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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Apr 06. 2019

선택의 어려움

I. 떠나기 전

어떤 이는 오랫동안 세계일주(일종의 장기 해외여행)를 꿈꾸고 준비해서 다녀오기도 하지만, 내 경우는 세계일주에 대한 동경이나 오랜 소망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잃은 상황에서 길을 찾기 위함이었다.

나에게 있어 20대와 30대 초반까지 인생의 화두는 진로였다. 그러다 보니 한 우물을 파지 않고, 여러 번 진로를 바꾸어왔다.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다가 대학원에 진학하여 심리상담을 전공하고, 심리상담사로 일하다 회의감이 들어 다시 회사에 취업하여 일을 했었다. 당시 겉으로 보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성과도 인정받고, 회사 내에서 관계도 나쁘지 않았고. 그러나 나는 공허하고 기계적인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목적을 꾸역꾸역 버티고 있는 삶에 부합시키려고 합리화를 하면서 정신적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별이어서 자신만의 빛을 낸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뿜어내는 빛을 잘 발산할 수 있으면, 누구나 매력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빛이 무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고, 가지고 있던 빛마저도 서서히 잃어버리게 된다는 점이다.  당시의 나도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눈은 동태눈이 되어가고 있었고, 회사를 출근하는 내 발걸음은 좀비의 그것이었다.  다시 심리상담을 해야 하나, 아니면 아예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하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대로는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어서 잠시 멈추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회사를 관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면, 세계일주(엄밀히는 장기적인 여행) 하자라는 계획이었다.

물론 거기까지 결정하는데도 많은 고민이 있었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는데, 한창 커리어를 쌓으며 일을 해야 할 때 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상당한 불안을 유발했다. 과연 내가 지금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서 장기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다시 누릴 수 있을까? 다녀온 후 최악의 상황이 되어도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까? 여행을 가서도 아무것도 못 얻어오면 어쩌나라는 질문과, 그에 뒤따르는 불안에 섣불리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과정에서 결정을 못 하고 고민 고민하는 것은 내가 여전히 많은 것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 이 상황을 못 견디겠고 만족감이 1도 없는 상태라면, 그 상황을 버리는 게 낫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는 벗어나고 싶으면서 그에 뒤따르는 손실이나 불확실성은 떠안고 싶어 하지 않으니 결정이 어려운 것이었다.

우리는 중요한 선택 상황에서 종종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인생의 중요한 기로에 서 있는 경우, 더더욱 결정이 어려워 이도 저도 못하고 괴로움에 빠지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본질적으로 그 선택으로 인한 손해를 보고 싶지 않아 하는 욕구, 즉 손실회피 성향이 높기 때문이다. 그 선택의 좋은 점은 누리면서, 나쁜 결과는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선택은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어떤 선택의 결과 꽃놀이패만 쥘 수 있다면 왜 선택이 어렵겠는가?

인생의 어려운 선택은 내가 그 결과까지도 감수하겠다는 결단과 책임감에서 가능하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선택이 어려울 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선택을 한 후 최악의 상황이 와도 이 선택을 하겠는가?' 

그 당시, 나에게 한 질문은
'이 나이에!!! (지금 돌아보면 차암~ 젊은 나이었지만) 경력을 단절하고, 향후 결정된 것도 없이,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여전히 진로에 대한 답도 못 내린 채, 지금 누리는 삶의 수준을 누리지 못하며 비참해진다 해도 이 결정을 할 것인가?'였다.

그 대답은 (썩 유쾌하지도 않고, 여전히 불안은 했지만) '그렇다'였다.

이 지점에서 혹자는 (실제로 여행 중에 만난 누군가도 나에게 그런 질문을 했다.) 내가 집안이 부유해서 먹고 살 걱정이 없으니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던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대학 때부터 내가 스스로 용돈을 벌어 쓰고 (다행히 감사하게도 대학 학비는 부모님이 지원해주셨지만), 대학원도 내가 첫 직장을 다니며 번 돈으로 다녔다. 집안이 절대 넉넉하거나 먹고 살 걱정이 없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내가 누군가를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에서는 자유로웠지만 (그러기에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은 인정하고 감사한 점이다), 나의 생계유지는 절대적으로 내 몫이었다. 그리고 지금에서는 많이 내려놓았지만, 당시에는 성공과 인정에 대한 욕구가 여전히 내 안에 도사리고 내 행동을 지배하고 있던 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나는 여행 중에 배울 것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인생의 선택은 그 선택으로 좋은 것만을 얻으려 하면 어려워지는 것이고, 내가 그 불확실한 결과까지도 감수하겠다는 결단과 책임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것은 여행을 하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 사실 중요한 것은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선택을 하고 나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이다. 이런 선택을 해도 저런 선택을 해도, 그 이후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은 선택이 될 수도, 나쁜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상단 표지 사진 출처: © soymeraki,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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