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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편 Feb 03. 2024

오 캡틴, 마이 캡틴!

원더풀 라이프

한 중년의 사내가 휘파람을 불며 교실 앞문으로 들어서더니 뒷문으로 빠져나간다. 산만하던 아이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리기 시작한다. 전통 명예 규율 최고의 교훈 따위를 내세우는 웰튼 아카데미의 교육 방식을 타파하는 키팅 선생의 첫 수업시간, 그는 아이들을 교실 밖으로 불러낸다.

귀를 기울이면 들릴 것이다. 키팅 선생은 학생들의 귓가에 대고 낮은 속삭임으로 영혼의 목소리를 전한다.

카르페, 카르페 디엠carpe diem.

시간이 있을 때 봉우리를 거두라. 현재를 즐기라, 카르페 디엠.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기 때문에 이 순간을 즐겨야 하는 것이다.

오 캡틴, 마이 캡틴!

키팅 선생은 자신이 그렇게 학생들에게 불리기를 원한다. 미국의 위대한 시인 월트 휘트먼이 링컨을 추모하며 불렀던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우리의 선장은 그렇게 학생들을 데리고 자유를 향한 항해를 시작한다.


'시의 완성도를 가로축에 놓고 중요도를 세로축에 놓으면 그 시의 위대함은 완성도와 중요도의 영역이 된다. 이러한 이해도를 높이면 시를 읽는 기쁨이 느껴질 것'이라는 서문 따위는 쓰레기라며 찢어버리라는 선장의 말에 따라 학생들은 서문을 모조리 찢어서 바구니에 내던진다.

시는 재는 것이 아니다. 비밀을 말하자면, 시가 아름다워서 읽고 쓰는 것은 아니다. 인류의 일원이기 때문에 시를 읽고 쓰는 것이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 법률, 의학,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다.

키팅 선생은 학생들을 향해 시의 진정한 의미를 전파한다.


오, 나여! 오, 생명이여!

수없이 던지는 이 의문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을까   

오, 나여! 오, 생명이여!


대답은 한 가지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화려한 연극이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여러분의 시는 어떤 것이 될까?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지방 도시의 끄트머리에 위치한 신설학교였다.

첫 등교를 하던 날, 꼭두새벽에 등산을 하듯 언덕을 올라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밤에 건물을 빠져나오는데 검은 어둠 속에서 거대한 은행나무가 정령처럼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국어 선생은 시에다 빨간 볼펜으로 난도질을 권장했고, 붉은 선혈이 가득한 책을 보며 학생들은 그것이 시라고 배웠다. 나는 그런 가르침에 숨이 막혀 질식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청소시간이면 커다란 쓰레기통을 들고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와 건물 뒤 쓰레기를 태우던 소각장으로 향했다. 뒷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보면 도시라고는 믿을 수 없이 한가로운 시골마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병환자들이 모여사는 나환자촌으로 가끔씩 학교 앞을 지나 그곳 마을로 들어가는 얼굴이 문드러진 사람들과 마주치곤 했다. 그 사람들이 농사를 짓기 위해 마련해 놓은 저수지가 그나마 내게는 허파가 되어 숨을 쉬게 했고, 저수지가 아니라 호수가 되어 마음에 일렁였다.  

나는 연습장에 낙서를 시작했고, 그것은 시라는 이름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포부도 당당히 어린 시인들을 불러 모을 생각이었으나 입시에 목을 맨 학생들에게 시는 난도질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터라 전복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의 선장은 웰튼 아카데미를 다니던 시절 죽은 시인의 사회를 결성했었고, 학생들은 그 정체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는 오래전 인디언의 동굴에서 시의 정수를 빨아들이며 여자들과 함께 시를 낭송하던 어린 낭만주의자들에 대한 얘기를 들려준다.

닐 페리를 비롯한 학생들은 다시 죽은 시인의 사회 모임을 결성하기로 하고 선장이 고교시절 그러했듯 헨리 D 쏘로우의 개회시를 낭송한다.

나는 자유롭게 살기 위해 숲 속으로 갔다.

깊이 파묻혀 삶의 정수를 빨아들이고 싶었다

삶이 아닌 것을 모두 떨치고

삶이 다했을 때 삶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


그렇게 재결성된 죽은 시인의 사회는 그들만의 세계를 형성하고 잡다한 시구를 들먹인다. 누군가 시에 비트를 싣기 시작했고, 박수소리와 함께 리듬을 탄 몸짓은 그들 모두를 일으켜 세웠다.

