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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Jan 28. 2017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XII

'근육'

         

 일반적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근육의 크기를 증가시키는 과정을 두고 벌크 업(bulk-up)이라고 한다. 이 벌크 업이 사람뿐 아니라 반려동물에도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녀석의 어깨와 등판이 본격적으로 떡 하니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목줄과 하네스를 풀고 울타리가 둘러쳐진 땅에서 다른 개들과 하루 종일 뛰어놀기 시작한 뒤부터였다. 


이렇게, (하체운동)


요렇게, (가슴운동)
저렇게, (등운동)
고렇게, (유산소운동)


 웨이트 트레이닝처럼 부위별로 분할하여 써두었지만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저 반려견에게는, 특히 시베리안 허스키에게는 광활한 대지를 마음껏 뛰노는 것만큼 이롭고 완전한 전신운동이 따로 없다. 시베리안 허스키의 운동량은 어릴 적부터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반려견을 길러보신 분들도 막상 키우기 시작하면 혀를 내두르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시베리안 허스키의 운동량이다. 평생 반려견을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이상 길러오신 이웃이 있는데, 코카 스패니얼, 롯트와일러, 믹스견, 도베르만핀셔 등 내로라하는 덩치와 힘, 성격과 운동량을 지닌 녀석들을 모두 각각 10년 이상 기르신 경험을 가지고 계셨다. 


 얼마 전 그분들이 기르던 강아지가 갑작스레 하늘나라로 떠나게 되어 우연찮은 기회를 통해 새로이 가정을 찾는 시베리안 허스키 자견을 입양하게 되었다. 불과 2개월령의 남아였는데, 이미 활동량과 에너지가 이제껏 기르던 개들과 너무나도 확연하게 달라서 첫 한 달간은 산책 때마다 크게 당황하셨다고 한다. 하지만 이제 겨우 3개월 반 남짓한 남아를 두고 당황을 하신다면 대략 8개월을 넘어갈 즈음 녀석의 운동량과 근력, 지구력은 경악을 넘어설 것이므로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것임을 일러드렸다. 




 실제로 허스키는 3개월령까지 귀여운 외모와 앙증맞은 몸집, 포근한 털을 두르고 안아달라며 쉴 새 없이 사람에게 안겨든다. 문제는 마의 4개월부터 8개월 사이에 악마의 이갈이 시즌과 함께 엄청난 중량 증가가 이루어진다는 것인데, 이 기간 동안 허스키 자견의 몸무게는 약 3배에서 4배까지 증가한다. (4~5킬로그램 -> 18~20킬로그램) 이후로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남아의 경우 23~25 킬로그램, 여아의 경우 18~21 킬로그램 즈음에서 정착을 하게 된다. 


 허스키는 명실상부 체중 대비 끄는 힘이 가장 강력한 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실제로 썰매견으로 사역하는 허스키들의 경우 새벽부터 눈뜨자마자 썰매를 짊어지고 달리고 싶어서 몸 둘 바를 모른다고 한다. 그만큼 에너지가 넘치고, 근력을 소모하고자 하는 욕구가 대단한 동물인 것이다. 


억지로 불러들이지 않는 한 산책용 리드줄이 느슨해지는 경우가 없다


 개들을 산책하는 방식에도 여러 종류가 있고, 또한 견종에 따라 산책 방식도 천차만별인 법이다. 어떤 개들의 경우 자기 시야에 주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극도의 불안감을 느껴 늘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이 있는 반면 호기심이 왕성하고 주도적인 성격이라 앞으로 튀어나가 있어야 해방감을 느끼는 녀석들도 있다. 시베리안 허스키는 종의 특성상 결코 주인의 뒤를 쫓아다니는 개가 아니다. 썰매견으로서의 역사가 핏줄에 흐르는 탓인지 주인이 자기보다 앞에 있으면 오히려 안달복달하고 어쩔 줄을 모르는 편이며, 자기가 앞서 길을 가고 후방을 주인이 든든하게 지켜주고 지켜봐 주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간혹 위계질서 등의 개념을 바탕으로 모든 개들이 마치 주인 발뒤꿈치를 졸졸 따라다니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견주분들도 있지만 이는 종의 특성을 무시한 관념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상황에 따라 뒤를 졸졸 따라다니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반경 1미터를 벗어나지 않은 채 산책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할 필요는 있지만 대대손손 벌판을 맘껏 뛰어다니던 녀석들의 본능을 24시간 동안 억제시키는 것은 지나친 폭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줄이 닿는 데까지 맘껏 풀어주었다가도 개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보이면 "이리와"라는 말로 곧바로 불러들이고,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날 땐 "뒤로 따라와"라는 말로 졸졸 따르게 하고, 계단 같은 곳에선 "천천히"라는 말로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속도로 맞추어 갈 수 있는 것이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것 아닐까. 




