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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ssian Jul 01. 2017

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XXXI

'소풍'


  미세먼지가 극심했던 5월 초 황금연휴가 지나간 다음부터 5월 중순~ 6월 중순까지는 비교적 날씨가 맑고 대기질도 나쁘지 않았다. 6월 말부터는 장마와 폭염이 시작되므로 제노 엄마와 나는 이 기간을 최대한 활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가족은 가족 행사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지난주까지 매 토요일, 일요일마다 소풍을 나갔다. 사계절이 뚜렷하다고는 해도 예전에 비해 봄과 가을이 대폭 짧아졌고 공기 오염도 심해지는 바람에 이처럼 소풍에 적합한 계절은 우리에게 있어 일 년에 두어 번밖에 찾아오지 않을 귀중한 기간이다. 


 이제 곧 생후 20개월을 맞이하는 햇살이와 생후 32개월인 제노가 좋은 날씨에 함께 신나게 뛰놀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누리게 해주고 싶었다. 시간은 늘 야속하게 흘러가고 가장 소중하게 남는 것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분명 제아무리 이렇게 노력해도 훗날 아쉬움은 남을 것이다. 다만 지금의 소풍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지 못할 햇살이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린 시절 제노 오빠와 함께 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는 기억과 추억할 수 있는 사진들을 간직할 수 있다면. 그리고 제노가 살아가면서 '이 사람들과 함께해서 좋다'거나 '우리 가족과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라고 느낄 수 있다면. 아가들에게 그런 기억, 추억, 마음을 선물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너무나 컸기에, 우리는 주말 아침마다 사력을 다해 부산을 떨면서 공원으로 강가로 나섰다. 


햇살이는 벌써 이만큼이나 컸다. 첫 산책때만 해도 엄마 손잡고 아장아장이었는데 이젠 못 뛰어다니는 곳이 없다. 제노도 가끔씩 햇살이의 활달함에 당황할 정도- 


제노의 존재 덕인지 햇살이는 밖에서 만나는 모든 강아지들에게 극도의 호감을 보이며 다가가곤 한다. 사진에는 제노와 친구 리트리버- 





 사실 전혀 특별할 것도 없고 모두의 소풍과 다를 바 없을 나들이. 하지만 가장 소중한 존재인 우리 가족과 함께하는 소풍이기에 굳이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세 단계란 바로 다음과 같다. 


[준비+출발],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뛰놀기], [실신 및 귀가]


오, 드디어 주말인가요? 미안해요, 요즘 날짜 가는 줄도 몰랐어요 아빠.


엄마의 피크닉 가방엔 하루종일 마실 것들이 가득해 마냥 행복한 햇살이(햇살이는 하루종일 뭔가를 마신다) - 햇살이와 함께 외출하면 가방이 항상 묵직한 이유




[준비+출발]


 일출과 거의 동시에 항상 기상하는 부지런한 엄마, 그리고 야행성 올빼미의 대명사인 아빠 중 아빠를 외모부터 성격, 체질까지 빼다 박은 햇살이는 이름과 다르게(물론 햇살이는 별명일 뿐 본명은 아니다.... 근데 본명이 햇빛을 의미하는 한자이니 본명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야행성에 가깝다. 생후 20개월 즈음임에도 취침시간은 밤 11시에서 12시 반 사이,  기상 시간은 오전 9시 반에서 10시 반 사이이다. 오전부터 이른 오후까지는 찌뿌둥해하다가도 해가 질 무렵부터 컨디션이 최고조를 향해 치닫기 시작하는, 전형적인 저녁형 아가의 떡잎을 벌써부터 보이고 있다. 한편 제노는 원래 엄마를 닮아 이른 저녁부터 졸려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알로페시아 증상 치료(은빛 시베리안 허스키 30화 참조)를 시작하면서 산책 횟수를 늘려 새벽 산책을 나가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햇살이와 비슷한 시간에야 하품과 기지개를 뻗치고 본격적으로 집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한가로운 주말 오전임에도 가족 구성원 대부분이 정신을 차리는 시간이 약 오전 10시에서 11시 무렵이다 보니 아침식사와 나들이 준비를 마치고 결과적으로 우리가 가장 빨리 현관을 나설 수 있는 시간은 대략 오전 11시 반경이 된다. 굳이 장면을 묘사해보자면,,,


[ 늘 일찍 깨어 햇살이와 아빠가 몇 시에 일어날까, 너무 늦어서 나들이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제노 엄마 / 영문도 모르고 아침부터 고구마 달라고 신나게 주방으로 달려가는 털북숭이 아들내미 / 주말 아침 늦잠을 즐기느라 잠이 깨서도 함께 딩굴딩굴거리는 햇살이와 아빠(엄마 속도 모르고) ]


얘들아, 이젠 익숙해졌지만 이렇게 나들이 나가려면 생각보다 엄빠의 많은 준비가 필요하단다....아.. 체력도..


