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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Oct 03. 2019

사건 사고 없는 여행은 없다(1)

II. 길 위에서

첫날부터 가슴 철렁!


드디어 출발! 내가 탈 방콕행 비행기는 저녁에 출발하는지라, 오전을 다소 여유롭게 보내고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오전에 이것저것 마지막 점검을 완료했다. 빠진 것이 있더라도 현지에서 사거나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누군가 그러더라. 여행엔 돈과 여권만 있으면 된다고. 


5시간 반 가량의 비행 끝에 드디어 방콕에 도착했다. 원래 방콕을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가 그곳에 사는 한 후배를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임신으로 몸이 안 좋아 급하게 한국에 들어오게 되어 무산되었다. 자정 즈음에 도착하는 관계로 공항 근처 호텔을 예약하고 다음날부터는 카오산로드에서 직접 알아본 후 숙소를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방콕 도착해서 식겁한 일이 일어났으니, 어휴 그일 만 생각하면 지금도 눈 앞이 캄캄하다.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심사를 하고 짐을 찾으러 나갔다. 어깨에 휴대한 작은 배낭을 메고... 나의 위풍당당한 커다란 배낭이 트레일러로 유유히 내러 왔다. 아마 속으로 ‘저 큰 배낭을 잘 짊어져야 할 텐데’라며 걱정을  했던 모양이다. 배낭을 들어서 트레일러 뒤 의자에 두고, 작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수첩을 꺼냈다. 픽업 장소를 확인하기 위해 호텔에 연락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순조롭게’ 전화가 걸리고, ‘순조롭게’ 장소를 확인한 후, ‘순조롭게’ 배낭을 메고, ‘룰루랄라~’ 출국 게이트를 빠져나갔다. 호텔 직원이 알려 준 게이트에 갔더니 많은 호텔에서 픽업을 나와 있었다.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내가 묵을 호텔에서 나온 사람을 찾았고, 다른 승객이 아직 안 나왔으니 조금 기다리라 해서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흠.. 공항 주변의 많은 호텔에서 픽업 서비스를 제공하는군. 이 풍경을 사진에 담아 정보를 제공해줘야겠다.’ 나름 사명감으로 카메라를 꺼내려하는데, 앗! 카메라가 들어 있는 내 작은 가방이 없다!!!! 헉!!! 헉!!! 헉!!!! 그게 제일 중요한 가방인데, 내 돈, 카드, 카메라, 넷북. (다행히 여권은 내 손에 있었지만), 중요한 모든 것을 어이없게도 놓-고-온-것-이-다. 


“Oh, my God! Wait a minute!” 호텔 직원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할 틈도 없이 나는 그 큰 배낭을 짊어진 채로 빛의 속도로 달려갔다. 초인적인 힘이었다. 우사인 볼트 저리 가라였다.


출국 게이트 앞의 직원에게 “I left my bag inside there! Let me go inside, please”라고 읍소했더니 사무실을 가리켰다. 또 정신없이 뛰어서 문을 열었더니 험악하게 생긴 사람들이 뭐라 뭐라 떠들며 있었다. 순간 '앗.. 나도 이런 공항 수용소에 갇히는 것인가?'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문을 닫고 나에게 장소를 알려준 직원을 바라보니, 멀리서 아니 아니~ 그 옆이라며 손짓을 했다. 아~ 내가 문을 잘못 열었구나. 옆에 작은 사무소가 있어 들어가니 직원이 왜 그러냐고 물었다. 다시 한번 읍소하며 같은 말을 되풀이앴다.

어떤 항공기를 탔는지 확인하고, 여권을 보여주니 떨떠름한 표정으로 본인의 직원 신분증 카드를 대 주며 들어가라고 한다. 지하철 개찰구 같이 생긴 곳을 통과해 문을 여니 아까 그 짐 찾는 곳이 나왔다. 또다시 빛의 속도로 달려가 아까 그 자리로 가니 한국인 아주머니들이 앉아서 떠들고 있었고, 나의 미니 레콘 빨간색 가방은 아주 얌전히 의자에 앉아계셔 주었다. 거의 울 뻔한 표정으로 가방을 집으니, 옆에 앉아계셨던 아주머니께서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하신다. “아니 가방이 여기 있길래 뭔가 했지..” 그 아주머니가 지켜준 것인지 그냥 앉아계셨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난 감사하다는 말을 백만번은 하고 그 자리를 떴다.


