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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사의 몫 Oct 25. 2020

와인 업계의 올림픽, 와인 콩쿠르

와인 심사가 궁금하신가요?

스포츠 선수들이 그간 열심히 갈고닦은 기량을 올림픽에서 발휘하고서 각종 신기록을 세우며 금, 은, 동메달을 받듯이, 와인업계에도 올림픽 같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와인 심사이지요. 프랑스만 하더라도 최소 12만 명 이상의 와인 메이커가 있고,  각 아뻴라시옹마다 적어도 몇 백 종류의 와인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나 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서, 소비자는 어떤 와인을 골라야 할까요? 아뻴라시옹의 명성이나 라벨 디자인, 가격만으로 내 입에 맞는 와인을 고르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 와인 콩쿠르의 역사는 1893년(Concours Général Agricole)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때만 해도 와인 메이커들이 와인을 출품하면 특정 구역에서 해당 와인이 전시되는 정도였는데, 이듬해 1894년부터 1471종의 와인을 출품받아 정식 심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아뻴라시옹 및 품종 별로 와인을 정리한 후,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와인 맛을 보고 서열을 정해주는 거죠. 마치 올림픽에서처럼 금, 은, 동의 세 가지 메달이 있고, 때로는 올해의 와인, OO가 추천하는 와인 등의 타이틀을 붙일 수 있습니다. 


와인 콩쿠르는 심사위원 각각이 마셔본 가장 맛있는 와인을 점수 별로 정리해 둔 후, 같은 테이블의 다른 심사위원들과 의견을 교환한 후 메달을 붙이는 시스템입니다. 각 테이블마다 붙일 수 있는 메달의 수는 한정되어 있으며, 아주 형편없는 와인을 제외하고는 인간적인 차원에서 주는 최소 점수가 있습니다. 기껏 고생해서 만든 와인이 혹평을 받으면 기분 좋을 와인 메이커는 없으니까요. 한 해 동안 열심히 포도밭을 가꾸고 와인을 정성껏 빚어낸 정성을 생각해서, 심사위원마다 다르지만 보통은 10점을 최소 점수로 줍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포츠 경기 기록과는 달리 정확하고 객관적인 판단 지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서 불특정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따라 점수가 달라지므로, 콩쿠르 결과에 전혀 동의하지 않고 항의하는 와인 메이커도 가끔 있습니다. 그래서 콩쿠르 조직위 측에서도 심사위원을 구성할 때는 와인에 대한 지식이 검증되어 있으되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최대한 겹치지 않게 테이블에 배정하죠. 한 테이블에는 보통 6-8명 정도의 심사위원이 착석합니다.


심사를 하는데 지표가 되는 그래프와, 시각, 후각, 미각에 따라 구분되는 심사 요소입니다

와인 심사는 사실 와인 학교를 다닐 때 수업에서 교수님하고 해 본 적이 있지만, 확실히 실전하고는 너무 달랐습니다. 제일 처음 심사를 하러 갔을 때 너무 속도가 빨라서 정신이 없었던 기억이 나네요. 사전 선별 심사, 즉 콩쿠르 본선에 보낼 와인만을 걸러내는 심사는 특히 더 속도감이 있어서 마셔보고 아닌 와인은 휙휙 걸러낸 후, 괜찮은 와인만을 남겨놓고 다른 심사위원 분들과 의견을 나눕니다. 내 입에는 18점인 와인이 남한테는 15점도 안 되는 경우도 있고, 심사위원 다수가 좋다고 하는 와인이 내 입에는 별로일 때도 있으니까요. 와인 자체는 너무 괜찮지만 해당 아뻴라시옹의 특성을 갖추지는 못한다는 판단이 들 때, 후한 점수를 주면서 비고란에 'hors catégorie'라고 써두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점은 와인 메이커가 보고 판단할 일이죠. 실제로 보르도 화이트를 심사하는 테이블에서, 와인만 보면 너무 맛있는데 와인 부케가 너무 짙은 골드 색조로 강한 아로마를 풍기는 와인이 있어서 다른 심사위원 분들과 의논하여 'hors catégorie'라고 기재한 적이 있어요. 와인 품질은 우수하나 해당 아뻴라시옹으로 카테고라이징 하기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CGA 콩쿠르의 와인 심사표. 총점 18점 이상이 금메달, 17점 이상이 은메달, 16점 이상이 동메달을 받게 됩니다.

