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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색 Jan 23. 2023

얼굴만 봐도 웃어주는 존재

사랑해요, 할머니.

한국의 큰 명절, 설날이었다. 코로나19 감염증이 성행했던 최근 3년간 나는 감염병 취약계층인 할머니를 보러 가지 못했다. 정말 희박한 가능성이겠지만 혹시라도 나를 통해 할머니가 코로나19에 걸리게 된다면 그 죄책감을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조금이라도 나아진 현재, 설을 맞아 할머니댁을 방문했다.


시골엔 할머니 혼자 남아 기와집을 지키고 계셨다. 기와집이라기에는 조금 초라한 면이 없잖아 있지만, 그래도 자식 7명이 자라난 할머니의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오랜만에 방문한 시골집은 예전에 봤던 그대로였다. 6시간이나 달려 도착한 시골집이었건만, 반가운 마음이 앞서 짐을 들고 문을 열어젖혔다.


분명 불이 켜진 집이었는데 인기척이 없었다. 할머니가 항상 계시는 부엌에 들어서니 그제야 이불을 덮고 누워 계시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벌컥 들어선 탓인지 그제야 할머니께서 잠이 깨 돌아보셨다.


그대로인 시골집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할머니는 마지막에 봤던 모습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였다. 철렁, 마음이 내려앉았다. 3년 만에 사람이 이렇게 달라지나 싶은 생각과 동시에 사회적 거리두기 탓을 하며 할머니를 보러 오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동시에 들었다. 노인들은 한해 한 해가 달라진다고 듣기는 했지만, 우리 가족은 아닐 거라고 외면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할머니의 나이가 벌서 94세였다. 얼굴에 드리운 주름과 백발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잠깐 당황한 나와는 다르게, 할머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었다.


"아이고, 손주 왔냐?"


항상 전화로만 건너 듣던 목소리를 듣자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건강하게 잘 계셔주셔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손주 왔어요, 할머니."


귀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 옆으로 파고들었다. 이불 속에 있던 따뜻한 할머니의 손이 등을 쓰다 듬는다.


"고맙다, 고마워."


할머니는 전화할 때마다 말하곤 하는 대사를 얼굴을 보자 다시 읊기 시작한다. 바쁜 사회생활 중에도 당신을 잊지 않고 연락을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였다. 그런 고마움은 가족에게 할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건만, 할머니는 꼭 그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인사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은 짠-한 울림이 퍼진다.


30살이 된 나임에도 여전히 내 새끼라며 엉덩이를 토닥이는 사람. 잘 먹는 내 모습을 보며 흐뭇하게 웃어주는 사람. 그런 존재가 있음에 감사하고, 언제가 될지 모를 이별 전에 그 감사한 존재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사랑해요, 내 할머니. 오래오래 제 곁에 계셔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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