혼이 빠진 상태로 다시 픽업 장소로 갔다. 다행히 그 호텔 직원은 그대로 있었고, 나는 축 늘어진 오징어처럼 의자에 앉아 출발할 때까지 기다렸다.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혼이 빠진 상태였다.


그리고 암기하듯 계속되내었다.

“나는 가방이 두 개다. 저 큰 가방은 없어져도 이 가방은 사수해야 된단 말이다.”


첫날부터 긴장을 너무 풀고 있었나 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첫날부터 국제미아가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불상사가 일어날 뻔했는데, 지금 이렇게 무사히 여행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감사, 감사 또 감사한 일이다.'첫날 이랬으니 앞으로는 정신줄 꽉 잡고 다니겠지?'라고 좋은 쪽으로 해석하고 금방 잊었다. 물론 그렇다고 사건, 사고가 안 일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첫날 호텔방에서 쉬고 있는 내 가방들




방비엥 블루라군의 추억


라오스 방비엥에 머무른 지 며칠째였다. 방비엥은 한적한 시골 동네로 자연 자연한 곳이다. 방비엥에 있는 동안 산책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강에 가서 물놀이를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날은 새벽 댓바람부터 산책에 자전거 타기에 신나게 달리고 나니, 오후에는 조금 쉬어줘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쏭강이 바라다 보이는 카페에서 셰이크나 마시며 밀린 여행기나 써야겠다 하고, 넷북과 카메라를 챙겨 나갔다. 어느 집에 들어갈까 하고 카페, 레스토랑을 따라 걷다가 한국인인 듯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인사나 하자 싶어 "혹시 한국인이세요?"라고 물으니, 그렇단다.


이 얼마 만에 보는 한국인이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가 근처에 있는데 다들 거기서 만났단다.


'블루라군'에 갈 예정인데, 같이 갈 생각 있냐고 물어온다.


블루라군은 '탐 푸캄(Tham Phu Kham)'이라는 동굴 앞의 냇물인데, 물 색이 아름다운 푸른빛을 띠어 '블루라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다. 가 보고 싶은 곳이긴 했으나, 가는데 툭툭 비용이 만만치 않아 혼자 갈까 말까 고민 중이었다. 모여서 가면 절약이 되니, 이 참에 가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수영은 잘 못하니 발만 담그면 되니까 옷은 따로 필요 없다 하더라도 이 가방에 든 각종 전자기기들은 어쩐다?


잠깐 내 게스트하우스에 들렀다 가자고 말할까 고민하다가 이 사람들은 다 준비된 상태이고 이미 툭툭까지 잡아 놓은 상태라서 기다려 달라고 말하기가 미안했다. 그래서 그냥 가기로 했다.


블루라군 가는 길


방비엥의 독특한 산봉우리,  봐도 봐도 묘한 매력이 있다.



툭툭은 시골길을 달려간다. 이렇게 작은 마을 속에 숨겨진 보물인 블루라군이 어떻게 여행자들 사이에 알려지게 되었을까? 푸른빛의 블루라군을 떠올리며, 혼자만의 상상에 빠져 본다. 


다른 곳에서 온 여행자에게 현지인이 말한다. "우리 동네 멋진 곳이 있어. 같이 가 보지 않을래?"


호기심 많은 여행자는 선뜻 응한다. "그래. 한번 가보자."


현지인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달려 시골마을을 지나 '블루라군'에 당도한 여행자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을 다물지 못한다."Wow, it's amazing! Unbelievable~ Awesome!" 온갖 수식어를 다 갖다 대도 모자랄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오후의 햇살이 냇물에 비춰 에메랄드가 빛을 반사하듯이 눈이 부신다.


