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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Dec 25. 2019

카세트테이프 B면 4


4


그녀의 숙원은 그 후로 약 사 년이 흐른 어느 늦가을날 이루어졌다. 당시 막 군 복무를 마친 나는 별안간 상경의 뜻을 품고 저녁마다 식당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백만 원은 수중에 쥐고 떠날 요량이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의 아르바이트로는 도무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하물며 당시의 내게는 상경을 한다고 한들 무엇을 해서 먹고살지 확고한 청사진도 없었다. 안일한 나는 언젠가는 모이겠지 하는 생각 외에는 텅 빈 정신머리로 허송세월했다. 밤이 깊으면 방황하는 나와 다를 바 없는 처지의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셔대기 일쑤였다. 아직 한창일 나이라는 생물학적인 이점 외에 달리 특별한 기질이 없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한 채, 각자의 장래에 대한 낙관을 근거 없이 펼치는 대담함을 안주 삼았다. 방탕한 쥐새끼와 맥락을 같이한다고 해도 무방했던 나는 줄곧 새벽이 되어서야 귀가했다. 다만 취기가 잔뜩 오른 와중에도 혹여나 그녀의 소중한 수면에 방해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만큼은 할 수 있었다. 모종의 효심을 비춘답시고 나는 온 근육을 조심스럽게 움직여 현관문을 열고 닫았다.


외투도 벗지 않은 채 흡사 노숙자의 모양새로 눈을 뜨면 온갖 후회가 몰려들었다. 새벽 내내 건방지게 떠든 앞날에 대한 공상이 일말의 형체를 띠는 순간은 취중 세계에 한정되어 있었다. 현실 세계의 나는 상경의 의지를 품었을지언정 수중에는 삼십만 원도 채 없었다. 다시금 해가 지면 술 취한 양반들의 비위를 맞추며 쟁반이나 날라야 하는 처지였다. 그녀는 여전히 살인적인 스케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이미 동트기 전에 집을 나섰다. 그는 당시까지도 안방 한가운데 앉아 예의 모순을 꾸준히 실천했다. 장차 살아갈 방편을 모색하는 청년과 중년의 무거운 공기가 각자가 있는 방으로부터 새어 나와 부엌에서 뒤범벅되었다.  


그녀의 숙원이 이루어졌던 아침은 집 안 전체가 인기척 하나 없이 고요했다. 당시 나는 안방에 고개를 들이밀어 그에게 조회하듯 아침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평소 그는 작은 접이식 식탁 위에 아침인지 점심인지 모를 밥상을 간소하게 차려놓고 앉아 있었다. 물론 예의 막걸리와 구인구직 지면을 유심히 훑으며 빨간 펜으로 표시를 남기는 수고도 빼먹지 않았다. O보다는 자신의 부적합을 선고하는 X의 수가 월등히 많았다. 그릇에 담긴 쌀밥은 쉬이 줄지 않고 차갑게 굳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같이 한 폭의 병풍처럼 익숙해진 광경이 돌연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가 기어이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하여 마침내 모순을 중단하리라는 기대에 사로잡혔다. 집 안을 메운 각자의 음울한 공기로부터 그의 지분이 빠져나간 것 같아 마음이 한층 가벼웠다. 이 같은 기대를 의심 없이 품었을 정도로 그가 집 밖을 나서는 건 이례적이었다. 순진한 나는 들뜬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돌연 요란스러운 배기음이 가깝게 들려왔다. 이어서 둔중한 차 문이 쾅하고 닫혔다. 녹슨 대문이 쇳소리를 내며 열렸다. 동시에 민첩한 발소리가 현관 쪽을 향해 다가왔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소리가 나는 쪽을 멍하니 응시했다. 그러자 운동복 차림의 그가 전에 없이 비장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그날따라 그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유독 활동적인 기색이 흘렀다. 낯선 그의 풍채에 의아함을 느낀 나는 앞에 놓인 식사는 까맣게 잊은 채 그에게 운동이라도 다녀왔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잠깐 어디에 좀 다녀왔다, 배고플 텐데 밥을 마저 먹으라며 평소와 다름없이 온화한 투로 대답했다. 그는 결코 언동이 거칠다거나 성정이 맹렬한 사람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늦둥이인 나는 그의 나이가 마흔을 코 앞에 두었을 당시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내게는 한없이 다정했다.


