 갔다. 공연은 여전히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렇지만 무언가 해야만 했다.
우선 한국에서 버즈비트를 사용하여, 완전한 형태의 연주회를 올리고 싶었다. 영국에서의 첫 시연회 이후 버즈비트를 사용한 연주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2019년 5월, 한빛맹학교 학생들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이 함께 연주했던 <우리 동네 음악회>에서 잠깐 사용된 적이 있었으며, 공연은 아니었지만, <버즈비트 비대면 합주>와 같은 시도는 꾸준히 진행해 왔다. 그렇지만 그 이후 계획은 팬데믹으로 인해 아무것도 못 하고 막혀 있었다.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특히 첫 시연회 이후 숙원사업이나 다름없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지휘 워크숍이 시급했다. 이 워크숍은 2020년부터 진솔 지휘자와 협업하여 커리큘럼을 구성하고, 바로 실행에 옮기려 했었지만, 코로나19라는 불청객이 우리를 찾아와 올스톱 상태였다.
그러다 2021년 초, 코로나19가 살짝 주춤했다. 우리는 공연장이 잠시 열렸던 그때를 놓치지 않고 지휘 워크숍과 연주회를 연달아 진행했다.
연주회 레퍼토리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었다. 첫 시연회에서 전 악장을 연주하지 못했던 나로서는 한을 푸는 기분이었다.(이쯤 되면 운명 교향곡에 한 맺힌 사람 맞는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공연 날 아침까지도 불안했다.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방역지침에 언제 공연장이 닫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관객 없이 비대면·온라인으로 진행했어도 전혀 아쉽지 않았다. 그냥 할 수 있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기뻤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뻤던 것은, 연주회 직전 드디어 시각장애인을 위한 지휘 워크숍을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점이었다.
이 워크숍의 기획 단계에서의 주안점은 시각 신호인 지휘를 어떻게 촉각으로 전달하느냐였다. 지휘자의 움직임은 단순히 말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치밀한 신호 체계다. 철저하게 시각에 의존하도록 고안되고 발전됐으며, 지휘자에 따른 상이성도 분명했다. 지휘 체계의 모든 것을 불과 몇 시간 동안 다 알려줄 수도 없지만, 심지어 그 방대한 내용을 모두 촉각으로 치환하여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우리는 이 워크숍이 가지는 목적, 그러니까 “시각장애인이 지휘자의 신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에 집중했다. 어차피 이 과정은 지휘자를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에, 지휘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과 음악에 확실하게 영향을 주는 지휘자의 움직임 몇 가지를 추렸다.
첫 시간에는 지휘의 정의와 역사, 지휘자 별 음악의 차이를 다뤘다. 이 부분은 의외로 자세히 알고 있었다. 특히 지휘자마다 달라지는 해석과 스타일은 청각이 민감한 시각장애 연주자에게는 꽤 익숙한 개념이었다.
그다음 이어진 두 회차에서는 지휘자의 움직임을 직접 경험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여자가 지휘봉을 잡고, 지휘자의 안내에 따라 손을 따라가는 것부터 했다. 4/4, 3/4 지휘법과 같은 기초이나, 가장 지휘 체계를 쉽게 이해하는 방법이었다. 물속에 손을 넣고 휘저어보며 저항을 느끼는 것도 시도했다. 이를 통해 “매끄럽게”(레가토)를 지시할 때 지휘자의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고무공의 탄성을 느낌으로써 시각장애인은 “짧게 연주하기”(스타카토)와 같은 끊어서 지휘하는 움직임을 체험할 수도 있었다. 이 외에도 바람, 입으로 소리 내기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마지막 시간은 버즈비트를 활용해서 다른 사람의 지휘를 느껴보는 것이었다. 전문 지휘자의 지휘를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주자 본인이 직접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다른 연주자가 반응하는 것 역시 지휘를 이해하는데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지휘 워크숍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참여했던 시각장애 연주자 개개인의 만족도는 물론, 실제 리허설에서도 그 효과를 느낄 수 있었다. 리허설 시 지휘자의 신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속도가 이전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해졌음이 분명했다.
지휘 워크숍은 이후에도 몇 차례 더 운영되며, 보완을 거듭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했던 지휘 워크숍은 클래식이 아닌 국악계에서 활동하는 시각장애 연주자를 대상으로 했다.
한반도에는 조선 시대부터 시각장애 연주자가 존재했다. 조선에는 신분과 상관없이 시각장애인 중 음악적 기량이 뛰어난 자가 궁중 악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했던 관현맹인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지금도 이 관직의 이름을 딴 시각장애인 예술단체가 있다.
여하튼, 국악계 시각장애 연주자를 대상으로 했던 지휘 워크숍은 이전과 같은 구성으로 기획되었지만, 결과는 흥미로웠다.
우리의 전통음악은 서양 고전음악과는 다른 점이 있다. 종과 횡의 차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다. 서양 음악은 오선지에 그려진 여러 음표 중 같은 세로에 놓인 것끼리 정확하게 같은 타이밍에 연주가 돼야 좋은 소리가 나온다. 가로 선율이 진행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화성이 완벽한 타이밍을 이루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에 반해 우리의 전통음악은 호흡의 음악이다. 연주자와 연주자가 동시에 같은 음을 연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같은 호흡과 흐름으로 ‘흘러’ 가는 게 중요하다. 이것으로 인해 국악 연주자와 서양 고전음악 연주자의 호흡법은 완전히 다르고, 서양 고전음악의 지휘는 우리의 전통음악에는 적합하지 않다.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국악에서 악기 ‘박’이 지휘를 담당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러나 국악에도 지휘자가 필요할 때가 있는데, 바로 창작국악이다. 정간보에 쓰인 전통 국악과는 다르게 창작국악은 보통 오선지에 작곡되고, 서양 음악의 문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창작된 국악관현악 작품에서 지휘자의 역할은 서양 음악과 같다.
국악 시각장애 연주자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전통음악의 호흡법에 익숙한데, 지휘자까지 볼 수 없는 상황이니 창작 국악관현악을 연주할 때면 서양 음악을 다루는 시각장애인에 비해 배는 어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니 이들에게 버즈비트와 지휘 워크숍의 의미는 내 예상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우리가 운영했던 워크숍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는 수준의 기초적인 내용이었지만, 그 효과는 분명했다. 단순히 리허설에서 지휘자의 지시를 더 빠르고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는 것 외에도, 음악을 더 다양한 시각으로 느끼게 됐으며, 보편적인 앙상블 형태를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러한 경험은 결국 장애·비장애 연주자가 함께 작품을 만들어가는 환경을 만드는 소프트웨어적인 토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휘 워크숍이 꼭 전문 연주자나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할 필요도 없다. 진 지휘자가 사용했던 기법은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다.
버즈비트라는 기술이 있건 없건, 이 프로그램은 서양 음악을 이해하고,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기에 좋다. 무엇보다 대상에 따른 특수성을 적용시킨다면 꽤 효과적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