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막 깬 둘째가 나를 찾으며 처음 하는 이야기가 출근하는 엄마가 회사에 늦지 않겠냐는 걱정이다.
고작 만 8살에 출퇴근 직장인의 삶을 이해하는 녀석, 시계를 잘 못 봐서 엄마가 회사에 늦은 줄 알았다고 씩~ 웃는 녀석을 보며 나도 모르게 혼잣말이 나왔다.
'이제 다~ 컸구나, 회사 가는 엄마 출근도 걱정해 주고'
첫째랑 달리 둘째는 엄마가 아침 일찍 출근하는 것에 대해 거부 반응이 덜한 아이였다. 그렇다고 아예 떼를 안 부렸다는 게 아니다. 유난히 아침 출근길을 힘들게 했던 첫째보다 수월했다는 이야기다.
예민한 첫째는 아침마다 '엄마 회사 가지 마~'라고 악을 쓰며 울기를 2~3년 정도 지속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찌릿찌릿하다.
아침 출근길에 엄마를 붙들고 우는 아이는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다.
달래는 순서만 달라질 뿐, 아침 출근길 우는 아이 달래는 방법은 5가지 정도 있다.
그러나 결국 패자만 남는다. '계속 우는 아이와 그 아이를 두고 결국 출근하는 엄마'
1) 잘 타일러 본다.
"엄마가 오늘 회사에서 아주 중요한 약속이 있어. 약속은 잘 지켜야 하는 거 다연이도 선생님한테 배웠지?
엄마가 약속 잘 지키는 사람이 되게 다연이가 도와줘야 해~. 이제 울음 그쳐야지~"
2) 논리적으로 설득해 본다.
"다연아~ 엄마가 회사를 안 가면 돈을 못 벌어와요. 그러면 다연이 좋아하는 돈가스도 못 사주고, 콩순이 인형도 못 사줘. 그래도 괜찮아?"
3) 유인작전을 쓴다.
"지금 울음 뚝 그치고, 엄마한테 빠빠이 잘하면, 오늘 집에 올 때 다연이가 좋아하는 스티커랑 아이스크림 많이 사 올게~. 응? 어때? 자~ 이제 울음 뚝 그쳐야지~"
4) 감정에 호소한다.
"다연이가 이렇게 울면 엄마가 속상해요. 다연이도 엄마 속상하거 싫지? 다연이가 울면 엄마도 눈물이 나와요. 이제 그만~ 뚝~"
5) 결국 폭발!
"이제 그만 좀 울어~. 엄마가 얼마나 이야기를 해야 알아듣겠어! 몰라 알아서 해, 엄마는 회사 가야 해."
이때쯤 되면 우는 아이와 시계를 번갈아 보며 멘붕에 빠진다. 그러다가 "네가 있으니 더 운다"는 시어머니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차리고, 회사에 늦을 까 봐 뛰쳐나온다. '쾅~' 닫힌 현관문 너머로 들리는 아이의 울음소리를 뒤로하고 출근하는 날이면 하루 종일 그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그렇게 3~4년을 보내고 나면 어느새 떼쟁이 아이는 철이 든다. '엄마는 아침 일찍 나가야 하는 사람'임을 받아들이는 시간 3년. 그 시간을 잘 견뎌야 한다.
후배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그리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박 책임님은 어떻게 아이 둘을 키우며 회사를 다니셨어요? 제가 그때는 잘 몰랐는데, 정말 대단하세요."
사실 그때, 그들은 정말 몰랐다.
내가 아침마다 우는 아이를 떼어두고 나와, 회사에서 하루 종일 느끼는 죄책감을
아이가 손톱을 물어뜯을 때마다 엄마 정이 부족해서 그러나 걱정하는 마음을
유치원 발표회 때 할머니를 대신 보내고, '다른 애들은 엄마가 왔을 텐데 서운해하면 어쩌나' 자책하는 마음을
비로소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어서야 알 수 있는 많은 감정들이 있다. 오늘 나는 또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
우리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 출근하는 엄마를 걱정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뿌듯하면서도 아련한 아픔이 섞여 있는 미묘한 감정을
그렇다. 지난 시간을 잘 견뎌 왔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내가 자란 만큼 우리 아이들도 잘 견디고 잘 자라 주었다. 너무나 힘든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엄청 대단한 것을 깨달을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그 시기를 지나온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미안하지만 이 것밖에 없다.
조금만 견뎌봐, 아이가 자라면 엄마를 이해해 줄 수 있어. 그런데 지금 마음은 참 힘들지? 나도 잘 알아. 나도 그때 그랬으니까. 힘들면 조금 울어도 돼.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난 그때 이런 이야기 정도만 들었어도 좀 더 쉽게 버텼을 것이다. 함께 공감해 주고 작은 위로를 건네주는 딱 그 정도만. 그 위로는 나에게 큰 메아리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