그는 현관문을 열어젖힌 채로 고정시키더니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섰다. 늦가을의 미약한 냉기가 집 안에 스몄다. 곧 그가 자신의 물건들을 밖으로 차례차례 나르기 시작했다. 급작스러운 그의 기행에 혼란스러워진 나는 서둘러 그를 따라나섰다. 출처를 알 수 없는 트럭 한 대가 대문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들고 나온 거대한 오디오가 널찍한 짐칸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자조치종을 알지 못했던 나는 어디에 팔기라도 하는 거냐며 황급히 물었다. 그는 무던한 어조로 둘러대고는 다시금 집 안으로 들어섰다. 당시 그가 둘러댔던 말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그를 도와야 할지 혹은 당혹스러운 기행을 멈추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멀뚱히 선 채로 지켜만 보았다.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모든 물건이 짐칸을 빼곡히 채웠다. 줄곧 비장한 표정을 고수하던 그는 끝으로 나를 향해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여전히 멍한 채로 서 있던 나는 두 눈으로 덜컹거리는 트럭 꽁무니를 쫓았다. 여태껏 평생을 또한 앞으로도 평생을 동고동락하리라 여겼던 온갖 물품이 낯선 트럭에 실려 좁은 골목 사이로 사라졌다. 길가에 뒹굴던 은행 낙엽이 뒷바퀴를 쫓다가 힘없이 내려앉았다. 나 자신이 그 순간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 어딘가에 놓인 듯했다. 직전까지의 그는 어느 때보다 신속했으며 단호했다. 또한 침착하고 정확했다. 감탄할 만한 그의 추진력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이 하필 나라는 점이 억울했다. 한 시대가 막을 내린 듯한 허무감에 휩싸였다. 일찍이 가정의 파탄을 겪은 친구들의 푸념을 떠올렸다. 당사자의 처지는 면하고 있던 나는 동요하지 않는 선에서 제삼자의 무덤한 귀로 그들을 위로하는 척했다. 내 경우에도 혈연을 이어주고 있던 밧줄이 위태롭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러나 비열한 속내에는 나만 아니면 상관없다는 식의 부패한 입장을 고수했음을 고백하고 싶다. 이는 명백한 오만이었다. 또한 오만이었음이 입증된 과정은 더없이 성급했다.


천체망원경과 통기타, 재킷이 헤진 수백 장 남짓의 레코드판, 갖가지 제목의 식물도감, 다양한 굵기의 우주 이론 서적, 나보다도 열댓 살이 더 많은 턴테이블, ‘GOLD STAR’가 각인된 거대한 구형 오디오 등의 빈자리가 적잖이 공허했다. 그간의 삶 일부가 보이지 않는 칼로 도려내어진 기분이 들어 쓰라렸다. 그러나 전에 없던 평화로운 적막이 이들의 공백을 메웠다는 점이 쓰라린 부위를 얼마간은 둔하게 해 주었다. 더 이상 널브러진 막걸리병이 그녀를 마중하지 않는다. 나 역시 느닷없는 고함에 몸을 움츠릴 일이 없다. 형은 격렬한 육탄전에 몸소 뛰어들지 않아도 된다.


나는 안방 한가운데 서서 다가올 고요를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그러던 중 불현듯 익숙한 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눅눅한 뚜껑을 열자 그 속에는 수많은 카세트테이프로 빼곡했다. 그가 미처 챙기지 못한 걸까, 혹은 나를 위해 남겨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스쳤다. 삶의 일부 중 이들만이 온 힘을 다해 잘려나간 단면 끝자락에 매달려 있었다. 나는 이들 중 유독 누렇게 변색된 하나를 끄집어낼 목적으로 서둘러 속을 파헤쳤다. 그것은 그와 나를 떼어놓을 수 없다는 듯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찢겨나간 라벨 위 흐릿한 볼펜 자국. 휘갈겨 쓴 ‘Ob-LA-Di, Ob-La-Da’.  나는 곧장 B면을 꽂아 넣고 싶은 충동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예의 거대한 오디오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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