 부랴부랴 제노의 장난감(주로 공), 외출용 간식, 햇살이의 까까와 물, 이외에 여러 잡동사니들을 전부 준비한 다음 나는 제노를, 엄마는 햇살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넷이서 털레털레 밖으로 나간다. 이쯤 되면 우리 가족의 상태는 주로 다음과 같다.  [기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빠는 늘 정신이 혼미하고, '모두와 함께 외출 = 소풍 = 긴 야외활동'임을 눈치챈 제노는 초흥분 상태. 아빠와 마찬가지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불편한 심기와 외출한다는 신남이 공존하는 햇살이. 어찌 되었건 다 끌고 나오는 데 성공해 안도했지만 이미 지친 엄마.]  연례행사처럼 제노 엄마는 햇살이와 유모차를 끌고 아빠를 억지로 깨울 커피를 사들고 나오고, 그 사이에 아빠는 초흥분한 털북숭이의 배변을 해결하려 노력한다. 소변은 간단히 해결 가능하지만 엄마와 햇살이가 카페에서 나오기 전에 대변까지 완료할 확률은 정확히 반반이다. 


 엄마와 햇살이가 커피를 사들고 나오면 제노라는 녀석은 별로 기다리지도 않은 것 같더니만 늘 정신없이 달려가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제노 엄마가 제노에게 간식이나 먹을 것을 주는 것도 아니다. 막상 유모차나 햇살이 근처에 있으면 별로 관심도 보이지 않으면서 산책 중 햇살이가 탄 유모차와 일정 간격 이상 거리가 벌어지면 그리로 가겠다고 나를 마구 잡아끌어댄다. 어쩌면 제노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본능적으로 가장 잘 깨닫고 있는 녀석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이란 바로 '함께 하는 이들', '함께 가야 하는 존재들'이라는 의미를. 


 여기서부터 소풍의 목적지인 공원까지의 여정은 늘 평화롭다. 때로는 목적지가 강변 공원이기도, 때로는 인근 공원이기도 하지만 그 장소가 어디냐와는 관계없이 제노는 놀러 간다는 마음에, 햇살이는 엄마가 쥐어주는 빵조각에, 엄마는 이제 잠시 평화가 찾아왔다는 생각에, 아빠는 '커피 졓아,'.. 라는,,, 각자의 감상과 기대에 심취에 있는 단계이기도 하다. '


햇살아.. 다 좋은데.. 네가 유모차를 미는 건 좀 아닌 것 같아.. 엄마는 사진만 찍지 말고 이리와서 햇살이좀 말려봐요..(제노 아무생각없음) - 햇살이 아장거리던 어느 겨울나들이




[체력이 방전될 때까지 뛰놀기]


목적지에 도착!!! 하면 일단 아빠의 임무는 돗자리를 펴거나 어느 벤치에 자리를 잡는 일이다. 


이렇게 아가들이 자리를 잡고 놀 수 있도록,


요렇게 다같이 복닥복닥 모여 놀 수 있도록,


모두가 놀다 지쳐 쓰러질 수 있는 곳에, 


햇살아 뭘 혼자 그렇게 다 쏟아놓고 먹고 있어.........


 예전에는 고무공을 하나 던져주면 햇살이와 제노가 함께 곧잘 쫓아다니곤 했다. 그런데 햇살이가 조금 크면서부터는 공 차는 놀이에 흥미를 잃고 유모차에서 내리자마자 엄마 손을 잡고 어린이 놀이터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돗자리에 제노와 덩그러니 남은 나는 제노와 공놀이를 시작하는데 대략 15분에서 20분 정도 신나게 놀고 나면 이 건방진 아들내미는 '제가 이제 공놀이에 뛸 듯이 즐거워할 수준은 아닌 것 같아요'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아가는 공과 나를 번갈아가면서 멀뚱멀뚱 쳐다본다. 침 흘리면서 공 따라다닌 주제에. 공원에서 제일 신나게 논 주제에. 체력이 다 떨어졌으면서 괜히 지친 티 내기엔 자존심 상하니까. 


그래, 대략 개춘기 아들 마음 아빠가 이해한다. 


더워요. 지쳤어요. 공놀이 재미없어요.(그런데 너무 신나게 놀아서 사진의 빨간 공 이날 사망..)


 제노가 지칠 무렵이면 어린이 놀이터 방향에서는 잔뜩 흥분한 햇살이의 고함소리(거의 절규 수준)가 들려온다. 남다른 목청을 가진 데다가 소리 지르는 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제노 오빠가 전혀 짖지를 않으니 자기가 그 몫까지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을 하는 건지, 아무튼 햇살이의 격정과 성량, 우렁참은 이미 주변에 상당히 알려져 있다. 그리고 엄마는 햇살이의 활달한 뜀박질에 이리저리 목각인형처럼 끌려다니면서 평화를 찾은 이쪽 돗자리국을 향해 SOS 신호를 보낸다. 쉽게 말해, 교대시간이다. 


