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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Oct 28. 2019

건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II. 길 위에서

나에게는 만성 어깨 통증이 있다. 스무 살 때 큰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다행히 멀쩡하게 아무 데도 다치지 않았다. 그냥 괜찮겠거니 하고 아무 치료도 받지 않고 넘어갔는데, 어느 날 급성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팔을 못 들고, 밤에 잠을 잘 수 없을 만큼 몇 달을 고통을 겪었다. 통증 관련 치료란 치료는 이것저것 다 받아봐도 소용없다가 당분간 아무것도 안 하고 쉬었더니 차츰 회복되었다. 그러나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라서, 대학 학창 시절 내내 시험공부만 하면 어깨와 팔과 등이 너무 아파 칼로 도려내고 싶을 정도였다. 그러면서 이 통증은 만성이 되어갔고, 일 하면서도 조금만 무리를 하면 어깨가 심하게 굳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늘 어깨가 찌뿌둥하고, 개운한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여행 내내 어깨가 아프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자고 나면 개운하고 상쾌했다.


여행 때, 내가 메고 다닌 배낭의 무게만 15킬로에 육박했다. 물론 한 군데서 짐을 풀고 오래 머무를 때도 있어 매일 지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런 짐을 거뜬히 메고 다녀도 살을 에는 기분 나쁜 어깨 통증은 없었다.


어마 무시한 배낭 메고도 거뜬!!


피부는 햇빛에 그을렸지만 어느 때보다 윤이 났고, 몸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인도에서 피부병에 눈병에 배탈을 겪은 것을 제외하고는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했던 시기였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간단하고 실용적인 규칙이 있었다.


첫째,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여행을 다니면 불규칙할 거 같지만, 어느 때보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습관이 생겼다. 따로 할 일이 없으니 늦잠을 자도 되련만, 새벽이면 눈이 떠졌다. 시장을 좋아하는 나는 아침 장이 열리는 곳에 기거할 때면, 새벽마다 장을 보러 갔다. 장에서 오늘 먹을 채소와 과일도 사고, 활기찬 시장 풍경도 만끽하면 잠이 깨면서 하루의 활력을 얻게 되었다.


루앙프라방의 아침 시장 풍경


둘째, 물을 많이 마셨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물을 자주 마시지 않았다. 물이 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밥 먹을 때를 제외하고 물을 챙겨 마실 여유조차 없었고, 무엇보다 물 마시는 습관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여행에서는 으레 물을 챙겨 다니고, 수시로 물을 마셨다. 처음 여정이 덥고 습한 동남아시아여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는 보통 여행 다닐 때 기본으로 물을 사거나 챙겨간다. 여행자들의 손에는 물이 들려있고, 서로 물을 권한다. 여행 다닐 때 물 마시는 게 습관이 되기 쉬웠던 이유인 듯하다.


셋째, 비타민과 영양제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한국에서는 잘 챙기지 않았던 비타민이었다. 어쩌다 생각날 때 한 번씩 먹는 정도였다. 건강한 몸으로 즐겁게 여행하고 싶었기에, 여행 가서 아프면 답이 없다는 생각에, 비타민과 각종 영양제를 바리바리 챙겼다. 그리고 매일매일 빠지지 않고 먹었다. 


넷째, 많이 걸었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이동수단이 없는 곳에서뿐만 아니라 대중교통이 있는 곳에서도 몇 정거장 거리는 걸어 다니는 게 다반사였다. 여행의 미덕은 걷기이다. 내 발로 땅을 밟으며 이동하는 것, 그것이 몸에 주는 희열과 발견이 있다. 내 발바닥이 지면을 차고 올라올 때, 발과 다리에 전해오는 건강한 느낌. 그리고 내 몸을 실어 나르는 차에 올라타지 않고, 내가 직접 자연과 또는 인문환경과 직접 마주함으로써 자신이 그 환경의 일부가 된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 여행에서의 걷기의 정서적 체험은 매우 강력하다. 그런 정서적, 성찰적 효과를 차치하고라도, 걸어 다니는 습관은 내 몸을 놀라울 만큼 건강하게 만들었다고 믿는다.


자연이든 도시든 걷기는 기본!!!


돌아와서도 한동안 비슷한 생활을 유지했었다. 그래서 바쁜 삶 속에서도 건강이 유지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잊고 살았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 다시 여행자의 삶을 되새겨 본다. 지금 물 한잔을 꿀꺽했고, 비타민을 삼켰다. 최근에 지인들과 걷기 챌린지를 하면서 출퇴근 시 몇 거장을 걷고 있다. 옛날 여행할 때 생각이 났다. 일부러 다른 골목으로 걸어가면서 못 보던 식당들도 눈여겨보고, 누군가의 집 담장 밖으로 고개를 내민 나무 잎사귀에 비친 달빛도 느껴본다. 여행할 때 아프지 않고 악착같이 건강하게 여행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비타민을 챙겨 먹었던 것처럼, 아프지 않고 건강하고 활력 있게 삶이란 여정을 통과하기 위해 내 몸을 돌봐야겠다. 여행자의 삶처럼 좀 더 많이 걷고, 물도 수시로 마시고, 비타민도 꼬박꼬박 챙겨 먹고,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야 말로 건강하게 살기 위한 아주 간단하면서도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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