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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Sep 18. 2019

나는 왜 떠나는가?

I. 떠나기 전


 떠나는 날을 앞두고 친구가 물었다.

  

“너는 왜 떠나? 여행이 뭐가 좋아?”

 

“음.. 글쎄. 자유?”

  

그렇게 대답은 했지만, 내가 왜 떠나는지 이유를 구체적으로 물어보니 명확히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냥’이라고 말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그 질문을 받은 뒤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나는 왜 떠나는가?

무엇이 나로 하여금 짐을 싸서 떠나게 하는가?

  

어릴 적부터 나는 어딘가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혼자서 버스를 타고 여의도 광장에 가기도 했고 (그 당시 여의도는 자전거와 롤러스케이트 타는 광장이 있었다.), 광화문 교보문고도 가보고, 작은집에 혼자서 놀러 가서 어른들의 경탄을 자아내기도 했다. 낯선 곳의 풍경을 보는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이동 중에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행동들을 보면서 저 사람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런 호기심을 가지고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이런 어릴 시절을 떠올려 보니, 낯선 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이것이 나를 떠나게 만드는 거 같다.

  

그러나 이미 여행을 많이 다녀봤기에 잘 안다. 낯선 곳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이 본질적으로는 내가 있는 이 곳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예를 들어 여행 중 내가 좋아서 자주 찾는 시장의 풍경은 들여다보면, 서울의 시장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여기 우리 동네 시장에서 보여주는 역동적이고 살아 숨 쉬는 장면에서도 충분히 감흥을 얻을 수 있다.

공원은 어떠한가? 아직 우리나라의 도시 면적 대비 공원의 면적이 부족하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에도 아름다운 녹지와 잘 조성된 공원이 많다. 이번 여행을 떠나기 전 서울의 몇몇 공원을 다니고 사진을 찍으며, 서울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공원이 많은데 우리는 매번 유럽이나 북미와 비교해서 공원이 부족하다고만 이야기한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은 공원의 유무의 문제가 아니라 공원을 이용할 마음과 시간의 여유가 문제인데 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은 흔히 내가 가려고 하는 캄보디아, 라오스, 네팔 등에 사는 사람들에 눈에서 아직 바래지 않은 순수함을 발견하러 간다고 한다. 나 또한 그것을 기대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 순수함과 인간성을 우리나라 사람에게서 발견 못하는 것은 아니란 생각도 든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낭만적 생각의 일환이었는지, 나는 여행자의 마인드로 종종 서울과 서울의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다. 그런 마음으로 바라보니 서울도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일 뿐 아니라, 각박함 속에서 사는 서울에서도 어여쁜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모르는 사람들이 베푸는 친절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결국 eye of the beholder(보는 사람의 눈)의 문제가 아닐까...

  

그러면 '여행은 왜 떠나냐'라는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특히 아직도 나를 이해 못하는 우리 엄마는 이런 나의 이야기를 들으면, 쌍수 들고 환영하며 '그렇게 특별할 것도 없는 여행을 굳이 왜 떠나냐'라고 반문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건 그냥 내 직관으로 생각한 것일 뿐, 실제 경험한 것과는 다르다고."  
가끔 놀랄 때가 있다. 그냥 직관과 머리를 굴려 생각한 것이 경험해 보니 너무나 맞을 때... 그렇지만 실제 경험해서 느끼는 것과 직관으로 느끼는 것의 파장과 강도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아마도 나는 이것을 확인하기 위해 떠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는 왜 여행을 떠나냐?’는 친구의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유럽이나 미주 등 지난 세월의 여행 사진들을 다시 보았다. 그때 나는 어떤 생각들을 했었는지 더듬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더듬어 생각해 보니 여행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나와 나를 둘러싼 환경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아등바등하며 붙잡고 있던 것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을 느끼기도 하고, 내가 고집하는 방식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자각에서 아집을 버리게 되기도 하고, 나의 실존적 모습과 대면하는 중에 나라는 인간의 실체를 똑바로 보게 되기도 한다. 뭐, 여행의 좋은 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을 테지.

   

어린 나이도 아닌데, 회사를 관두고 돌아올 뚜렷한 날짜도 없이 떠나는 나를 신기해하며, 또 다른 사람들은 묻는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무엇이냐고?


그럼 나는 대답한다. “Nothing!”


무엇인가를 얻으려고 하면 계산하게 되고 집착하게 되어 이 여행을 결정하지 못했을 거라고.


6개월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인데, 이 시간을 여행에 투자하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고민이 있었고, 그중 큰 고민이 이 시간으로 무엇을 얻을까였다. 그런데, ‘이 여행을 떠나서 아무것도 못 얻어 오면 어쩌지’란 질문과 그 질문에 내포된 불안 속에서 ‘아.. 내가 아직도 못 버리고 있구나, 이런 집착이 결정을 힘들게 하는구나’란 깨달음이 왔다. 무언가 얻으려면, 무언가는 놓아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결정이 쉬워졌다. 뭐 아무것도 못 얻어도 좋다. 못 얻으면 못 얻는 그 자체로 배움이 있을 테니까.

  

My journey has star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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