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글로 Sep 06. 2024

다시, 시(詩)를 읽어야겠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의, 되찾고 싶은 마음을 위하여

한때, 참 열심히 글을 다.


물론 지금도 매일 글을 쓴다.

일로도 쓰고, 취미로도 쓴다.

아직 방향을 정하지 못해,

마음으로만 쓰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 무엇 하나,

그 '한때' 쓰던 글과는 다르다.




'중2병'이라는 말이 여전히 눈에 띈다.

그리 좋은 뜻으로 붙은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무척 직관적인 네이밍인 건 맞다.


과거 어떤 작가는 연재 중인 작품에서

'작가의 말'을 통해 이런 말을 남겼었다.


중2병은 병이 아니야...
축복이야...


그 짧은 말이 두고두고 생각나는 건,

그만큼 인상 깊었다는 뜻일 게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는 그 말에 적극 공감한다.


열다섯 즈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적당히 무모하고 적당히 용감했던,

생에  한 번 왔다가는 시간이었다.


마음속에서 태어난 '원본'을,

가장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나이.

순수하게 마음에 귀 기울이고,

그 소리를 자르거나 깎아내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 꺼내놓을 수 있었던 시절.

그만큼 소중했던... 한때.




세월이 참 많이 묻었다.

헤아리기 어려운 많은 시간이

나를 훑고 지나갔다.

그들이 남기고 간 저마다의 얼룩 때문일까.

나는 그 시절의 솔직함과 대담함을 잃었다.

반듯하게 깎인 세상에 맞춰 살다 보니,

나 또한 그처럼 각진 빡빡함을 추구하게 되더라.


스스로 써내는 글을 보면서도,

가식과 마름질이 잔뜩 배어있음을 종종 느낀다.

허세가 덕지덕지 붙었다는 걸 알면서도,

결국 쓰고 마는 오기를 부릴 때도 많다.

되돌아봤을 때 느껴지는 억지스러움은,

후회, 미련, 혹은 자기 합리화로 덮곤 한다.


나이를 먹으며 겪고 깨달은 만큼,

글을 쓰는 '기술'은 늘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글 어딘가에는,

묻어간 세월과 훑고 간 시간이 남긴 무언가가

스며들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성장'일 것이다.


그래도 못내 아쉽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는,

당연한 삶의 이치로 넘기기엔...

뻥 뚫린 듯한 허전함이 너무 크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나라는 사람이

빡빡한 세상에 맞춰 살아간다는 건,

매일 지치고, 종종 허무하며, 가끔 또 괴로운 일이다.

있어서는 안 될 곳에 서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오래된 책들.

이끌리듯 그중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시집(詩集)'이다.

너무 오래 손길이 닿지 않은 탓에,

먼지가 눌어붙어 꼬질꼬질해진.

한 장, 또 한 장...

별 감흥 없이 넘어가는 걸 깨닫자

다시 한번 씁쓸해진다.


이토록 농축된 말들이 짙게 눌러 담겨있는데,

잠시도, 한순간도 머무를 수 없을 만큼 메말랐던가.


그러던 중 문득,

얼마 전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며

눈물 흘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아직은 희망이 있다.


그날 그 순간이,

어쩌다 한 번 찾아온 것일지라도,

아주 잠시 머물다 간 것일지라도,

'존재했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반듯하게 깎여버린 마음속 어딘가에,

울퉁불퉁하던 그 시절의 조각이 남아 있음이다.


내 가장 무모했던 시절의 마음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안다.

하지만 적어도, 되찾을 수는 있지 않을까.

마음속 언저리에 머물게 두고,

빡빡한 세상에 지칠 때 한 번씩

불러볼 수는 있지 않을까.


할 수 있을 것 같다.

다행히도 이 세상에는,

그 시절의 순수와 용기를 지켜낸 이들이 많으니까.

그들의 도움을 받으러 간다.

그들이 남겨놓은, 여전히 남겨가고 있는,

아름다운 말들을 찾으러 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