필기를 빠르게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때는, 연필로 먼저 간단한 감상을 단어로만 적어놓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며 문장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진행 속도는 테이블마다 달라서, 간혹 다시 읽어보며 문장을 제대로 만들 시간이 없을 때가 있어요. 그래서 나중에는 수정펜과 볼펜만을 챙겼습니다. 위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칸이 넓지 않기 때문에, 보통 같이 주시는 이면지에 메모하고 다시 알아보기 쉬운 글씨로 점수 및 평을 씁니다. 내가 쓴 평을 와인 메이커가 읽는 게 부담스럽다고요?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는 게, 보통 테이블마다 한 명씩 chef가 있어서, chef가 대표적으로 의견을 모아 총평을 씁니다. 점수가 아주 낮거나 높은 경우에는 유난히 더 상세한 설명을 덧붙여줍니다. 와인을 만든 사람이 납득할 수 있도록 말이죠. 개인별 총평도 물론 제출하지만 이건 참고 증거자료일 뿐이에요. 그리고 처음에 마셨던 2-가지의 와인은 성급하게 점수를 주지 않고, 크게 5점 정도의 점수 오차 범위를 준 뒤 나중에 다시 테이스팅해 보는 게 좋습니다. 점점 뒤로 갈수록 다른 와인과 비교해서 의견이 또 미세하게 달라지거든요. 아무래도 처음에 테이스팅 한 와인은 마음에 들더라도 보수적인 점수를 주게 되기 때문에, 모든 와인을 마셔본 후에 다시 평가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음에 쏙 드는 와인은 옆에 별표를 쳐 두거나 이면지에 와인 식별 번호를 적어두고, 심사가 끝난 후 다시 마셔보는 편입니다. 심사장에 따라서는 심사가 끝나고 남은 와인을 가져갈 수 있기도 해요. 하지만 보통 심사 후에 심사위원들끼리 와인을 곁들여 간단한 식사를 같이 하기 때문에 와인이 남을 일은 거의 없죠. 테이블마다 심사 속도가 다르지만 보통은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30종을 시음할 때 2시간 전후로 소요됩니다. 한 번은 제 테이블의 심사위원 둘이서 서로 의견 일치가 안 되어서 좋게 말하면 토론을, 나쁘게 하면 말싸움을 이어가는 바람에 3시간 넘게 걸린 적도 있었어요.

밀레짐 비오라고 하는, 유기농 와인 심사입니다. 7인 착석 가능한 테이블이죠. 금, 은, 동 메달 스티커가 보이시나요?
보통 각 와인 생산지역에서 아뻴라시옹 별로 모아 지역 심사를 한 다음, 여기서 일정 이상의 점수를 받은 와인만이 파리 콩쿠르의 본선에 진출하게 됩니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이므로 각 와인의 아뻴라시옹 외에는 다른 정보가 없고, 이렇게 테이블 번호와 와인 식별 번호가 있습니다.


심사가 끝나면 점수에 따라서 메달을 매긴 후, 해당 와인에 매달을 붙여 줍니다. 진행 요원들이 와서 와인을 수거해가면 심사가 끝나는 거죠. 금메달은 금메달끼리, 은메달은 은메달끼리 와인 종류 별로 모아두기 때문에, 올해 금메달을 받은 와인만을 시음해 볼 수 있는 재미도 있습니다. 실제로 메달을 받은 와인들은 그 해 판매량이 높은 편이고, 각종 와인 평론 잡지에서도 광고 효과를 톡톡하게 누립니다. 그리고 안타깝게 수상하지 못한 와인은 보통 해당 테이블에 그대로 남아있죠. 개인적으로는 테이블에 남아 있는 스파클링 중에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었는데, 한참 나중에 그 와인이 해외시장에서는 큰 히트를 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심사 결과가 늘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라고는 볼 수 없겠죠? 심사가 끝나고 나면 해당 와인 라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제가 좋은 점수를 줬던 와인을 기억하고 사진을 찍어둡니다. 같은 해 연말쯤 해당 와인이 다른 곳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괜히 기분 좋더라고요. 그리고 여러 종류의 와인을 한꺼번에 많이 마셔보게 되니까, 아 이 와인은 가족이나 지인이 좋아할 거 같은데? 하고 머릿속에 확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나중에 구매해서 선물하죠.


Concours Général Agricole은 와인뿐 아니라 다른 농축산물도 함께 심사하는 콩쿠르입니다. 해마다 대통령과 농업식품부 장관이 참석하는데, 저도 아주 어렴풋이 멀리서 본 기억이 나네요. 보안 때문에 얼굴은커녕 '저기 중요한 사람이 왔나 보다'라는 것만 알 수 있는 정도였습니다.

저는 작년부터 치즈 등 유제품뿐 아니라 햄 등 돈육 제품도 함께 심사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와인하고 마리아주를 떠올릴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콩쿠르 전체 일정은 보통 열흘 정도 진행되는데, 매일매일 심사하는 품목이 달라 심사위원이 헷갈리거나 피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다만 파리에서 진행되다 보니 파리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면 숙박 및 체류비를 생각해서 본인이 심사를 맡은 카테고리가 겹치거나 너무 간격이 떨어지지 않도록 일정을 잘 짜는 것이 좋겠지요. 그리고 콩쿠르 기간 중에는 마스터 클래스 등 전문 세미나 등 다양한 배울 거리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실제 업무에 종사하시는 분들의 피와 살 같은 조언을 들을 수 있어서 더더욱 좋더라고요. 한 번 공지로 뜬 심사일정은 바뀌는 일이 거의 없으니, 본인이 담당하는 심사 일정과 겹치지 않도록 스케줄을 잘 확인하는 것이 좋겠지요.


레퍼런스 


https://www.concours-general-agricole.fr/concours-general-agricole/150-ans-dhistoire/ 

https://avis-vin.lefigaro.fr/connaitre-deguster/o31566-pourquoi-donne-t-on-des-medailles-a-certains-vins#:~:text=Dans%20un%20seul%20pays%20comme,plusieurs%20centaines%20pour%20chaque%20appellation.&text=Voil%C3%A0%20la%20raison%20d'%C3%AAtre,ou%20d'une%20appellation%20donn%C3%A9e

https://www.challengeduvin.com/index.php?option=com_content&view=article&id=62&Itemid=59



와인 기본 상식을 쌓고 싶으시다면,

https://brunch.co.kr/brunchbook/easytodrink

와인 시음하는 법 

https://brunch.co.kr/@andreakimgu1k/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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