 슈퍼파워견 김제노를 자유자재로 데리고 다니는 건장한 아빠도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맥을 못 추는 유일한 상대가 있는데 바로 햇살이다. 대략 10개월 후반쯤부터 혼자 뒤뚱뒤뚱 걷기 시작해서 돌잔치 때에는 혼자 한복 입은 채로 걸어 다녔던 햇살이는 약 14개월 즈음부터 거의 모든 것을 휩쓰는 허리케인 수준으로 달리고 뛰고 모든 것에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생후 19개월인 지금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크로바틱한 행동들을 해대서 엄마와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심장이 덜컥하곤 한다. 


 그렇게 제노 엄마와 교대하여 햇살이의 에너지를 감당하고 나서 돗자리에 기진맥진 돌아오면 엄마는 햇살이를 위한 과자를 개시하고, 나는 제노에게 묻는다. "제노, 목말라? 물?" 너무 지쳐 있던 털북숭이 아들은 자신이 목마르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다가 "아! 이 답답함은 갈증이었군! 그래 바로 그거였어!"라는 듯한 벼락맞은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 수돗가를 향해 달려갈 태세를 취한다. 수돗가에 제노를 데려가 물을 먹이면 신기하다는 듯이 구경하는 분들이 많다. 허스키를 왕좌의 게임이라든지에 등장하는 하드코어하고 고어한 야수의 모습을 기대하는 분들이 의외로 있다는 걸 깨달았다. 딱히 근질근질한 이빨로 수도꼭지를 부수기 위해서라거나 사냥 훈련을 하고 돌아와 입가에 묻은 피를 닦는 그런 게 아닌데,, 


음... 그냥 오늘 물통을 안 가져와서요,,, 얘가 빨대 사용법을 잘 몰라서요,,, 

모두의 기대와는 달리 제노는 수줍게 물을 할짝거릴 뿐...

뭐 하나 액션을 가르쳐야 하나..  


 간식과 물로 배를 채운 아가들은 2라운드, 때로는 3라운드까지 뛰어논다. 늘 햇살이보다는 제노가 먼저 지쳐 돗자리 주변에 드러눕는다. 오전 11시 반에 집을 나섰음을 감안하면 제 2, 3라운드 즈음은 하루 중 가장 더울 무렵이 된다. 더위가 절정에 달해 햇살이도 제노도 더 이상 움직이겠다는 의욕을 보이지 않으면 그때가 바로 집에 돌아갈 시간!


네가 지금 먹고 있는 건 우리가 준 게 아닌 것 같다만...


완전히 지친 제노 - 아기 매트에도 그렇고 돗자리에도 그렇고 저렇게 슬며시 영역을 침범하는 버릇이 있다



뒷정리를 하고 귀가 준비를 마치니 이미 유모차에서 꿈나라로 떠난 햇살이..



[실신 및 귀가]


 귀가할 무렵이면 햇살이는 대부분의 경우 유모차에서 잠들어버린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반씩 깨지 않고 곤히 잠들어 있어서 엄빠와 제노 오빠는 햇살이가 잠에서 깰 때까지 봄바람을 맞으며 집 근처의 벤치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잠든 햇살이와 그 곁에 뻗은 제노 & 봄날씨를 즐기며 너희가 기분좋게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엄마와 아빠

 

 시간상 귀가 후 다소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곤 하는데 때때로 햇살이가 한 시간 넘게 잠들어 있을 때면 제노 엄마와 함께 주린 배를 움켜쥐고 기다리곤 했다. 그래도 부모의 마음이란 게 뭔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아가들의 모습을 보고 있는데 한낱 잠시의 배고픔 따위야.'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순간 '아- 내가 이제 진짜 부모가 되었구나!' 싶었다.  


 햇살이가 잠에서 깨고 나면 우리는 또다시 부산을 떨면서 왁자지껄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햇살이의 손발을 씻기고 점심을 준비하느라, 아빠는 제노의 발을 닦고 흙먼지를 털어내고 유모차와 짐들의 뒷정리를 하느라 한참 동안 분주할 것이다. 햇살이는 엄마아빠가 분주한 동안 여기저기 스티커를 붙이고 돌아다니거나 만화를 틀어달라고 졸라댈 것이고, 산책에서 돌아온 제노는 물과 간식을 내어달라고 해맑은 눈으로 혀를 낼름거리며 쫓아다니겠지. 그걸 다 해결하고 나면 곧 해가 넘어갈 무렵이 될 거야. 


이것이 바로 우리 가족의 주말.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일상. 너무나 소중한, 그 무엇과도 맞바꿀 수 없는. 


큰 꿈을 품고,  먼 곳을 바라보면서,  대쪽같이 지키고픈 신념도 품었지만



이 아빠의 삶은 이미 너희들만으로도 꽉 차버린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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