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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Sep 12. 2023

만족하시죠

“만족하시죠.” 나이 지긋해 보이는 손님이 던진 이 한마디에 무척 당황했다. 만족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라고 해야 하나. 잠시 대답을 찾지 못한 채 멍하니 있었다. 답을 재촉하는 듯 한 눈길.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결국 그냥 멋쩍은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질문자의 의도는 분명했다. 멋진 풍광을 보고 제법 잘 꾸며놓은 카페에서 여유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행복하다는 대답을 듣고 싶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노예는 그에 걸맞은 답을 내놓을 수 없다. 

만족, 참 어색한 단어다. 그 깊이를 도통 가늠할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했을까. 어느 유명인은 “가치 있는 목적에 충실함으로써 이뤄지는 것”이라고 했고 어느 작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면발”에서 만족을 느낀다고 했다. 적은 것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이 부유한 것이라는 철학자도 있다. 다 좋은 말이긴 한데 딱히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팍팍한 삶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든 것일까. 

어릴 적 가족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어느 순간 사라졌던 아버지, 자식들을 거둬 먹이려 시장으로 나가야 했던 어머니가 내 곁에 있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어느 날 모든 식구가 한 집에 있었을 때 만족이 과연 찾아왔을까. 돌이켜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또 다른 결핍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군가 지금 무엇이 만족을 가져다줄 것이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행복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다. 지극히 속물적인 것 ‘돈’이다. 카페를 하는 것은 ‘소일거리’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사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흔히 얘기하는 것처럼 행복과 사랑을 돈으로만 살 수 없는 것은 맞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부유한 이들이 만족해야 하지만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더 많을 것을 위해, 더 높은 곳을 향해 뛰어간다. 항상 만족하지 않는 것, 어쩌면 이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돈이 완전한 만족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훨씬 수월하게 얻을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속물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다. 현실이 그렇다. '물질'은 만족의 수많은 기준 중 가장 강력한 것 중 하나다.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결핍으로 인한 장애를 치워줄 수 있다. 사랑을 얻을 수는 없어도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원하는 것을 줄 수는 있다. 반지하에 살면서 물난리가 났을 때마다 걱정해야 하는 이들과 훌륭한 배수 시설을 갖춘 지역에 사는 사람의 만족은 그 수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만족은 상대적 차이를 나타낼 뿐이다. 

연애를 할 때 처가의 반대가 심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돈’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라 지레짐작한다. 지금 아내를 괴롭히고 있는 가장 큰 적도 경제적 여유가 없음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시간이다. 항상 고민하고 돌아서면 걱정하는 게 일상이다. 화가 이중섭과 박수근이 지독한 가난에 사랑하는 가족과 헤어졌을 때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아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카페라는 공간이 이 모든 불만족을 잠시나마 잊게 만든다는 점이다. 정말 어쩌다 한 번씩 바라보는 바다가 황금빛으로 물들었을 때, 풀벌레 소리가 시원하게 들릴 때, 카페에 들어온 아이의 뜀박질 소리가, 무엇이 재미있는지 연신 까르르 웃는 손님들의 대화 속에서 ‘잘 놀다 갑니다’ 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만족은 한 발짝 나에게 다가온다. 조금만 손을 더 뻗으면 잡히겠지, 언젠가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겠지, 그 희망에 오늘도 나는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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