황금의 통로가 숲 속을 가로지르네

그때 난 어둠 속에 나타난 콩고를 보았네♬♬

그들은 동굴 속에서 나와 어둠 속을 가로지르며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만의 4가지 교훈 익살 공포 타락 배설을 실천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틈에서도 배설하지 못한 채 공포에 질려 있는 존재인 전학생 토드 앤더슨은 이미 선장의 레이더에 포착되고 있었다.

키팅 선생은 교탁 위에 올라서서 학생들을 향해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방식을 설파하고 하나씩 교탁 위로 끌어올린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자작시 한 편씩을 써오라는 과제를 내준다.


내 야성을 지르노라. 나는 이 세상 지붕 꼭대기에서

키팅 선생은 토드를 교실 앞으로 불러 세우고 야성을 불러내려 한다. 겁에 질려 있던 토드의 내면에서 처음에는 작고 소심한 목소리가 기어 나오더니 마침내 야성에 울부짖는 고함이 터져 나온다. 선장은 그의 눈을 감기고 토드는 스스로의 야성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휘트먼을 향해 '땀에 젖어 이를 드러낸 사람'이라 명명하며 눈을 감고 진실을 중얼거리고 있다.

잡아당겨도 늘어뜨려도 이불은 부족하다.

무슨 수를 써봐도 이불은 우릴 덮어주지 못한다.

울면서 태어난 날부터 죽음으로 떠나는 날까지

울고 절규하고 신음하는 우리의 얼굴만을 덮을 거다

"오늘의 수업을 잊지 마라."

자신도 알지 인지하지 못했던 토드의 야성은 그렇게 키팅 선생의 인도로 완성되었다.


"6반 내 친구한테 너 아냐고 물었더니 안다면서 뭐라는 줄 알아?"

그 무렵 유일하게 어울려 다니던 친구가 내게 물었다.

"아니."

"쓰레기통 들고 다니는 애."

쓰레기통 들고 다니는 애, 그게 나를 지칭하는 전부인것이다.

그 친구와는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는 토요일이면 시내로 나갔다. 분식집에 들러 쫄면을 먹고 나면 카페에 앉아 반장이었던 그 애는 전교석차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수학 문제를 풀고, 나는 책을 읽거나 몽상에 빠져있곤 했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고, 집에 가기가 끔찍이 싫었던 나로서는 밤이 되기를 기다리는 공백을 매워주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어둠이 거리를 점령하는 순간이 되면 그 친구는 다시 밤의 더 깊숙한 공간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애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고, 그 애도 내게 어디로 가는지를 묻지 않았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진 나는 혼자서 집을 향해 걷기 시작하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가족들이 잠들기를 바라며 다시 변두리를 배회하곤 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다. 나는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을 택했다. 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키팅 선생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언급하며 획일화의 위험성을 알려주기 위해 교정을 거닐게 하고, 손뼉을 치게 했다.


죽은 시인의 사회 리더이자 토드의 룸메이트였던 닐은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여름 밤의 꿈> 연극 오디션을 보러 가기로 결심한다. 그의 아버지로 말하자면 의대에 가야 하는 닐이 졸업연감 부편집장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었다.

"의대에 가게 되면 그때는 네 맘대로 해. 엄마가 너에게 거는 기대를 알잖니."

아버지는 자신의 왜곡된 의지를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비껴 나는 비굴함을 보이기까지 했다. 그런 아버지가 닐이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학교로 찾아온다. 키팅 선생닐이 아버지에게 열정의 깊이를 진실로 고하고 이해시키기를 권하지만 닐로서는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결국 닐은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고 무대에서 화관을 쓴 채 요정이 되어 자신의 재능을 발산한다. 그러나 공연장을 찾아와서 아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모습은 강고하다.

아버지는 닐을 학교가 아닌 집으로 데려간다.

학교를 자퇴시켜서 육군사관학교에 갔다가 하버드 의대에 들어가는 것으로 닐의 계획표를 변경하고 연극이라는 짓거리를 그만 두기를 명령한다.

창문을 열고 요정의 화관을 쓴 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닐은 천천히 2층 자신의 방에서 나와 계단을 걸어 내려온다. 아버지의 서재 잠겨있던 서랍을 열쇠로 열고...

놀라 잠에서 깬 아버지가 닐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권총으로 자신을 쏜 뒤였다

맙소사, 불쌍한 내 아들.


