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기획자, MD
내 인생의 3번째 챕터를 마무리하며.
나의 인생에 3번째 퇴사가 다가왔다.
첫 번째, 두 번째 퇴사와는 달리 세 번째 하는 퇴사는 그 감회가 조금은 남다르다. 이제껏 퇴사를 준비할 때는 끝맺음과 동시에 새로운 시작으로 인한 설렘이 동반되었는데, 세 번째는 그 성격이 다르다. 나의 세 번째 퇴사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완전한 결별, 또 다른 의미로는 휴식과 재충전이다.
길기도, 짧기도 한 10년 6개월이라는 세월을 회사원이라는 정체성으로 살아오며 누구보다 많이 고군분투했다. 열정 많은 사원으로, 노련한 대리로, 추진력 강한 팀장으로, 섬세한 크리에이터로 수히 많은 챕터를 건너왔다. 열정과 노력으로 무장했던 회사생활을 곱씹어 보면, 언제나 타인으로부터의 성과적 인정을 위해 달려왔다. 하지만, 노력과 성과의 양은 나 개인의 성공과 무조건적으로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으며 밑 빠진 독에 갇혀버린 듯한 나를 꺼내고자 퇴사라는 자의적 단절을 결정 내리게 되었다. 앞으로 내 인생 챕터 네 번째는 타인의 인정보다는 나 스스로에 대한 인정을 목표로 새롭게 기획하고자 한다.
커리어 재점검과 리셋을 위해 하나하나 재정렬 하다 보니 낯설지 않은 프로세스가 보인다. 수차례의 신사업 기획을 도맡아오며 수행해 왔던 사업 기획 process가 그것이다. 사업도, 삶도 기획해야만 하는 나란 사람... 이 몹쓸 직업병...
먼저 내가 사업을 기획했던 프로세스는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사업 기획 process
1) 목표, 비전 수립
2)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 실현화 가능성 검토
3) 타깃과 포지셔닝 검토
4) 연간 budget, profit 등 수익화 시뮬레이션
5) 브랜딩
6) 런칭을 위한 타임 플래닝
7) 사업 실현을 위한 필요 resource 책정
8) 실행, 리뷰, Pivot 등 재조정
지금, 삶을 재기획하는 나는 아래와 같은 변형을 따르고자 한다.
커리어 building process
1) 목표, 비전 수립
->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고유의 핵심 가치 설정
2) 장기적 관점에서 사업 실현화 가능성 검토
-> 장기적 관점에서의 성장 지속 가능한 직업/사업군 분석
3) 타깃과 포지셔닝 검토
-> 내가 잘하는 것, 못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대한 재정렬
4) 연간 budget, profit 등 수익화 시뮬레이션
-> 커리어 방향 설정을 위한 교육비, 쉼에 대한 기회비용, 투자 대비 아웃풋과 결과가 효과적인 사업에 대한 리서칭, 추후 예상 수입에 대한 손익 검토
5) 브랜딩
-> 종국에 나라는 사람은 어떤 단어와 문장, 이미지로 표현되면 좋을지
6) 런칭을 위한 타임 플래닝
-> next plan 실현 targeted due date 설정
7) 사업 실현을 위한 필요 resource 책정
-> 사업을 서포트해 줄 자금, 인프라, 팀원 세팅
8) 실행, 리뷰, Pivot 등 재조정
-> 계획된 방향으로 순항하고 있는지 재점검
다만 사업기획과 커리어기획이 다른 것은 어떤 주체와 대상을 두고 기획하느냐이다. 사업기획은 회사와 사업, 커리어는 사람이 그 주체다. 경영과 달리 사람은 철저한 이성과 정량으로만 존재할 수 없다. 상황에 따라 무수히 많은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시뮬레이션대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어 예측 또한 더욱 어렵다.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해도 과거를 마냥 탓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경험은 모든 과정에서 크든 작든 다 가치가 있다. 그것을 알기 위해 처절한 실패를 경험해야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도 나를 모른 채 어디를 향할지 모르는데도 그냥 냅다 달리고 있을 나 같은 사람들에게.
나를 지금 잠깐 휴식하게 한다고 해서 너무 큰 비난은 하지 말자. 더 큰 도약을 위한 잠시의 웅크림은 분명히 필요하다. 첫 회사를 그만둘 때 많은 사수들이 나에게 밖은 오히려 더 냉혹한 전쟁터라며 퇴사를 말렸었다. 그 말이 맞다. 그런데 전쟁터는 맞지만 치열하게 싸울 줄 아는 동료들을 만나고, 부족한 아이템과 스킬도 레벨업 했다. 밖을 나와 모험하지 않았더라면 얻지 못할 무기들을 참으로 많이도 얻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없는 나날을 못 견뎌 초조해할 나를 너무 잘 안다. 그러한 초조함이나 결핍들도 견뎌내 보려고 한다. 글쎄 그런 것들도 언젠가는 쓸데가 있다니까. 조만간 레벨업 해서 만날 나를 기대하며 벌써부터 그리울 몇몇에게 안부인사나 전해야 하겠다. 안녕 내 전 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