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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현 May 22. 2020

맥그로드 간즈의 구두장이 4


4


아침 느지막이 나는 얼굴이 시려워 그만 잠에서 깼다. 방 안에 서린 냉기가 좀체 사라지지 않아 곤혹스러웠다. 반면, 발코니 창문 너머로는 한 점 햇빛이 비쳐 들었다. 좀처럼 없던 화창한 아침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서둘러 발코니로 나섰다. 온 마을이 밤새 내린 눈으로 새하얬다. 마을 위로는 그 어떤 불순물 없이 푸르고 청명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설산 자락의 윤곽선이 투명한 하늘 앞에서 두드러졌다. 난간에 붙은 고드름이 녹아 없어지면서 물방울을 점점이 떨어트리고 있었다.


나는 눈 덮인 길을 조심조심 걸어 다시금 카페로 향했다. 까마귀와 독수리 몇 마리가 설산 봉우리 언저리를 자유롭게 활공했다. 새들의 날 선 울음소리가 고요한 마을 자락에 울려 퍼졌다. "블랙?" 하고 그날은 주인장이 먼저 물어왔다. 날씨가 맑아서인지 그날따라 그의 기분도 한층 들떠 보였다. 얼마간 나도 기분 좋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자 카페 안으로 자주색 승려복 차림의 노파 한 명이 들어섰다. 그녀는 여섯 개 남짓의 나머지 테이블은 둘러보지도 않고 곧장 문 앞자리에 앉았다. 하기야 나머지 테이블은 모두 다른 손님들의 차지였다. 나도 그중 한 명이었다. 노파는 바깥 추위에 쫓기다 급히 들어선 모양이었다. 라탄 의자에 파묻은 몸을 한껏 웅크렸다. 그러고는 연신 읏 추추, 읏 추추 하는 추임새를 내뱉는 것이다. 나는 그 소리가 적잖이 유쾌해서 몰래 웃었다. 이 세계 어디서든 '읏 추추' 하는 추임새는 공통으로 쓰이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불쑥 고민거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보름 뒤면 나는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야  터였다. 돌아가면 무엇이 되었든 일자리를 구해 다시금 생계로 뛰어들어야 했다. 나는 딱히 이렇다  기술도 직장도 없는 몸이었다. 따라서 태평한 여행객 노릇도 남은 보름으로 끝이었다. 노파는 주인장이 내어준 커피를  손으로 받쳐 들고 조심스럽게 홀짝였다. 나는 노파의 옆을 지나 밖으로 나섰다.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먹고살 궁리를 했다. 주위가 시끌벅적했다. 마을의 아이들과 청년들이  쌓인 언덕길로 나와 엉덩이로 썰매를 타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뒤섞였다. 지저분한 검은   마리가 그들 사이를 태평하게 거닐기도 했다. 하룻밤 사이에 마을한겨울로 변했다. 뿌연 입김이 새어 나왔다.


이윽고 구두장이가 언덕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를 향해 한 손을 흔들어 보이며 다가왔다. 가까이 다가올수록 일전의 해맑은 미소가 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얇은 바람막이 하나만 달랑 걸친 채였는데, 춥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다른 옷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동안 내가 입은 오리털 점퍼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은근히 부러워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무어라 할 말이 있는 듯 나의 눈치를 슬슬 살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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