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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색 Nov 06. 2022

인생의 단짝을 만날 수 있을까

사랑이 점점 어려워지는 이유

갓 대학에 들어갔을 때, 나는 오랜만에 본 초등학교 동창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 당시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말을 입에 담는 것이 내 자존심을 건드려 인정한 적은 없지만, 사춘기같던 첫사랑이 지난 지금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말이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친 그 친구를 찾아, 다른 동창에게 연락해 전화번호를 받았다. 생각해보면 마음에 드는 사람을 발견한 나는 참 당돌했다. 딱히 어떤 조건을 물어보지도 따지지 않았다. 단지 외모 하나만 보고 그에게 다가갔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사랑에 빠진 것은 처음이었다. 고집 세고 자존심도 세우는 내가 모든 것을 접어두고 최선을 다해 사랑한 것은. 그래서 첫사랑이 힘들다고 하는 건지도 모른다. 이 곳이 불구덩이인지조차 모르는 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니, 사실 불구덩이임을 알아도 그 곳에서 발을 뗄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는 이런 사랑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성격이 극과 극으로 달랐음에도 서로를 놓아주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몇년을 질질 끌었는지, 결국은 서로에게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긴 채 헤어졌다. 헤어질 때즈음 내 일기장엔 그 아이가 잘 지냈으면 한다기 보다는, '꼭 나중에 후회했으면. 꼭 너 같은 사람을 만났으면.'이라고 적혀 있다.


어찌저찌 탈이 많던 그와 헤어지고,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외모도 내 스타일이고 직장도 안정적인데다 성격도 너무 좋았다. 집까지 매일 데려다 주는 건 기본이고, 먹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면 앞에 대령해주는 데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본인 스케줄을 빼면서까지 내 일정에 맞춰 주었다. 이전 연인이 극상의 무뚝뚝함을 지닌 사람이었다면, 이 사람은 엄청난 스윗함을 지닌 남자였다. 마냥 행복했고, 이 사람이라면 결혼을 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러나 어느 날, 아빠가 던진 한마디가 계속해서 머리에 맴돌았다.


"네 살 이상 차이 나는 사람은 데려올 생각도 하지 마."


처음엔 이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 그렇게 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한귀로 흘렸다. 그러나 유일하게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주는 사람이 부모님이라는 사실은 무시할 수 없었다. 위의 말 또한 날 위해 해 준 말임은 분명했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만나던 사람은 '꽤' 나이가 많았다. 두 손으로 간신히 셀 수 있는 나이차일 정도로 말이다. 굳이 나이차를 신경쓰지 않고 만났었지만, 이 말을 듣고서 점점 현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해가 갈수록 나이가 찼고, 나는 아직까지는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내가 이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점점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헤어짐을 고했다.



그렇게 내 20대의 커다란 두 번의 연애가 막을 내렸다. 그 이후로 여러 소개팅을 하고 잠깐 연애도 했지만 전처럼 마음에 깊이 자리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사람은 키가 작아서, 저 사람은 거리가 멀어서, 그 사람은 재력이 조금, 이라며 다 쳐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아마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마음을 열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또다시 반복될 이별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 있었던 걸지도. 헤어짐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 그리고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을 끊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겪어 봤기에 다시 그런 행위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헤어짐이란 것은 익숙해지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런 내게 과연 '끝'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나타나기는 할까. 나뿐만 아니라 내 나이대 모든 사람들이 결혼 상대로 적합한 이성을 찾고, 적어도 '끝'이 전제되지 않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어한다. 그런데 어떻게 나와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한다는 것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제도적으로 나와 상대방이 '가족'이 되었음을 선언한다는 것인데, '가족'이 될 사람은 좀 더 까다롭게 골라야 하는 것 아닌가. 뭐, 나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지만, 적어도 어느정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있기에 조건을 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들며 그 조건이 더 까다로워진다는 것이다.


혼자서 잘 살아가고 있지만 가끔, 나이에 대한 압박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응당 너 나이면 괜찮은 사람 만나 결혼해야지, 라는 사람들의 인식에 대한 압박 정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주변에 괜찮은 사람이 없어요. 별로인 사람과 평생 함께 살 바에는 저 혼자 사는 게 나아요."라고 대답한다. 장난삼아 대답하지만 솔직한 심정이다. 만약 40살까지 인생의 단짝을 만나지 못한다면 비혼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때까지 브런치를 연재중이라면, 이 글을 읽는 구독자분들께서도 맛있는 식사라도 대접하기 위해 모셔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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