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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워킹맘 Sep 29. 2019

생후 3개월에 시작된 두 집 살림

벌써 11년째

첫째 딸의 두 집 살림은 생후 3개월부터 시작되었다.

워킹맘 엄마가 출산 휴가 3개월 만에 출근 한 뒤 주중 5일은 서울 할머니 집에서 주말은 파주 엄마 집에서 자라났다.

나는 두 아이를 둔 워킹맘이다. 첫째를 낳고 회사 복직하면서 시댁과 우리 집 두 집을 오가는 살림을 하고 있다.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내고 아이를 데리러 가는 금요일 퇴근길이면 아이가 얼마나 컸을까 마음 설레며 서울향했다. 하지만 교통 체증에 3시간이나 걸려 시댁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곤 했다. 카시트에만 앉으며 자지러지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며 파주까지 오는 시간은 또 얼마나 고되었는지. 다행히 첫째는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주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예민하고 마음이 여린 아이가 되어 있었다. (예민하다 표현했으나 'O고집') 


나는 11살이 된 딸의 머리를 제대로 묶어준 적이 없다. 어릴 때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머리를 묶을 때면 ‘불편하다’ ‘다시 묶어 달라.’ ‘여기가 삐뚤어졌다. 또, 다시 해라’ 딸의 짜증 하늘을 찔렀다. 끓어오르는 화를 참으며 비위를 맞춰 어르  결국엔 화가 폭발했다. "이러려면 머리 묶지 마, 그만해~" 꽥 소리를 지르고 딸 대판 울면서 끝이 나곤 했다. 유치원 가기 전에 양말만 신고 벗기를 10번도 넘게 반복하기 일쑤였다. 결국 머리를 풀어헤치고 맨발에 유치원 가는 아이가 되었다.  


너도 이렇게 웃을 때가 있었구나



두 집 살이 7년 차, 업그레이드되었지만

딸이 일곱 살이 되면서 시댁 같은 아파트 바로 옆 동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과 파주에 비하면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천천히 걸어도 3분이 안 걸리는 초역세권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퇴근 후 시댁을 찍고 우리 집으로 돌아가는 이 코스가 나는 너무나 좋았다. 물론 할머니 집 엄마 집에 옷과 책들이 나눠져 있어 정신없는 두 집 살림인 것은 여전하지만 말이다.

엄마네 집에 갈 시간, 신나서 나를 따라나서는 둘째랑 달리 첫째는 현관 앞에서 항상 뭉그적거렸다. 할머니 집에 더 있고 싶은데 엄마네 집에도 가고 싶은 두 가지 생각이 그 작은 마음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타일러 집으로 오지만 도착하면 잔뜩 찡그린 얼굴을 하고 기분을 풀지 못했다.


“엄마, 나 할머니 집에 다시 가고 싶어. “


밤 10시가 다 돼서 다시 할머니 집으로 가겠다는 딸을 설득해도 말을 듣지 않을 때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

"그럼 할머니 집에 혼자 가. 그리고 너 거기서 계속 살아" 독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두 집 살림은 업그레이드되었건만 할머니네 서 잔다고 하면 엄마가 화를 낼까 할머니 뒤에 숨는 딸이 되었다. ‘왜 엄마 집에 안 고 할머니 집에 있겠다는 거야? 아이를 보면서 내 마음도 무너졌다. 너 때문에 빨리 퇴근하려고 점심도 안 먹고 일하고 달려왔는데 너는 할머니를 더 좋아하는 아이가 되었구나. '엄마는 누굴 위해서 회사를 다니는 걸까' 딸아이를 두고 둘째만 데리고 돌아온 날은 워킹맘으로 버텨온 지난 시절이 부정당하며 구겨지는 느낌이었다.


답답한 상황이 계속되던 어느 날 나는 회사에 있는 마음 상담실을 찾게 되었다. 이 상황을 해결하긴 어렵겠지만 털어놓으면 속이라도 좀 시원할 것 같았다. 아이와 나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설문지도 작성하고 상담을 받았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을 해 주셨다. 

