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역할이 따로 있나. 어떻게든 살기만 하면 되는거지.
필자는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매 두는 것을 좋아한다. 이 글의 제목인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사람 역할을 한다는 것'이라는 문장도 잠시 머릿속에 머문 것을 그저 끄적여 본 것뿐이었다. 정확히는, '사람이 사는 세상인데 사람 역할하기 참 어렵네.'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문득, 나 자신에게 다시 물었다.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을 했느냐고.
사람 역할? 정확히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내 삶을 돌이켜보면, 세상에 태어나 부모가 주는 음식을 먹으며 잘 먹는 것만으로 복스럽다고 칭찬받았었고, 그러다 초등학교에 들어가 학교의 독서왕으로 꼽힐 만큼 학교 도서관의 책들을 모조리 섭렵한 모범생이었으며, 중학교 때부터는 성적으로 갈리는 경쟁사회에 자연스레 녹아들었다. 그러다 서울에 있는 나름 유명한 대학을 들어갔으며 현재는 잘릴 걱정 없는, 공무원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 사실 내 인생은,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소위 '꼰대'인 어른들이 바라는 아이의 삶과 비슷했다. 아마 내 무의식에서 사람 역할이란, 각 나이대에 기대하는 어른들을 충족시키는 삶을 전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 된 반항심인지, 그 전제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어졌다. 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 그리고 비슷한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고 내가 사람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언니와 공무원 준비를 같이 했다. 나는 약 2년간 공부해서 합격했고, 언니는 5년을 공부했지만 되지 않아 다른 자격증을 준비하여 취직했다. 언니가 이 글을 본다면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합격해서 일하는 동안 공무원 준비한다고 집에만 있는 언니를 한심하다고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의 언니들은 다들 잘 나간다는데 왜 우리 언니는 집에서 저러고만 있을까. 계속해서 방을 같이 쓰며 불편한 감정이 누적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게 왜 그렇게 얄미워 보였는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나는, 언니가 사람 역할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로부터 약 2년이 지난 지금, 언니가 다른 자격증을 따고서 경제활동을 하기 시작하니 언니에 대한 나의 생각이 말끔하게 바뀌었다. 이제 나와 비슷한 직장인이구나,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되겠구나, 싶은 생각에 내 태도가 바뀐 것이다. 내 마음의 변화가 당연한 것인 줄 알았건만, 사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다. 어쩌면 내가 먼저 합격해서 일하고 있다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사회에서 내 나이대에 기대되는 사람 역할을 더 잘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한 사람만 살지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꽃을 보고 지켜주고 싶다며 두 손을 모아 햇볕을 가리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엄마에게 보여주겠다고 줄기를 동강 내버리는 아이가 있기도 하다. 모든 사람의 성격은 다르고 그에 따라 생각하는 방법도 다르다. 그런 사람들이 모두 일정한 방향, 그리고 속도로 갈 수 없음은 명백하다.
혹시라도 스스로가 이 사회에서 1인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될 때면, 혹은 누군가 당신에게 1인분만큼만 하라며 꾸짖을 때면 일단 생각하자. 1인분은 누가 정한 건데? 남이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게 1인분인가? 너한테는 1인분이지만 나한테는 아닌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