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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워킹맘 Aug 23. 2019

워킹맘을 반성하게 만든 아들의 메모

워킹맘 회식의 종류와 3가지 대처요령

"엄마, 아침에 꼭 깨워 주새요"

(안녕히 주무새요)

(연재 옆에서 자요) 엄마께



숙취가 덜 깬 수요일 새벽, 둘째 적어 둔 메모를 보고 머리를 띵 한대 얻어맞았다. 이 녀석이 엄마가 회식한다고 집에 늦게 들어오니 들기 전 메모 한 장을 남겨 두었다. 어떻게 현관 바로 문 앞에 떡 하니 놓아둘 생각을 했을까? 집에 늦게 들어오는 엄마가 행여나 못 볼 까 봐, 엄마의 발이 처음 닿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리에 놓아둔 녀석. 개학 날이라 아침에 일어날 것이 심히 걱정되었나 보다.


분명 글에서도 사람의 마음이 묻어 나온다. 맞춤법 틀린 글씨 몇 자가 눈에 들어오는 초등학교 3학년이 쓴 글에서 나는 이 아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읽을 수 있었다. 일하는 엄마가 회식한다고 늦게 들어오는 것을 이제는 묵묵히 받아들이고 자기 살 것을 궁리하는 아이. 심지어 자기 옆에서 자 달라는 글은 남기며 엄마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 주고 있다. 메모가 적힌 사진을 다시 보니 사랑스럽고 귀여운 우리 둘째의 모습이 떠올라 더욱 보고 싶어 진다. 워킹맘 연차가 쌓일수록 나도 아이들도 이렇게 어른이 함께 되어가고 있다.




직장인 19년 차, 나는 수많은 회식을 보내왔고 지금도 보내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회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팀 회식, 신입 사원 환영 회식, 송별 회식, 직급별 간담회 후 회식, 생일자 회식, 진급 축하 회식, PL(중간 관리자) 회식, 담당(임원)과의 회식, 여사원 회식, 파트 회식, 몇몇 소모임 회식, 업체 미팅 후 회식, 기술 위원회 회식, 타 부서 교류회 회식 등 회식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회식을 통해 쌓인 회포를 풀고 전우애를 다지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겠지만, 한국 기업 회식은 ‘불편한 술자리’라는 인식을 먼저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회식에 불참하는 것을 여전히 눈치 보고 있으며, 유독 술을 좋아하는 상사를 만나게 되면 술 마시는 고역도 감수해야 한다. 집에 가는 시간을 늦추는 회식은 ‘워라밸’이 확대되는 요즘 시대를 역행하는 단어일 것이다.


직장인에게 이런 엄청난 부담을 지우는 회식은 엄마라는 명찰이 붙은 워킹맘에게 어떤 무게일까? 여사원이 결혼을 하게 되며 경험하는 많은 변화가 있다. 그중 특히 회식에 대한 마음가짐이 가장 크게 달라진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 걱정에 시어머니(아이 봐주시는 이모님) 눈치도 보이고.. 일하는 엄마, 워킹맘에게 회식은 여러 분란의 원인이 되곤 한다.


워킹맘되니 회식을 대하는 마음이 달라지고 보는 눈도 달라졌다.


1. 진짜 가고 싶은 데 갈 수 없는 회식

2. 진짜 가고 싶어서 가서 딱 한 시간만 있다가 나온 회식

3. 진짜 가고 싶어 갔다가 집에 와서 남편이랑 대판 싸운 회식

4. 진짜 가고 싶어 갔다가 집에 와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회식


5. 진짜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가야 하는 회식

6. 진짜 가기 싫은데 억지로 갔다가 집에 와서 남편이랑 대판 싸운 회식

7. 진짜 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갔다가 몰래 빠져나온 회식

8. 진짜 가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갔다가 몰래 빠져나왔는데 다음날 면박 먹은 회식


희한한 것이 걱정하다 집에 갔을 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다가, 회식 잘하고 집에 들어간 날 오히려 남편이랑 대판 싸운 적이 많았다. 이렇듯 대부분 나의 회식은 3번과 4번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했었다.




회식 베테랑 워킹맘이 되어 보니 회식 대처에도 요령이 생겼다. 논문이라도 한편 써 볼까?


1. 회식 날짜와 예상 귀가 시간을 가족에게 미리 알린다.