“아이가 엄마 사랑을 더 받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많이 안아 주고 사랑한다고 이야기 많이 해주세요.”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 이상 아이는 나의 사랑을 원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할머니 집을 왜 다시 가냐며 다그치며 묻는 나에게 아이는 울면서 말했었다. “할머니 집에 있으면 엄마가 보고 싶고, 엄마네 집에 있으면 할머니가 보고 싶단 말이야.”

엄마가 없을 때는 할머니가 엄마였고 세상 전부인 아이인데. 그런 아이의 소중한 고리를 질투하고 매몰차게 끊으려 만 했던 나는 철없는 엄마였다.      


미안해. 아가야. 내가 너한테 온전한 사랑을 주지 못하면서 니 탓만 했구나.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까? 회사를 그만 두면 너한테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엄마는 고민이 되는구나.

엄마도 아기 적에는 엄마의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어 했단다. 엄마의 엄마가 일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엄마는 잠을 자지 않고 기다렸단다. 엄마의 품에 머리를 묻고 안겨보고 잠들고 싶어서 말이야. 엄마의 엄마가 일하는 것이 엄마는 싫지 않았어. 그냥 지쳐 보이는 엄마가 날 위해 한 번 웃어 주고 한 번만 나를 안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단다.


아가야, 너도 그런 거였구나. 우리 기특한 딸은 일하고 돌아오는 엄마를 기다려 주고 이해해 주었는데 말이야. 엄마한테 응석 한 번 부리고 싶었던 거였는데. 하루 종일 그리워한 엄마의 따듯한 품에 안기고 싶었던 거였는데 말이야. 그런 너의 마음을 엄마는 너무 몰라 주었구나. 엄마 아기 때 그랬다는 걸 잊고 있었구나.



철든 엄마가 되려면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자

엄마가 되려면 나의 어린 시절을 꼭 기억해한다는 사실을 딸아이 덕분에 깨달았다. 일하는 엄마를 둔 나는 일찍 워킹맘 엄마의 삶을 받아들였었다. 일하고 늦게 들어온 엄마 얼굴 한 번 보고 엄마랑 이야기 한 번 나누고 잠드는 것이 소원의 전부였다. 따뜻한 엄마의 품을 느끼고 자는 날이면 학교 갔다 집에 오면 간식을 만들어 놓고 엄마가 기다린다는 친구 전혀 부럽지는 않았다. 세상 그 누구보다 나를 사랑해 주는 엄마가 있으니까.   


딸은 두 집 살림의 고수 11년 차가 되었다.

예민하고 머리를 잘 안 묶고 밤이면 두 집 사이에서 방황했던 그 딸은 어느새 11살이 되었다. 학교에 가져갈 숙제가 어느 집에 있는지 혼자서 잘 챙기고 내일 입을 옷도 미리 챙겨 놓는 두 집 살이 고수가 되었다. 항상 친구들과 놀 궁리를 하는 덕분에 워킹맘 엄마에게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해서 적응만 잘 하면 끝인 줄 알았는데 워킹맘의 고민은 끝이없다. 


아이를 돌 봐주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은 일하는 엄마의 영원한 숙제이다. 회사에 다니시간제 아르바이트를 하는 워킹맘이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여 벌어지는 육아 갈등과 내적 고민들과 수없이 싸우며 버텨오고 있다. 하지만 사랑은 함께하는 시간에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함께하는 시간이 많다고 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고 있을까? 시간이 적으면 결코 아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없는 것인가?   


아이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엄마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갖는다. 눈곱이 끼고 머리는 헝클어지고 피부 상태가 엉망인 엄마한테 달려들어 뽀뽀하며 예쁘다 하는 아이를 보면 느낄 수 있다. 열 달 동안 이어온 탯줄이 끊어져도 엄마를 향한 아이의 절대적인 믿음과 사랑은 끊어 낼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 적다고 고민하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지금 이 시간 온전하게 아이만 바라보고 사랑해 주어야 한다. 그 시간이 1시간 아니 30분밖에 없더라도 말이다. “엄마 왜 내 말 안 들었어?”하며 아이가 서럽게 울 때는 아이가 엄마한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엄마, 내 이야기 들어주세요. 한 번만 안아 주세요. 나 좀 사랑해 주세요.'하고 말이다. 그럴 때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올 것처럼 이 순간 힘껏 사랑해 주자.

미안해하지 말고 그냥 사랑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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