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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장이와 안면을 튼 건 그로부터 이틀 전이었다. 당시 나는 난데없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어디로든 숨어들어야 했다. 그 어디가 바로 그 협소한 카페 앞 처마였다. 그때 구두장이는 입구 옆의 2층으로 통하는 철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힘없는 낯으로 맞은편 티벳 사원을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사원 입구에는 수레바퀴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마리의 산양 형상이 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찬란한 빛은 온데간데없었으며 산양의 등줄기를 따라 빗물만 내리 떨어질 뿐이었다.
그의 발 앞에는 손잡이가 달린 나무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망치며 구둣솔 따위의 연장들로 가득했다. 나는 여행 내내 그와 같은 상자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젊은이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부터 다 큰 청년들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들고 다짜고짜 신발이 지저분하다며 트집을 잡았다. 이어서 자신에게 맡기면 깨끗해지리라 장담을 하며 장사를 시작했다. 행인 중 몇몇은 신발을 내려다보더니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곧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신발을 내밀었다. 그렇게 맡긴 신발은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지저분했는데도 행인들은 자못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전 몇 개를 쥐어준 뒤 발걸음을 옮겼다. 젊은이들은 다시 트집 잡을 상대를 찾아 길거리로 나섰다. 내게는 그 광경이 자못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내가 카페로 들어서려고 하자 구두장이는 내게 눈길을 돌렸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왔다. 자판? 차이나? 나는 신발을 힐끔 내려다본 뒤 “코리아”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나를 지나치다시피 환대하는 것이다. 의아해진 나는 그에게 한국에 와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타국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의 문답은 그것으로 끝났다.
카페로 들어선 나는 메뉴판을 보고 한참을 고민하는 척하다가 가장 저렴한 블랙커피를 주문했다. 그러니까 고개 돌리는 시늉만 했을 뿐 시선은 블랙커피에만 머물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앞에 두고 입구 쪽으로 난 커다란 창을 주시했다. 저녁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도 비가 퍼붓는 언덕길은 한껏 어두워져서 이미 저녁이 된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구두장이는 카페 안으로, 다시 카페 안에서 밖으로 들락거리기를 반복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하기야 손님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그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므로 무료함을 견디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따금씩 나무로 된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는데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덩달아 짤랑거렸다. 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번은 그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와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는 나 같은 이방인에게 호의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카페의 주인장 역시 온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구두장이와 주인장은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듯했다. 그들은 주방 뒤에서 힌디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낱말 하나 알아들을 수 없었다. 이윽고 나는 빗발이 잠잠해진 틈을 타 호스텔을 향해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