워킹맘 초보 시절, 회식 가는 것이 뭐가 그리 미안했을까? 그때의 나는 부득이하게 참석해야 하는 회식을 가더라도 나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들었다. ‘난 엄마인데, 며느리인데, 이렇게 회식을 가도 되는 걸까?’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 내 이마에 주홍글씨가 새겨진 느낌. 이렇게 이마에 스스로 주홍글씨를 새겼을 시절, 회식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이 너무나 힘이 들었다. 그래서 전날이나 그날 아침 하는 경우가 많았다.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일방적인 통보’와 같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미안해서 차마 꺼내지 못한 건데, ‘왜 이제야 이야기하냐?’는 남편의 분노의 말이 돌아왔다. 소심한 성격 탓일 수도 있겠지만, ‘워킹맘’이란 타이틀은 나를 스스로 주눅 들게 했었다. 연차가 쌓이며 미리 이야기하는 용기를 내고, 몇 번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서 편하게 회식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차츰 스스로 마음이 편해졌다.


이제는 회식 일정이 잡히면 며칠 전에는 남편, 시어머니, 아이들에게 미리 알린다. 오늘 어떤 회식이 있어 10시쯤 귀가할 것 같으니 할머니 집에서 자도 된다는 말도 미리 이야기해 둔다. 사전 공지는 회식응 받아들이고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해 준다.


“엄마가 목요일은 늦을 거야. 하지만 수요일까지는 아주 일찍 집에 올 거니까 괜찮지?”


회식 날이 다가오면 며칠 동안 일찍 퇴근하며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을 전략적으로 보여 준다. 그렇게 아이들 마음을 다독이면 자연스럽게 회식을 받아들인다.


“엄마, 오늘 회식하는 날이지? 잘 다녀오세요. 너무 늦지 마시고요.”


2. 과식하거나 좋아하는 회식만 편식하지 않는다.

워킹맘이 되면서 회식을 과도하게 잡지 않았다. 미혼일 때 가기 싫은 회식에 끌려가는 경우도 많았지만, ‘워킹맘’이라는 좋은(?) 핑곗거리가 생겨 어정쩡한 회식을 커트하기에는 큰 장점이다. 사실 모든 회식에 내가 꼭 참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참석해야 할 이유가 있는 ‘액기스 회식 리스트’를 뽑아 참석하는 전략적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하는 회식만을 편식하는 것은 나의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회사 생활을 하려면 타 부서교류를 해야 하고 임원과의 상호작용으로 나라는 인간을 알릴 필요도 있다. 이때 회식은 절호의 찬스가 될 수 있다. 무조건 마음이 편한 동료들하고만 회식을 잡지는 말자. 조금 불편해도 임원과의 회식에도 참석해 보고, 타 부서 인원과의 회식 자리가 있으면 일 년에 한 두어 번은 참석해 보도록 하자. 몸무게를 줄이려고 적은 양을 먹는데, 내가 좋아하는 피자만 먹게 되면 마른 비만이 되거나 영향 결핍이 올 수 있다. 회식은 적당히 하면서 골고루 다양한 사람들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3. 회식할 때는 그 자리에 집중한다.

나는 어차피 참석하기로 결심하고 가는 회식이면 그 자리를 최대한 즐기려고 한다. 함께하는 동료, 후배 또는 업체 인원들과 즐거운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회식하느라 하루 늦게 집에 가도 다음날 아이들에게 좀 더 사랑을 주면 괜찮다. 회식의 빈도를 적당히 줄이고 집에도 미리 공지하는 위의 1, 2번이 기본으로 다져지면 가능하게 된다.


수요일 회식은 6년을 한국에서 근무하다 일본으로 복귀하는 협력 업체 엔지니어 환송 회식이었다. 일본으로 돌아가면 이젠 자주 볼 수 없을 터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느라 꽤 늦은 시간까지 회포를 풀었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에게 이별 선물로 축구공을 사 가지고 갔다. 함께 참석한 파트 인원들 모두 축구공에 한 마디씩 적어 이별을 기리는 의식을 나누었다. 회식의 의미를 생각하고 나름의 준비를 조금만 해가면 서로 기억에 오래 남는 회식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이 내 방식의 집중이다.




그날 저녁은 '워킹'과 '맘' 사이에서 워킹, 일에 치우쳤던 날이었다. 옛날보다 회식을 때 마음이 편했었는데. 그날 아침 둘째의 메모를 보고 미안해졌다. 반성도 했지만 이젠 예전처럼 나를 자책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적응을 잘하고 용감하고 강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엄마를 사랑한다. 어린시절 가난이 나를 강하게 만들어 주었듯이 우리 아이들도 워킹맘 엄마덕에 강하게 자라고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한 워킹맘이다.


오늘은 일찍 퇴근을 해야 겠다. 어제 못 해준 사랑을 아이들에게 듬뿍 줘야 하니까.


"아들~ 어제 엄마가 늦게 가서 미안해. 오늘은 연재 옆에서 꼭 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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