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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도민 Sep 12. 2023

소리는 진동이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고민이 됐던 부분은 “어떻게 하면 버즈비트라는 장치를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였다. 매체 혹은 기관, 아니면 개인에게 본 장치를 소개할 때마다 설명을 길게 할 수밖에 없었다. 지휘의 역할, 시각장애 연주자의 존재와 현실, 이 장치가 어떤 기술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등 부연 설명이 많아지고, 구차해졌다. 홍보는 간결해야 하고, 임팩트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은 썩 좋은 방식이 아니었다.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해서 떠올린 게 영상 제작이었다. 공연을 연달아 기획하는 건 힘에 부치기도 했고, 시연회 이후 구상 중이었던 “시각장애인 대상 지휘 워크숍”도 완성되지 않았던 상태라 그 사이 다른 무언가를 해보면 어떨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다행스럽게 국제교류 리서치 작업을 위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런던 현지에서의 장치 업그레이드와 테스트 과정을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물론 본격적으로 영상을 제작하기에는 빠듯한 예산이었으나, 짧게라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평소 친분이 있었던 작가 최종원에게 연락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내가 기획하는 각종 공연의 영상과 사진 촬영을 담당했던 그였기에 버즈비트 프로젝트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고, 장애 예술가와의 협업에도 관심이 깊었다. 예산은 충분치 않았지만, ‘지인 찬스’를 이렇게 사용하게 됐다.     


본 프로젝트를 위해서는 장치를 테스트해 볼 연주자도 필요했다. 영국에서 섭외하는 것보다는 한국 연주자에게 장치 사용의 기회를 주고 싶었기에 트럼펫 연주자이자 시각장애인인 강재현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그는 첫 시연회부터 함께 했던 연주자로, 버즈비트에 대한 경험치도 있고, 새로운 경험과 도전에 꽤 열려있기에 테스터로서 완벽했다.     


마지막으로 한국 테크니션이 필요했다. 앞으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인데, 그때마다 바하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컴맹인 나는 한계가 분명했다. 한국에서 진행될 프로젝트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할 사람, 컴퓨터 기술에 능하고, 코딩에 익숙하며, 음악적 배경을 갖춘 테크니션이 필요했다. 미디어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원우(wonwoolee)를 소개받았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조건에 더해 무경계 예술 활동과 관련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멤버로 적합했다.     


이렇게 프로젝트 <버즈비트 리서치>를 위한 멤버가 모두 모였고, 우리는 2019년 8월 영국을 방문했다. 첫 시연회 이후 꼭 9개월만 이었다.     


프로젝트는 일주일 동안 런던에서 진행됐다. 구동 자체를 단순화하여 시각장애인도 별다른 도움 없이 손쉽게 작동시킬 수 있으며, 진동의 종류도 더 다양하게 하여 더 많은 지휘 동작을 전달 할 수 있는 버전이었다. 나흘간의 테스트 장면과 버즈비트를 착용한 트럼펫 연주자가 지휘에 맞춰 길거리에서 연주하는 장면을 촬영하였으며, 이것은 단편 다큐멘터리 <Sound is Vibration>으로 완성됐다. 이 작품은 같은 해 9월 이집트에서 열렸던 <제1회 여성문화 콘퍼런스>에서 초청 상영됐다.     


지금 다시 보면 지루하기 그지없는 영상이다. 내가 처음 생각했던 “효과적으로 버즈비트를 알리는 것”에서도 벗어난 영상이다. 기술적 설명이 주를 이루니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처음 최종원 감독과 구상했던 내용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던 부분이 많았다. 특히 처음 아이디어를 제안했던 롤프 게하의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우리가 영국을 방문하기 전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생전 영상을 뒤져서 그의 아들 바하칸과 그가 함께 버즈비트의 첫 버전을 테스트하는 장면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우린 수많은 영상 자료를 얻었다. 이전의 자료를 뒤지면서 롤프게하가 프로토타입을 구상하면서 가졌던 어젠다와 방향성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으며,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어느 정도 그리게 된 기회였다. 

한국 연주자와 영국 개발자의 테스트 과정은 기술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졌다. 이때 만들어진 버전은 이후 진행된 수많은 프로젝트에서 큰 변화 없이 쭉 사용된다.

무엇보다 다른 특별한 이벤트 없이 서로가 브레인스토밍하는 과정에 집중했던 이 프로젝트는 업무를 떠나 인간적인 유대를 쌓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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