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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워킹맘 May 10. 2019

첫 출근날 울었던 나

6661일째 회사를 다닐 줄은 몰랐다.

'이번 평가 결과가 좋지 않아 큰일이야. 모레 업체 미팅에서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지? 개선이 안된 이유가 뭘까? 내가 방향 설정을 너무 못해주고 있나?'

3일간의 긴 연휴 끝, 출근을 앞둔 저녁 오랜만에 회사 걱정을 하고 있었다. 숨을 쉬듯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는 나는 너무 오래 쉴 때 이런 후유증이 발생한다. 3일의 연휴가 뭐가 그리 길다고, 그 숨의 템포가 변하는 순간을 뇌와 몸의 신경은 어찌나 잘 알아채는지.



회사일에 지치거나 힘들 때, 혹은 오랜만에 예전 선배 우연히 마주칠 때, 나의 첫 출근날이 떠오른다.

구미에서 한 달간 합숙 훈련을 마치고, 본인의 팀을 배정받는 부서 배치받는 날이었다. 나의 첫 팀으로 출근하는 날! 회사에 학교 선배가 있던 동기들은 이미 자신이 어느 팀에 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학연, 지연 그 어느 하나 빽이 없던 나는 어느 팀에 갈지 전혀 몰랐다. 당시 안양에 있는 연구소로 배정받은 동기들이 많았는데, 안양으로 가는지 아니면 구미에 남아야 하는지 조차 알지 못했다. 그저 어느 팀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러 올 때까지 강의실에 남아 기다리고 있을 뿐. 잔뜩 긴장을 하긴 했지만, '어떤 선배가 올까?' 부푼 기대를 안고 있었다.


드디어 내 이름이 불렸고, 난 잘생긴 남자 선배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어~ 여자네!"


나를 처음 본 그 잘생긴 선배의 첫마디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때 알아챘어야 했는데. 선배를 따라 간 6층 사무실은 생각보다 넓고 쾌적해 보였다. 팀장님께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 OOO입니다."
"어~. 그래.. 어서 오세요."

인사를 받았지만, 뭐지? 이 시큰둥한 팀장님의 반응은? 팀장님은 본인 자리 뒤쪽 문을 가리키며 일단 저쪽 방에 가서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오전 9시였나? 시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오전부터 퇴근 시간 5시 30분까지 난, 그 골방에 계속 앉아 있었다. 점심 식사 후 3시쯤 팀장님이 불쑥 들어오시더니,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지금 다른 팀 알아보고 있으니까."


그때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신입 사원이 온다고는 들었지만 여사원인 줄 몰랐던 팀장님은 받고 싶지 않으셨던 것이다. 부랴 부랴 인사팀에 전화 걸어 따지고(아마도..) 다른 팀으로 옮길 수 없는지 요청을 하셨다. 퇴근 시간 10여분을 남기고 다시 들어온 팀장님은 다소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좀 알아봤는데, 잘 되지 않네요. 앞으로 같이 일해 봅시다."

그 순간 참아왔던 눈물이 닭똥같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울기만 했다. 내가 왜 이 골방에 앉아 있는 것인지 상황 파악을 한 무렵부터 온갖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찼다.

'회사 오면 열심히 일하려고 준비도 하고, 대학원도 열심히 다녔는데, 나한테 어떻게 이런 대접을 하는 거지?'

'내가 왜 여자라고 이러는 거지?'
'입사 동기 중에 나만큼 열심히 연수받은 사람도 없는데.'

분하고 억울하다가 엄마가 보고 싶기도 하다가 그럼 다른 팀으로 가야 하나 걱정도 했다. 결국 같이 일하자는 팀장의 말에 참아왔던 설움이 터져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이렇게 시작한 첫 팀에서 나는 너무나 고마운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첫 출근날의 걱정이 그날로 끝난 것은 너무 다행스러운 일이다. 6층 사무실에 여자 엔지니어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고 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내가 모르는 사람은 있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 좋은(?) 근무 환경에서 나는 살아남았다. 내가 그 팀에 들어간 첫 여사원이 된 이후로 5명의 여자 후배가 더 들어온 것을 보면, 그래도 팀에서 인정받은 게 아닌가 혼자 생각해 본다. 하지만, 아직도 여사원을 반기지 않는 관리자들이 존재하는 건 뼈아픈 사실이다.


그날 나의 첫 눈물을 목격한 나의 첫 팀장님은 이후로 사업부장까지 승승장구하셨다.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곳에서 잠깐 마주쳤을 때, 나에게 웃으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현진아~ 너 아직도 우니?"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이젠 안 울어요. 그날 사업부장님이 저 울리신 거잖아요."

머리가 희끗희끗 해진 나의 첫 팀장님 얼굴에서 그날의 미안함을 읽었으니 그걸로 되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울었던 기억은 나는데 사실 울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예상하건대 마음 한 켠으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래,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보여 줄 거야. 나를 다른 팀으로 보내려고 하 걸 후회하도록 해줄 거야.'

그날 이후 나는 회사에서 일 문제로 절대 울지 않았고, 오늘로 6661일째 회사를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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