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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May 16. 2020

맥그로드 간즈의 구두장이 1


1


구두장이와 안면을 튼 건 그로부터 이틀 전이었다. 당시 나는 난데없이 쏟아지는 비를 피해 어디로든 숨어들어야 했다. 그 어디가 바로 그 협소한 카페 앞 처마였다. 그때 구두장이는 입구 옆의 2층으로 통하는 철제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그는 힘없는 낯으로 맞은편 티벳 사원을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사원 입구에는 수레바퀴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마주 보는 두 마리의 산양 형상이 금빛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러나 여느 때와 달리 찬란한 빛은 온데간데없었으며 산양의 등줄기를 따라 빗물만 내리 떨어질 뿐이었다.


그의 발 앞에는 손잡이가 달린 나무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에는 망치며 구둣솔 따위의 연장들로 가득했다. 나는 여행 내내 그와 같은 상자를 들고 길거리를 배회하는 젊은이들을 여럿 볼 수 있었다. 기껏해야 초등학생쯤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들부터 다 큰 청년들까지 다양했다. 그들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붙들고 다짜고짜 신발이 지저분하다며 트집을 잡았다. 이어서 자신에게 맡기면 깨끗해지리라 장담을 하며 장사를 시작했다. 행인 중 몇몇은 신발을 내려다보더니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곧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자신의 신발을 내밀었다. 그렇게 맡긴 신발은 이전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지저분했는데도 행인들은 자못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동전 몇 개를 쥐어준 뒤 발걸음을 옮겼다. 젊은이들은 다시 트집 잡을 상대를 찾아 길거리로 나섰다. 내게는 그 광경이 자못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내가 카페로 들어서려고 하자 구두장이는 내게 눈길을 돌렸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왔다. 자판? 차이나? 나는 신발을 힐끔 내려다본 뒤 “코리아”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가 나를 지나치다시피 환대하는 것이다. 의아해진 나는 그에게 한국에 와본 적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그런 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타국에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의 문답은 그것으로 끝났다.


카페로 들어선 나는 메뉴판을 보고 한참을 고민하는 척하다가 가장 저렴한 블랙커피를 주문했다. 그러니까 고개 돌리는 시늉만 했을  시선은 블랙커피에만 머물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머그잔을 앞에 두고 입구 쪽으로  커다란 창을 주시했다. 저녁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데도 비가 퍼붓는 언덕길은 한껏 어두워져서 이미 저녁이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구두장이는 카페 안으로, 다시 카페 안에서 밖으로 들락거리기를 반복했다. 이유는   없었다. 하기야 손님은커녕 개미  마리도 그에게 접근하지 않았으므로 무료함을 견디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따금씩 나무로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는데  위에 달린 작은 종이 덩달아 짤랑거렸다. 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대번은 그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와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는  같은 이방인에게 호의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카페의 주인장 역시 온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구두장이와 주인장은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듯했다. 그들은 주방 뒤에서 힌디어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낱말 하나 알아들을  없었다. 이윽고 나는 빗발이 잠잠해진 틈을  호스텔을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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