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워킹맘 May 07. 2019

워킹맘 엄마가 가장 행복하게 웃었던 날

나의 아이들은 나의 가장 행복한 웃음을 언제로 기억할까?

매서운 바람이 코 끝을 스치던 1994년 2월경으로 기억한다. 대입 합격의 통지서를 받고 처음으로 입학원서를 내러 학교에 갔던 날이다.


SKY는 아니지만 인 서울 학교도 도전해 볼 만한 성적이었지만, 늘 그렇듯 고3 담임선생님은 보수적으로 안전빵으로 학교를 지원하기를 종용(?) 하셨다. 내가 가고 싶었던 학교를 지원하면 당연히 떨어진다고 겁을 주셨고, 재수는 꿈도 못 꾸는 집 안 상황을 알기에 나는 그저 선생님이 가라는 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고3 무렵, 우리 집은 봉천동에서 방배동으로 이사를 했다. 딸들 좋은 데로 시집보내야 하는데 봉천동 산다는 것이 혹여나 걸림돌이 될까 엄마는 방배동을 뒤지고 뒤져 빌라를 사셨다. 그때는 엄마가 그 빌라를 얼마에 사셨는지 어떻게 돈을 마련해 사셨는지 전혀 몰랐었다. 훗날 엄마한테 들으니 내 돈 4000만 원을 들고 빚 1억으로 집을 사셨단다. 레버리지를 제대로 알고 계신 엄마셨군. 그래 난 엄마를 닮았어.  


봉천동에서 방배동으로 이사를 한 것뿐이지, 우리 집 살림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엄마는 여전히 가락동 시장에서 새벽에 물건을 떼다가 청룡 시장에서 야채와 건어물을 파셨다. 겨울이 되면 엄마 얼굴은 얼어서 늘 빨갰다. 슬라브 지붕이 있는 실내(?) 였지만, 찬바람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야채 다듬고 삶고 하느라 늘 찬물에 손을 담그셔야 했다.


대학교 입학원서를 내고 오리엔테이션 안내서를 가지고 엄마가 있는 시장으로 왔다.


"엄마, 다녀왔어요~"

"그래, 잘 다녀왔어?"

"엄마, 그런데 나 1등으로 합격했대. 과에서 Top이라고 그러네. 입학금을 100% 다 학교에서 내 준대요"

"어머, 진짜? 너무 잘했다 현진아.. 어떡하니, 너무 잘했다. 너무 잘했다. 너무 잘했다." 


그날, 여전히 얼굴이 빨갛던 엄마는 내 인생 통틀어 본 엄마 웃음 중 가장 환하고 행복한 웃음을 지어 주셨다.


집 사느라 덜컥 1억의 빚까지 지고, 딸 대학 입학금 낼 돈을 어찌 마련할까 몇 날 며칠 고민하고 있던 엄마에게 이렇게 반가운 소식이 있었을까?

생각해 보면 가슴 짠한 웃음인데, 그렇게 행복해하는 엄마의 얼굴을 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가끔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지원했어도 합격했을 텐데 아쉬운 생각을 하지만, 그랬으면 엄마의 그 웃음을 난 못 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가 매일 웃을 수 있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고,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었기에 그날의 웃음은 가슴 아프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  


우리 아이들은 나의 어떤 웃는 모습을 기억해 줄까?  화내는 모습만 기억하는 것은 아닐까?

일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고, 집에 와서는 피곤하다고 잘 놀아주지도 않는 이기적인 엄마라 나 스스로 자책하다보니 웃음이 줄어든 건 아닐까?


오늘 퇴근하면 환하게 웃어 줘야 겠다. 귀여운 내새끼, 강아지 두마리에게..     


 

이전 05화 워킹맘을 반성하게 만든 아들의 메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