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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Mar 11. 2020

내가 좋아하는 것을 깨달은 순간

II. 길 위에서

브라질 사람인 안토니오. 태어나기는 브라질에서 태어났으나, 주욱 런던에 살아서 영국 엑센트가 강했다.  그는 음악을 한다고 했다. 작사, 작곡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말하자면 싱어송라이터인 셈. 일주일에 두 번 저녁마다 고아에 모인 여행자들이 자발적, 즉흥적으로 참여해 잼콘서트가 열리는 록키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사람이 많아 내가 앉은 테이블에 그가 합석을 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서로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길에서 나에게 록키 카페를 소개해 준 미국인 아저씨(이 아저씨도 여행자인데, 일종의 사회자 및 콘서트 기획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었다)가 내게도 나와서 노래든 춤이든 뭐든 해보라고 권유한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을 했다. 안토니오는 자주 이 카페에 오는지 이 아저씨와 안면이 있는 듯했다. 들어보니 몇 번 무대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이날은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하더니만, 어떤 두 청년이 하는 연주를 듣고, 그 연주와 어울리는 곡이 떠올랐다며 미국인 사회자 아저씨를 불러 무대에 오르기를 예약한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고아에서 생긴 눈병이 다 회복된 것이 아니라 그만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안토니오가 부르는 노래까지 듣고 가기로 했다. 이날 따라 무대에 오르려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안토니오의 차례가 자꾸 미뤄졌다.   

 

처음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것처럼 했던 그였지만, 무대를 기다리는 그의 모습에서 설렘과 흥분, 약간의 긴장이 교차되어 보였다. 노래는 무난했다. 워낙 유명한 곡이라 사람들의 호응도 좋았다. 무대를 마치고 내려와 그가 물었다. 자기 노래가 어땠냐고.  나는 그의 노래의 좋은 점을 곁들어 칭찬을 해주었다. 워낙 유명한 노래라 관객들 분위기가 좋았다며 겸손을 보였지만, 그의 표정에서 음악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고아에 온 이유는 레코딩을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세계 각지의 뮤지션들이 고아에 많이 모인다고 한다. 그래서 그도 고아에서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피곤이 몰려왔으므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떴다.  

 

그러고 나서 신기하게도 거의 매일 안토니오와 길에서 마주쳤다. 고아에는 몇 군데 유명한 해변과 그 주변에 조성된 여행자 거리가 있는데, 내가 있던 곳은 아람볼 해변이었다. 여행자들이 가는 곳이 워낙 뻔하고 메인 스트릿이 작기 때문에 자주 마주칠 법도 했다.  만날 때마다 그는 아람볼에서 공연이 열리는 카페와 공연 소식을 알려주며 시간이 되면 방문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처럼 일몰을 보며 해변을 산책하고 돌아가는 길목에서 안토니오를 마주쳤다. 늘 밝게 웃으며 인사하던 그가 힘이 없어 보였다. 무슨 일 있냐고 물으니, 이틀간 앓아누워 있었다고 한다. 매번 마주칠 때마다 그저 반갑게 인사와 근황만 나누고 헤어졌던 그가 잠깐 자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없겠냐고 물어왔다. 다행히 저녁 식사 약속시간까지 여유가 좀 있었고, 그의 표정이 너무 안 좋아 보여 근처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처음에는 장에 탈이 나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움직이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하더니, 심리적으로 에너지가 고갈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지는 자기가 준비하던 음악 작업이 좌초해 있다는 것이었다. 고아에 와서 진행될 줄 기대했던 레코딩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게 되자 갈피를 못 잡고 에너지가 다운된 것이다. 


그런데 깊숙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지난번 고아에 왔을 때 자기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일종의 고객이자 의사결정자 측에서 자신의 기대대로 반응을 해주지 않고 있어 답답해하고 불안해하는 듯했다. 그는 그들의 관심과 가능성을 믿고 자신이 만족할 정도로 완성도를 높여 다시 고아에 온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또한 적극적으로 접촉을 해서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듯했다. 어떤 두려움과 불안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에게 내가 이해한 그의 소망과 바람을 반영해서 되들려 주고 덧붙여 물었다.


"그런데, 네가 무엇 때문인지 주저하는 느낌이 들어. 무엇이 널 주저하게 만드는 거야?"  

 

그가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지만, 빙빙 돌려 말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직접적으로 물었다. "여기서 네가 제일 두려운 게 뭔데?"   


그가  약간 당황한 듯했지만,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진짜 이야기가 나왔다. 그게 중요한 포인트였던 것이다. 그는 일종의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접근-회피 갈등. 즉, 그 음악을 레코딩하고 성취하고 싶은 바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도에 수반되는 결과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질문을 해서 들어보면 그 두려움 또한 그가 예상하고 추측하는 것이지 실체화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에 대해 반박하고 설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그가 그 두려움을 직면했으면 했다. 그리고 선택하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을 속여도 너 자신을 속이지는 않길 바라."  

테이블 사이에 놓인 촛불이 그의 촉촉해진 눈을 아른아른하게 했다.  

