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생애 첫날인 것처럼
III. 돌아온 후
이전에도 여행을 안 다녔던 것이 아닌데, 이번 여행은 이전 여행들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그중에서도 크게 달랐던 점은 그 여행지들에 대한 생생한 기억과 순간순간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점이다.
이 장기여행에서 발을 들여놓았던 곳들을 떠올리면 하루하루의 기억이 생생하다. 어떤 날씨에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었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무엇을 느꼈는지, 거기 사람들의 눈빛은 어땠는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는지, 어떤 하루하루를 보냈는지가 놀랍게도 생생히 기억난다. 반면에 이전에 다녀왔던 유럽의 여러 도시들, 북미의 여러 도시들, 출장으로 다녔던 도시들도 좋았지만, 기억은 듬성듬성하고, 생동감이 크지 않다.
왜 그럴까 여러 차례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는 여행기간이었다. 장기여행이다 보니 한 군데서 오래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 여유롭게 순간을 음미할 수 있게 해 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 군데서 오래 있으면 익숙해지고, 그러면 그저 그날이 그날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 타성에 젖지 않을 수 있던 두 번째 이유는 기록의 힘이었다. 당시 거의 매일 일기를 쓰고, 의미 있는 순간은 블로그에 올려 공유하고 남겨두었다. 기록하면서 순간 또는 지나고 난 하루를 음미하고 정리했다. 그 과정에서 기억이 더 생생하게 남아있을 수 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후 블로그 글을 보며 다시금 떠올리기도 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차이는 나의 선택과 결단 때문이었다. 결단이라고 하니 되게 거창하게 들리는데 대단한 것은 아니고, 매일이 마치 첫날인 것처럼 그리고 새로운 장소인 것처럼 낯설게 보며 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겠다는 무언의 다짐이 몸소 실천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매일을 첫날인 것처럼 내가 사는 장소를 새로 방문하는 여행지인 것처럼 낯설게 바라본다면 이 삶이 지루하거나 벗어나고 싶거나 답답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장소도 내 기분에 따라 날씨에 따라 계절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다만 내가 눈을 감고 있었던 것일 뿐... 매일 만나는 사람도 낯선 시선과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면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다. 다만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봤을 뿐...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동안 낯설게 보기를 실천해왔다. 덕분에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매일매일이 흥미롭고 새로웠다. 별 것 아닌 것도 새롭게 보니 의미가 새겨지고 흥미로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잊어왔다. 이번에 브런치에 다시 글을 쓰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는 일상을 낯설게 보기를 다시 시도하게 됐다는 것이다.
많이 인용되는 알프레드 디 수자의 시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에서는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 하루가 내 생애 마지막 날인 것처럼 생각하면 시간을 소중히 사용하며 온전히 나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시구는 진리 중의 진리이다. 나는 여기에 덧붙이고 싶다. '살아라, 오늘이 첫날인 것처럼.' 신생아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낯설게 보이지 않겠는가? 세상은 탐구의 영역이 되고, 매일매일이 흥미롭고 설레는 날일 테다. 새로운 장소에 떨어진 여행자의 눈에도 세상은 그렇게 비치듯이 말이다. 하루를 마지막인 것처럼 의미 있게 살되, 여행자의 마음으로, 신생아의 눈으로 오늘이 첫날인 것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당신의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