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딱이다! 역시 타이틀은 내공이다. 간만에 들른 성곡미술관에 미술계 인싸들이 가득모였다 비가와서 휴무날 축 처지는 중년 몸뚱아리를 커피로 다스리고 떡볶이로 다스리며 출발했다 의미있었다
겸허하게 고요하게 바라본다는 것은, 더 많이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을 믿는 태도에 가깝다. 법화경이 말하는 평등은 동일함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저마다의 잠재성을 이미 지니고 있다는 전제다. 장 마리 해슬리의 작업이 시간이 흐르며 평가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회화가 위기라 불리던 시기에도 그리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았고, 반복과 축적이라는 한 방식을 수십 년간 유지했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 겸허한 지속이 미술관과 연구자들의 신뢰를 쌓았다. 해슬리는 새로워 보여서 유명해진 작가가 아니라, 이미 충분한 것을 믿고 오래 버텨서 남은 작가다. 그의 그림이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잠재성이 조용히 화면 위에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성곡미술관에서 장 마리 해슬리의 전시 『그린다는 건 말이야』. 전시는 성곡미술관 2관에서 진행되며, 기획은 이인범 선생님이 맡았다. 전시는 2025년 12월 16일부터 2026년 1월 18일까지 이어진다.
전시가 열린 날, 서울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은 비로 인해 정체가 심했다. 차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고,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성곡미술관에 도착했다. 결과적으로 그 지체된 시간이 전시의 첫 인상이 되었다. 서두르지 못한 채 도착해 젖은 정원을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동선은, 이 전시가 요구하는 감상 태도와 자연스럽게 맞물렸다.
성곡미술관은 도심에 위치한 쌍용 그룹 회장님이 지은미술관이고 신정아사건으로도 이슈였다, 전시장에 도달하기 전 반드시 정원과 외부 공간을 통과하도록 설계된 장소다. 이 구조는 관람자의 속도를 낮춘다. 이번 전시에서도 공간은 적극적으로 연출되기보다, 작품이 스스로의 밀도로 존재할 수 있도록 중립적으로 유지된다. 조명과 동선은 과하지 않으며, 관람자는 작품 앞에 멈춰 서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확보하게 된다.
장 마리 해슬리 Jean-Marie Haessle는 1939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한 추상 작가다. 그는 1960년대 이후 회화가 위기를 맞던 시기에, 회화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그 조건을 근본적으로 되묻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해슬리의 작업은 특정 이미지나 상징을 전달하지 않는다. 대신 동일한 행위의 반복과 물질의 축적을 통해 화면을 형성한다. 그의 회화는 결과라기보다 과정의 흔적에 가깝다. 작가는 2025년 작고했으며, 이번 전시는 그의 사후에 기획된 전시다.
해슬리가 알려지게 된 계기는 단번의 성공이나 화제성 있는 작품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장기간 유지된 작업 태도와 그에 대한 미술관과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그의 명성을 형성했다.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이후 회화의 의미가 흔들리던 시기에, 그는 회화를 이미지 생산이 아닌 시간과 행위의 축적이라는 관점에서 밀도 있게 이어갔다. 그 점이 시간이 지나며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전시에 소개된 그림들은 전반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색은 강하지 않고, 붓질은 반복되며, 화면은 조용하다. 그러나 이 단순함은 빈약함이 아니라 통제된 선택의 결과다. 붓질 하나하나는 크지 않지만, 반복되며 화면 전체에 안정된 밀도를 만든다. 그림 앞에 서 있으면 시선이 흔들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머문다. 해슬리의 그림이 주는 편안함은 감정적 위로나 극적인 감동이 아니라, 시각적 압박이 제거된 상태에서 오는 안정감에 가깝다. 감동은 화면이 견뎌온 시간의 양을 인지하는 순간에 발생한다.
이번 전시는 이인범 선생님이 기획했다. 이인범 선생님은 약 20여 년 전 한국미학예술학회 학회장을 역임한 연구자이자 교육자로, 학문적 엄밀함과 더불어 인자하고 단정한 태도의 선생님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당시에도 이론을 앞세우기보다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고, 판단을 서두르지 않는 태도로 많은 제자와 연구자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이번 전시의 기획 방식 역시 그 태도와 닮아 있다. 기획자는 전시를 설명하거나 해석으로 이끌지 않는다. 텍스트는 최소화되어 있고, 작품은 스스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 속에 놓인다. 기획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지만, 작품과 공간 사이의 간격을 정확히 유지하며 전시 전체를 지탱한다.
비 오는 날의 오프닝, 도로의 정체, 늦어진 도착 시간, 젖은 정원을 지나 전시장으로 들어오는 경험은 결과적으로 전시의 일부가 되었다. 이 전시는 빠르게 소비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동과 대기, 체류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감상에 포함된다.
『그린다는 건 말이야』는 회화를 감정이나 메시지로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회화가 어떻게 시간을 견디는지, 반복된 행위가 어떻게 화면의 편안함으로 전이되는지를 차분히 보여준다. 작가의 태도, 성곡미술관의 공간 성격, 기획자의 절제된 판단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렬된 전시다.
이 전시는 화려하고 고급지며 조용히 오래 남는다. 회화를 여전히 믿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고, 어떻게 전시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