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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을 거닐다 Apr 09. 2020

한 번뿐인 인생여행

III. 돌아온 후

여행은 새로운 장소로의 이동을 포함한다. 한 곳을 여러 차례 가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대체로는 장소마다 평생 한번 방문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면 '여기를 내가 언제 또다시 와 보겠어'라는 마음이 되어, 지금 이곳에서 해 볼 수 있는 것과 먹어볼 수 있는 것은 되도록 체험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해보고, 먹고 싶은 것을 다 먹어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산이나 상황, 자신의 선호에 따라 제한이 주어지기도 한다. 또한 그곳에서 유명하고 남들 다 하고 먹는 것이라고 해서 따를 필요도 없다.



 

삶도 여행이라면 그리고 여행하듯 산다면, 이번 생(生)도 다시 올 수 없는 한 번뿐인 여행이 아니겠는가. 이런 의미의 모토가 욜로 (YOLO; You Only Live Once)이다. 인생은 한 번 뿐이니 '현재를 살라'는 카르페디엠(Carpe diem)과도 연결되는 말이다. 그런데 어째 이 모토가 현재의 '소비'를 부추기고,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회피'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남발되고 있어 씁쓸하다. '어차피 저축하고 모아도 집 한 채 사기도 힘든 시대, 미래는 모르겠고 현재의 즐거움과 만족에 집중하자. 그러니 여행이든 먹는 거든 노는 거든 자동차든 쓰고 싶은 대로 쓰자'라며 욜로라는 말을 빙자하여 즉각적 만족을 불러일으키는 소비에만 치중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욜로 하다 골로 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데, 첫째는 '인생은 한번 사는 것'에 내포된 인생은 내 전 생애를 아우르는 것인데 이걸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인생은 오늘만 살고 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욜로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여행을 떠올린다. 짧게 다녀오는 여행이라면 이 순간을 만끽하자며 해 보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에 돈을 아끼지 않을 수 있다. 이 또한 개인의 선택과 그에 따른 만족이 수반된다면 나쁘지 않다. 그러나 장기여행을 해보면 그 자체가 삶이 되기 때문에 며칠만 살고 마는 문제가 아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여행을 충만하게 하기 위해 균형 잡힌 태도로 임해야 한다. 욜로는 'You only live one day'가 아니라 'You only live once'라는 점을 구분해야 한다.


물론 현재의 점이 모여서 전체 인생이 되는 것이니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미래를 걱정하며 장밋빛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희생하는 삶을 사는 경우가 많다. 현재의 즐거움을 억누르고 참으며 어떤 목표를 위해 달려간다. 그 목표를 누가 설정했는지, 무엇 때문에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지 이유도 모른 채 말이다. 그리고 그 목표에 도달했을 때 숨 돌릴 새없이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시험 쳐서 입학하면 졸업을 향해 달려가고, 졸업하면 취직하고, 취직하면 결혼하고, 아이 낳고 집 사고, 승진하고 애들 졸업시키고, 결혼시키고 등등. 이 과정에서 현재는 없다. 이런 삶의 방식의 문제점에 직면하여 등장한 것이 욜로라면, 욜로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는 한 번뿐인 인생인데 아무 생각 없이 남들이 옳다고 하는 길, 사회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세뇌하는 길만 따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인생 한 번뿐인데 내가 해보고 싶은 것을 그저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시간 낭비가 될까 봐, 사회적 시선 때문에 못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뭘 위해 이렇게 달려가고 있는 건지 잠시 멈춰서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같은 길을 가더라도 내가 선택한 길이라면 그 길은 내 길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자는 의미가 욜로인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에 집중한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먼 미래의 목표 달성에 둔 초점을 과정에서의 즐거움과 음미로 옮기자는 말이다. 과정의 순간순간은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고 경험이다. 가령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4월 9일 오후 5시는 내 생애 한 번뿐인 순간이다. 그러기에 이 순간은 찰나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영원한 것이 된다. 순간들을 소중히 사용하고 음미해야 하는 이유이다. 물론 도를 닦지 않는 이상 매 순간을 음미하고 집중하며 살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관점과 지향을 가지고 있는 경우와 아닌 경우의 삶의 양태와 충만감은 다를 것이다.


왜곡된 욜로의 두 번째 함정은 욜로를 소비에 치중하는 삶으로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어차피 이 푼돈 모아봐야 집도 못 사는데 사고 싶은 거, 누리고 싶은 거 다 누리자', '인생 한 번뿐인데, 뭘 고민해, 지르자' '아~ 스트레스받아. 소중한 나를 위해 이거 하나쯤 사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 탕진잼, 시발비용이라는 속어 또는 신조어가 등장한 배경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소비를 부추기는 대중매체의 마케팅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런데 소비로 얻어지는 만족이라는 것은 일시적이고, 끊임없이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바다에서 목이 마르다고 바닷물을 퍼 먹으면, 순간은 목마름이 해소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더 큰 갈증으로 목이 타는 것처럼 말이다. 여행에서도 만족은 소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마주한 것들을 음미하고 향유하는 데서 온다. 삶도 그러하다. 물론 어떤 경험은 지불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경우도 있어 소비를 아예 배제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소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자문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소비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마음의 공허함을 채우기 위함이라면, 그 효과는 미미하거나 지속력이 짧아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여행의 순간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언젠가는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할 유한한 시간이다. 인생 또한 한 번뿐인 여행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우리 삶은 유한하고, 그 기간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며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다. 유한하기에 소중한 것이고, 소중하기에 잘 가꿔야 할 것이다. 각자에게 만족스럽고 충만한 여행이 있을 것이다. 그 여행은 어떠한지 떠올려본다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가 그려질 것이다. 각자의 가치관이나 선호, 성격 등에 따라 지향하는 바는 다를 것이다. 여행에서의 지혜를 통해 삶을 살고 있는 나로서는 앞서 여러 챕터에서 기술했던 방식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때로는 그 경로에서 벗어나 사회나 미디어나 집단의 가치에 휩쓸릴 때도 있지만, 여행에서 얻은 삶의 지침이 다시금 나침반이 되어 나를 인도한다. 그것이 나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 쉬이 돌아오게 된다. 물론 제행무상(諸行無常), 변하지 않는 진리는 없다. 현재 내 삶의 지향점이나 가치관은 상황이 바뀌면 폐기되거나 수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당분간 이 지향점으로 살아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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