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스마트폰으로 갈아타볼까. 때는 바야흐로 2010년, 아이폰4가 나왔다. 애플 신제품이 나올 때면 늘 그렇듯 인기몰이를 꽤 했다. 이만하면 폰을 바꿀 때가 되었다 싶어 사전 예약을 걸어 놓았다. 일상에 치여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마침내 그날이 왔다.
아주 평범한 조직의 아주 평범한 일개미였던 나는 월화수목금금금 분주히 돌아가는 프로젝트의 한가운데 있었다. 다녀와서 김밥을 먹을 계획으로 점심시간 땡 하자마자 강남구청역 근처에 있는 대리점으로 갔다. 기다리는 사람이 조금 있다. 자리를 잡고 앉아 곧 옛 폰이 될 슬라이드 폰을 열어본다. 카드 크기 정도의 이 작은 폰으로 찍은 사진을 한 장 한 장 들여다본다.
드디어 내 차례. 몇 장의 서류를 쓰고 사인을 열번쯤 하고 내 손에 쥐어진 새 폰과 종이 봉투. 김밥 한 줄을 사고 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동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침을 흘리며 다가온다.
"우와~. 나도 신상 아이뻐 한 번만 만져 보자. 쫌~."
한껏 과장하며 호들갑을 떤다. 이 녀석들은 무슨 건수만 있으면 농담을 하고 웃기지 못해 안달이다. 덕분에 웃으며 지낼 수 있었던, 지루하고 고달팠던 직장 생활에 비타민 같은 존재였달까.
그때부터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은 나의 베프이자 오장 칠부가 되었다. 어느 새 사람과 한 몸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을 일컬어 <포노 사피엔스>의 최재붕 교수는 '오장칠부'라고 표현했다. 이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공감되는 단어다.
아무튼 그때의 아이폰4는 지금 내 폰의 딱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이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적절한 크기와 무게감. 음 든든하군. 이 녀석과 함께 출퇴근길에 별걸 다 했다. 사진을 찍고 책도 보고 신문기사도 읽고 일기도 썼다. 아, 페이스북도 잠깐 쓰면서 나름 읽을 거리를 찾곤 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4년 반 동안 새 폰과 한 몸처럼 지냈다. 그래 오장 칠부가 맞았다. 폰을 쥐고 애타게 폰을 찾기도 한다. 곁에 없으면 괜히 불안하고 안절부절 동동거린다. 첫째 가을씨가 태어나고도 6개월 정도는 이 폰으로 사진과 영상을 남기곤 했다. 지금 들여다보면 기술이 얼마다 발전했는지 실감한다. 낮은 화질 덕분에 촌스러운 느낌의 사진을 보며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단 한 번 뿐인 시절인데.
나의 '아이뻐'가 서랍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새 폰으로 바꾸고 한 달 정도 뒤의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가을씨가 자기는 왜 폰이 없냐고 날마다 칭얼대기 시작했고 아이뻐는 다시 빛을 보았다. 서너살즈음 아이 눈에 비친 풍경을 생각해 보면 뭐랄까. 이상한 마음보다는 당연한 풍경이었을 것 같다. 엄마 아빠의 손에도, 삼촌 이모들의 손에도 항상 비슷한 뭔가가 들려있으니. 저 물건은 무엇인고. 늘 그 모습을 흉내 내고 싶어했다.
오랜만에 서랍을 열어 아이뻐를 꺼내 아이에게 내어주었다. 배터리 수명이 다 되어서 켜지지도 않았지만 그때는 켜지고 꺼지는 것에 큰 의미가 없었다. 기쁜 마음으로 자기 폰이 생겼다면서 엄마처럼 "네~ 네~" 전화받는 흉내를 내고 사진 찍는 모습을 따라 하곤 했다.
그 즈음
가을씨가 심각하게 다가와 말한다.
엄마......
아이뻐가 떨어져서... 아파써?
여기에 금 갔네...
내가 밴드 붙여주께~~
근데 엄마...
이거 바닥에 떨어져서...
그때 사과도 같이 깨진 거야??
ㅠㅜㅜㅠㅠ
ㅋㅋㅋㅋㅋ
아이는 심각하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진지하게 묻는다. 와... 지금 내 안의 웃음을 밖으로 터트리고 싶은데... 큭큭. 참는 것이 어찌나 힘들던지. 애써 표정을 숨기며 맞장구를 쳤던 기억이 선하다. 게다가 엄마가 '아이뻐'라고 부르니 자기도 코맹맹이 소리로 '아이뻐'라고 부르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귀여웠던지.
이제 여덟 살이 된 가을씨에게 작동하지 않는 '무늬만 아이뻐'는 더이상 매력적인 물건이 아니다. 동작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가장 첨예한 문제이기에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대신 아빠가 쓰던 구형 스마트폰을 손에 넣었고 내 아이뻐는 둘째의 장난감이 되었다.
사과가 깨졌대~
큭큭큭. 진짜웃겨~~~
이 에피소드를 들려주면 뭐가 좋은지 둘이 키득키득 거린다. 겨울씨는 밴드가 낡아서 수선이 필요하다며 형아가 붙였던 밴드를 떼어내 새 걸로 다시 붙여준다.
아이들은 스마트폰이 없었던 시대를 상상하기 힘들겠지.오장육부가 아닌 일곱번째 장기를 만난 세상이 당연할 것이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지 만 11년이 넘은 요즘 새로운 기술을 마주하며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아직도 시골집에 유선 전화를 설치하던 어느 어린 날이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데 아이들은 그게 무슨 고대유물 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도 나의 또 다른 오장 칠부이자 베프의 힘을 빌어 적절히 디지털 디톡스도 하면서 이런저런 기록을 남겨본다. '저장공간 부족'이라는 알람이 뜨기 전에 소중한 것들만 남기고 정리하자고 또. 다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