"너는 네가 원하는 것과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있어. 어떤 것을 얻거나 보호하기 위해서는 한쪽을 포기하고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여있네. 그 선택은 네 몫이야. 그게 잘 될 것인지 안될 것인지는 나도 모르고, 너도 몰라. 하지만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또한 네 몫이고 그 또한 네가 감당해야 할 몫이지. 너는 네가 네 음악을 수정하고 발전시켜 현재 상태에 더없이 만족한다고 했어. 그거면 너는 작품에 대해서는 네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거지. 네가 두려워하는 것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감당할 수 있다면, 또는 그것을 더 나은 상황으로 대처할 수 있다면 다시 한번 그쪽에 접촉을 해 볼 수 있겠지. 결국 어떤 쪽이든 선택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아."   

대강 이런 말을 했던 거 같다. 그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너무 뚫어져라 나를 쳐다보기에, 내 영어가 그에게 이해가 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몰라 계속 "I mean~ (내가 의미하는 건 말이야~)"을 연발하며 다른 표현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내 이야기에 집중하며 자신의 생각을 다듬는 중이었다.  

    

그는 예상되는 두려움을 감수하고, 다시 한번 상대 쪽에 적극적인 접촉을 해보겠다고 이야기했다. 카페를 나와 길을 걸으며, 그가 내게 감사를 표했다. 들어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지고 실타래 같던 생각이 명료해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게 미안함을 덧붙였다. 자기 때문에 내 기분이 다운되거나 에너지를 뺏긴 게 아니냐고. 얼마 전 자기 친구가 힘들어해서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 줄 때, 자기는 에너지가 다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며...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말하지 않은 게 있는데, 나 상담심리학 석사 학위 받고 수련도 받았어. 클라이언트의 고통을 충분히 공감해 주되, 그것을 내 감정과 분리하는 것 또한 수련 내용이기도 해.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러자 그가 표정이 환해지며, "와, 정말? 그럼 내가 right person에게 이야기한 거네. 어쩐지... 하하하"  


"그래. 맞아. 하하하."  

    

도움이 되었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내 마음도 뿌듯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회사를 관두고 제2의 전환기에서 앞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 떠오르는 여러 선택지 중에서 어느 것도 뚜렷이 가닥이 잡히지 않고 생각이 실타래처럼 얽혀 있었다. 경험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선택을 좀 더 명료하게 하기 위해 오른 여행길이었다.  


출발을 하며, 마음먹었던 것이 하나 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오른 여행길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에 골몰하느라 현지에서 보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것을 놓치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  그래서 우선은 생각을 떨쳐 버리고, 'Here & Now'에 집중했다.  그러다 보면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내 몸과 정신에 축적되어 어느새 결정에 다다르게 될 것이라는, 아니면 적어도 결정에 도움을 줄 거라는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생각에 골몰하지 않고, 순간순간 오감에 나를 내맡기고 느끼고 즐기는 여행을 했다. 그래서 너무나 충만했고, 감사하게도 그 믿음이 배신하지 않았다.  


사람들을 만나면,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여행을 온 이유를 질문받았고, 그 질문에 답을 하면 뒤따르는 질문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가였다. 그 물음에 대답할 때마다 귀결되는 한 가지 선택이 있었다. 초반에도 그 선택을 우선순위로 말했지만, 항상 부연 설명이 뒤따랐다.  

"지금 여러 가지 옵션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선순위로는 이것을 생각하고 있어."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부연 설명은 줄거나 생략되고, "이것을 할까 생각하고 있어."라고 대답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귀찮아서일 수도 있고, 자꾸 말하다 보니 자동적이 되어서일 수도 있지만, 알게 모르게 생각이 정리되었던 것 같다.  

    

하나로 귀결된 선택은 바로 심리상담을 다시 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과 좋아하는 것이 너무 많아 탈인 나이지만, 심리상담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변화와 성장을 돕는 것, 그리고 삶과 사람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물론 이 결정에 뒤따르는 어려움이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꽃길만 걸을 수 없는 게 인생이니, 그 또한 내 결정에 수반된 나의 책임일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나는 다시 심리상담을 시작하였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전에도 했던 일이라 같은 자리로 돌아왔지만, 단순히 같은 자리는 아니다. 바퀴가 한 바퀴 굴러 제자리에 돌아왔어도 그 바퀴는 예전의 바퀴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나에게 무엇이 본질적인 것이고 무엇이 비본질적인 것인지 분명하게 깨닫고, 비본질적인 것들은 내려놓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서인지 예전에는 불만스럽고 불안한 부분도 기꺼이 수용하게 되었다. 물론 수동적으로 수용만 하는 것은 아니고, 필요하다면 개선하기 위한 행동도 하고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를 병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개인상담만 지속하는 것에 대한 갑갑함은 외부 강연을 함으로써 달래고, 수입이 불안정한 일의 특성 상 다른 부업 병행하기도 한다. 또한 만물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 삶의 방식도 점점 수정되어 왔고, 예전에는 생각지 못한 일들도 하고 있다. 몇 년 전 개인 상담소를 연 것도 그렇고, 최근에 심리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여러 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시도하고 확장하고 있다. 인생은 알 수 없는 것이기에 몇 년 뒤에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자리에서 내 가치의 우선순위에 따라 내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힘껏 쥐고 있는 불필요한 것을 내려놓고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여행하며 체험하고 깨달은 것이 고스란히 내 몸과 마음에 장착된 삶의 원칙이 되었음을 다시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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