현지인이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수영도 하고 다이빙도 해. 자, 너도 옷 벗고 물에 뛰어들어봐!" 여행자는 현지인과 함께 옷을 벗고 물속으로 풍덩 뛰어든다. 시원한 물이 더위를 식혀 준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영 삼매경에 빠진 여행자는 꿈꾸듯이 행복하다. 방비엥에 있는 동안 매일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한바탕 수영을 하고 햇살에 비친 에메랄드를 감상하고 돌아가곤 한다. 고향에 돌아가 만나는 사람에게 방비엥의 블루라군 이야기를 한다. 에메랄드를 닮은 소박한 냇물인 블루라군은 그렇게 여행자들에게 알려진다.


이런 상상놀이를 하고 있는데, 툭툭이 블루라군 입구에 도착했다. 동굴 입장권을 겸한 블루라군 입장권을 구입하고 들어간다. 저 앞에 수영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런데 어라 물 색깔이 왜 저래? 왜 똥색이야?


눈 씻고 찾아봐도 블루라군은 없다. "어디 갔어? 블루라군 어디 갔어?"


알고 보니 전날 비가 많이 와 흙탕물이 올라온 것이라 한다. 이건 '블루라군'이 아니라 '브라운라군'이다.


여기서 1차 멘붕!




저 똥물에서 몇몇의 서양 애들이 수영과 점핑을 하고 있다.


나와 같이 온 일행은 나름 옷까지 챙겨 왔는데,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다. 나야 어차피 옷도 없으니 수영은 못하겠고, 그냥 발이나 담가 보잔 심산으로 발을 살짝 넣어 본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내 발이 쑤욱~ 미끄러진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오른쪽 어깨에 천으로 된 숄더백까지 매고 있었는데 같이 물에 빠져 버렸다. 바닥은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을 만큼 깊었다. 앞에 바위가 있어 붙잡았는데 물살도 세고, 바위가 미끄러워 잡히지가 않았다. 몇 번을 허우적거린 후 다행히 앞에 서 있던 같이 온 한국인 여자 친구들 둘이 손을 잡아주어 간신히 빠져나왔다.


나오자마자 생각난 건 가방 속에 들어있던 넷북, 카메라, 휴대폰이었다. 재빨리 꺼내어 배터리를 분리해 테이블에 펼쳐 놓았다. 다행히 물에 많이 젖지는 않았지만...아까 브라운라군 목격 1차 멘붕에 이은 2차 멘붕 사태이다.


일순간 큰 구경거리가 되었다. 나랑 같이 온 일행들도 같이 걱정을 해주었고 일부 서양 애들도 나에게 와서 괜찮냐고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왔다. 나와 같이 온 일행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싶지 않아 나는 여기서 기기들을 말리고 있을 테니 가서 놀라고 말했다. 다들 냇가로 가고, 돌로 된 테이블에 우두커니 앉아 널브러진 기계들을 바라봤다.


제일 큰 걱정은 카메라였다. 그중에서도 메모리카드. 캄보디아 사진까지는 다행히 외장하드에 옮겨 두었으나 라오스 사진은 옮겨두지를 않았다. 케이스를 열었을 때 젖지 않은 것을 확인했는데 그래도 아직은 확신할 수 없는 상태였다. 넷북은 카메라보다는 조금 더 젖었지만 역시 많이 젖지는 않았고, 제일 많이 젖은 것은 휴대폰이었다. 휴대폰은 지퍼 없는 가방 앞주머니에 들어있어 직방으로 물에 젖었고 바로 전원이 나가버렸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기계들을 잘 건조시키고 기다리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지금 걱정해 봤자 달라질 것은 없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더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넋 놓고 브라운라군, 아니 블루라군을 바라본다.


남들을 조금 불편하게 하더라도 잠시만 시간을 달라고 부탁하고, 숙소에 들러 기계를 놓고 와도 되었는데 남한테 불편을 끼치는 것은 조금도 안 하려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반대로 입장을 바꿔 다른 사람이 그런 부탁을 해도 나는 전혀 불편하거나 기분 나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인데, 이건 돌려 생각하면 내가 타인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것일까? 그게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이곳에 온 사람들도 브라운라군이 되어버린 블루라군에 흥이 많이 안 나는지 오래 놀지 못하고 자리를 뜬다. 우리 일행도 대충 놀고 다시 툭툭을 타고 되돌아왔다. 