잠시 여름 캠프에 보내 두었던 제노는 방목에 가까운 운동을 매일같이 즐긴 나머지 상남자가 되어 있었다. 어깨와 가슴이 딱 바라져 있었고 다리와 허리도 두리 뭉실이 아닌 두툼한 느낌으로 단단해져 있었다. 군대에서 첫 휴가를 나온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느낌이 이런 걸까,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다른 개들과 열정적으로 놀며 코에 상처도 생기고, 무엇보다 가슴이 딱 벌어진 모습의 제노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도시 생활로 돌아와 원래의 두리두리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불과 석 달도 걸리지 않았다. 근육량의 증가로 인해 25 킬로그램까지 올랐던 체중은 다시 23 킬로그램으로 돌아왔고, 남자답던 어깨와 가슴 라인은 어느새 헐렁한 러닝셔츠를 걸친 중년 아저씨 몸매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하루 5 킬로 이상 조깅 산책을 하고 식사량도 조절하는데도 불구하고 야외생활과 실내 기반 생활의 차이는 이다지도 큰 모양이었다. 


순식간에 다시 이렇게 됐다. 대흉근은 그냥 가슴살이 되었고, 전신 벌크업은 배둘레햄이 되었다. 


 다시 한번 군대에 빗대 보자면..... 병장 만기 전역을 한 지 만으로 두어 달 되어가는 예비역의 모습이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주체할 수 없이 몸이 물렁물렁해지고, 밥 먹고 놀 때 빼곤 다 누워있고만 싶은..




춥고 황사? 미세먼지도 심한 날이었지만 오늘도 어김없이 제노를 데리고, 그리고 제노의 친구인 니클라스와 함께 야외로 산책을 다녀왔다. 쌓인 눈이 간밤의 폭우로 모두 녹아버려서 기대했던 눈밭은 모두 진흙 진창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녀석들을 뛰어놀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노, 니클라스, 제노 엄마, 제노 아빠, 닉 엄마, 닉 아빠, 우리 딸내미인 햇살이까지 모두가 진흙범벅이 되어 놀다가 귀가했다. 


2살 제노와 3개월 니클라스 (둘 모두 크리스마스에 가족의 품에 안겼다)


마치 큰형과 동생처럼, 니클라스는 제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곧바로 따라한다. 정말 사랑스럽다!


 커다란 마당이 있어 늘 녀석의 근육량을 유지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 주인이라면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본격적인 겨울 추위가 시작되고부터 산책 때마다 마주치던 제노 친구들의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공원이 가장 붐빌 시간에도 예전의 5분의 1 정도밖에 친구들을 마주치지 못한다. 물론 귀찮고, 춥고, 힘든 일이지만 하루 종일 지루함을 견디고 몸을 베베 꼬면서 잠시나마 바깥공기를 쐬고자 소망하는 녀석들을 생각하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견주분들이 조금 더 힘을 내주셨으면 좋겠다. (물론 정말 추운 날은 나도 모르게 별 한숨이니 푸념이 다 튀어나온다. 하지만 빼먹은 적은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단 한 차례도.)




'근육'이라는 애매한 단어를 타이틀로 삼고는 있지만 이번 글의 주제는 허스키의 타고난 운동량과 녀석들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 어떤 것인지를 소개하고 싶었다. 그러나 허스키가 아무리 운동량을 필요로 한다한들 육아에 비하면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죽하면 나는 제노 엄마에게 육아를 처음부터 다시 하느니 허스키 네 마리를 기르는 게 쉽겠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육아와 허스키 육견의 차이라면 육아는 진이 빠지지만 아이가 잠들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는 것, 육견은 살이 빠지고 개와 함께 드러누워 단잠을 청할 수 있다는 것. 글쎄, 제노와 햇살이의 아빠인 나는 어느 하나 포기할 수가 없어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같은 처지에 놓인 세상의 모든 아빠들(개든, 고양이든, 아가든)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이번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 12℃
단둘이서 한 시간 반동안 뛰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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