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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Mar 13. 2020

집에 가는 길

II. 길 위에서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석양


6개월 여간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 델리 기차역 앞에서 공항 가는 버스를 탄다. 여행 막바지에 다다르며 점점 가벼워졌던 배낭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선물로 다시 무거워졌다. 그래도 마음은 가벼웁다. 버스 안에서 자리를 잡고 떨어지는 해를 바라보며 감회에 젖는다. 예상 밖으로 아쉽기보다는 신나고 설렌다. 너무 좋아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어, 이건 여행을 시작할 때의 기분과 같은 기분인데? 스스로 놀란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여기 여행지에서 보면 떠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결국 삶은 순환이다. 시작은 끝이고, 끝은 시작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에 이런 내용이 있다.  

2세 때는 똥오줌 가리는 게 자랑거리
3세 때는 이가 나는 게 자랑거리
12세 때는 친구들 있다는 게 자랑거리
18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20세 때는 섹스를 하는 게 자랑거리
35세 때는 돈이 많은 게 자랑거리
50세 때는 돈이 많은 게 자랑거리
60세 때는 섹스를 하는 게 자랑거리
70세 때는 자동차를 운전할 수 있다는 게 자랑거리
75세 때는 친구들이 남아 있다는 게 자랑거리
80세 때는 이가 남아 있는 게 자랑거리
85세 때는 똥오줌을 가리는 게 자랑거리
                          
                                     다리우스 워즈니악의 스탠드업 코미디 <사랑할 땐 언제나 청춘> 중에서

  


재미 속에 대단한 통찰이 숨어있다. 결국 인생이란 누구나 똥오줌 가리는 것을 배워서 자랑스러워하다가 죽는 순간에도 결국 똥오줌을 내 손으로 가리는 것으로 마감하면 그만인 것이다.


이 문구를 보며 결국 여기에서도 삶의 역설적인 순환을 이야기하고 있구나 싶었다.   


이 여행...  

떠나올 때의 설렘과 흥분이 고스란히 되살아나 돌아가는 순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떠나올 때와 돌아갈 때의 나는 질적으로 같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의 나의 집, 나의 방,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로 되돌아가는 것. 나의 물리적 위치는 그대로일 테지만, 심리적, 정신적 위치는 다소간 좌표 이동을 했을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웃음>에서 그려지듯 우리 인생도 도돌이표 인생이고, 대단한 것을 성취하며 살아도 결국에 죽을 때 똥오줌 내 손으로 가리는 것이 자랑이면 그만인 것이지만,  도돌이 하는 동안 무엇을 경험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또한 인생이기도 하다.

바라나시 강가에서 시체가 타들어가는 것을 보며, 죽을 때 누구나 빈손으로 돌아가는 게 인생인데  뭘 그리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삶이란 게 참 덧없다고 느꼈지만, 한편으로는 삶이 그리 덧없는 것만은 아닌데, 열심히, 의미 있게 잘 살아야 하는 것일 텐데라는 상념에 잠겼었더랬다.   


그런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그동안의 일련의 생각들이 체험 가운데 정리됨을 느꼈다. 일출과 일몰을 보며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인생이 출발과 끝이 같은 순환하는 것이기에 쓸데없는 집착과 욕심을 버릴 수 있지만, 어떤 가치관과 어떤 실천으로 이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 다른 향기와 모양의 궤적이 그려질 것이다. 


나는 내 궤적이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향기로웠으면 좋겠다. 당당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궤적을 그리는 순간순간을 즐길 수 있으면 좋겠고, 그 순간을 통해 타인들에게도 이로움과 행복을 주는 궤적이었으면 좋겠다. 

  

회사를 그만두고 장기여행을 계획했을 때 (물론 여행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고민이 있었다. 늦은 나이에 적(籍)을 포기하는 것, 안정된 밥벌이를 뒤로 하고 목적 없이 장기 여행을 떠나는 것, 내 의지로 결단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불안을 내포한 선택이었기에 고민이 없을 수 없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한 친구와 대화를 나누었다.


"선택에 대한 후회를 하고 안 하고는 어떤 선택을 했느냐가 아니라, 선택한 후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임을 머리로는 알지만, 과연 내가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내 질문에,  친구가 대답했다.
"이전과 같은 안정적인 삶으로 돌아오긴 힘들겠지. 조금 더 지난해질 수도 있어."

 

워낙 시니컬한 친구이고 이 친구도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결정을 했었기에 그 삶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몸소 느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삶이 고단해질 때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했었을 것이다. 겪어본 자만이 할 수 있는 적나라한 대답이었다. 이상하게도 뻔한 위로나 응원보다는 그런 친구의 말에 오히려 더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다. 나만 겪는 불안이 아니라는 것에 연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더불어 그 친구가 내 선택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했고.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긍정적 지지와 응원의 말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반대의 의견, 부정적 의견도 반드시 들어봐야 한다. 그런 의견들을 들으면 어떤 선택으로 인해 예상되는 삶의 고단함과 불편감 그리고 부정적 결과들을 가늠해 볼 수 있다. 혼자서도 가늠할 수 있지만, 다른 목소리를 듣게 되면 더 신중하게 고려할 수 있다.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서도 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그건 어느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단단한 선택이 될 것이고, 그래야 후회도 적다. 이번 내 선택이 그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난 나의 여행들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달랐던 이번 여행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이 감사했다. 많은 고민 끝에 시작한 출발이었지만, 떠나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들, 발견하지 못했을 것들,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느끼지 못했을 순간들을 떠올리며 정말 잘 떠나왔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러기에 돌아가는 시간이 설레고 신났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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