이미 벌어진 일은 어찌할 수 없고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니 가방을 숙소에 놓고, 저녁을 먹으러 갔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라오스 돈뎃에서 함께 왔던 유스케와 히메 발견. 방비엥에 도착해 그들이 자기네가 가는 일본인들 많은 게스트하우스에 같이 가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으나, 나는 방비엥에서는 혼자 조용히 있고 싶어 정중히 거절했던 터였다. 그래도 이렇게 만나니 반갑다. 그들은 오늘 튜빙을 했단다. 같이 튜빙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술 한잔 하고 있는 중이었다. 나보고 앉았다 가라 해서 동석을 한다. 어차피 숙소 돌아가서 널브러진 기계들 보고 있으면 침울해질 수도 있을 거 같아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스페인 아저씨 3명과 영국 아저씨 1명, 일본 아가씨 1명과 못 보던 또 다른 일본 남자 한 명이 함께 있었다. 어쩌다 보니 이들과 바에 같이 가게 되고, 스페인 아저씨들로부터 스페인 여행 정보를 얻게 되어 유용하고 재미있었던 시간이었다.


사람들과 저녁을 먹고, 일정을 보냈다. 숙소 와서 곯아떨어진 후 다음날 일어나 고장 나도 마음이 덜 아플 것 같은 기계 순으로 시도를 해 보기로 했다. 우선 휴대폰. 이거 너무 속도도 느려져서 어차피 한국 가서 바꾸려고 했던 거니 안되면 이 참에 휴대폰 하나 사야지라는 심산으로 제일 먼저 집어 든다. 조심스럽게 배터리를 끼우고 전원을 켜본다.


두구두구두구두구,.. 떨리는 순간. 전원이 켜지고 무리 없이 작동된다. 아싸 패스!! 


그다음 넷북. 하루 더 두었다가 켤까 고민하다 오늘 할 일도 없는데, 넷북으로 글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아 전원을 켜본다.


그렇지! 이 놈도 착하게 잘 작동한다.


마지막으로 카메라. 제일 떨리는 순간. 메모리 카드와 배터리를 넣고 전원을 켠다. 화면이 들어온다. 사진들을 확인한다. 전날 찍은 사진까지 모두 멀쩡하다. 셔터를 눌러본다. 찍힌다. ㅜㅜㅜㅜ 감격의 순간이다. 


오 신이시여!!! 정녕 이것이 모두 사실이란 말입니까?


모든 기계가 정상으로 작동하고, 나는 환희에 빠져든다. 그러고 보면 첫날 가방 분실로 국제미아 될 뻔한 사건도 그렇고, 이날 기계들 다 날아갈 뻔한 사건도 그렇고 아직까지 행운의 여신은 내 편인 듯하다. 감사 감사!!!


이렇게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하게 팔이 욱신거린다. 내가 카약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팔이 아프지?  처음에는 전날 자전거를 타서 그런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물에 빠졌을 때 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바위 붙잡는다고 팔에 엄청 힘을 줬던 게다. 그 당시는 전자제품에 신경 쓰느라 내가 죽을 뻔했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었던 게다. 사람들이 그리 많은데 죽기까지야 했겠냐마는 어쨌든 물살이 세고 남자들도 발이 땅에 안 닿는다며 굉장히 깊다고 한 그곳에서 큰일 날 수도 있었겠다 싶다. 바위에 부딪혀 무릎에 든 멍과 상처도 발견했다. 보통 부상이 아니었구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포함 모든 것이 무사한 것이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었다.


어떤 이에게는 푸르른 에메랄드 빛깔이 블루라군의 기억이겠지만, 나에게는 흙탕물에서 허우적대며 식겁했던 일이 블루라군의 기억으로 남을 듯했는데,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그래도 이것도 추억이다.


-사건 사고 없는 여행은 없다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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