잠자던 토드는 자신이 의지하고 있던 룸메이트의 죽음을 친구들로부터 전해 듣는다. 평온하게 눈이 내리는 교정으로 나선 그들의 모습은 여느 때처럼 산책을 나온 학생들의 모습이다. 교정에 소복이 내려앉은 눈은 포근하게 사방을 감싸고 있다.

너무 아름답지.

잔인한 현실은 언제나 평온한 형태를 띠고 있기 마련이다.

그 애 아버지 때문이야. 아버지가 그런 거야.

토드는 눈이 내리는 교정에서 벌판으로 달려가며 오열한다.


장례식이 끝나고 사건을 밝히려는 교장은 닐의 아버지가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기를 간곡히 요청했노라고 전쟁을 선포한다. 자신의 책임을 전가해야만 하는 닐의 아버지와 학교의 수치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야만 하는 교장에게는 희생양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그에 적합한 인물로 선장이 주목된다.

왜 우리 인생을 망쳐, 난 키팅 선생을 망가뜨릴 거야.


일은 의외로 간단했다. 키팅 선생이 학생들을 부추겨서 학생들이 무모하고 제멋대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는 서류에 사인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닐 페리를 부추긴 것은 키팅 선생이고 직권남용을 해서 페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키팅 선생은 어떻게 되는 거죠?"

자신의 야성을 끄집어내어 준 선장을 걱정하며 토드가 묻는다.


누구나의 고교시절이 그렇듯 우리의 수학여행은 특별한 것이었다. 아니, 특별해야만 했다. 그래서 우리는 뭔가를 도모하기로 하고 마지막 날 밤 '야자타임'을 준비했다. 누가 주동을 했는지 따위는 미처 의식하지도 못했다. 그저 누군가의 입에서 무심코 흘러나왔고,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그리고 선생님들을 하나씩 불러 반말로 그동안 궁금했던 질문들을 던지기 시작했다. 신설학교인 만큼 젊은 2,30대 선생님들 역시 우리의 특별한 수학여행을 위해 기꺼이 동참해 주셨고,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어 선생을 불렀다. 그 여선생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딱히 발톱을 드러내지는  못했다. 알잖은가, 기껏해야 반말 조금 지껄인 걸 가지고 쪼잔하게 굴 일이 아니라는 것을.


하지만 그녀의 쪼잔한 발톱은 수학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드러났다.

처음 그녀는 반장인 내 친구를 불러 주동자의 이름을 추궁했다. 물론 그게 누구인지 따위는 기억할 리 없었다. 반장은 우리에게 와서 그 사실을 통보했다. 누구인지 자수하지 않으면 반 전체에 불이익이 가해질 것이라며 색출작업이 시작됐다.

"어쩔 거래?"

"기말고사 점수를 반 전체 감점할 거래."

잔인하지만, 마녀는 우리가 무엇에 가장 취약한 것인지를 알고 있었다.

모두들 점수 몇 점을 날리지 않기 위해 그날의 일들을 기름 짜내듯 복기하려 했고, 누군가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려진 이름들은 하나씩 옥상행이었다. 마녀도 안 것이다. 그런 일 따위를 교무실에서 떠벌리면 자신이 얼마나 쪼잖은 인간이 되는지를.

그래서 옥상으로 불려 간 아이들은 굴욕적인 마녀의 배설을 견뎌야 했고, 평소 문제아로 일컬어지던 그 아이들의 보스역을 자처하고 있던 반장이 나서서 중재에 들어갔다.

2학년이 되면서 그들 중 하나는 남자친구를 따라 서울로 가기 위해 학교를 자퇴했다. 알잖은가, 어느 학교나 남자에 눈먼 애들 하나쯤은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을, 그런 일쯤은 암것도 아니라는 것을.


별일은 학교를 졸업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 친구로부터 들은 얘기였다.

부모님 모두가 공무원이라 보수적이셨던 친구는 서울로 올라오지 못한 채 지방의 국립대학 사범학교에 입학을 해야만 했다. 아빠의 빚잔치를 하고 엄마와 단둘이 서울로 올라와야만 했던 나는 몇 번인가 고향이랍시고 내려가 그 친구를 만나곤 했다.

"걔들은 어떻게 지내?"

무심코 야자타임 주동자들의 안부를 물었다. 서울로 남자친구를 따라 올라간 애는 그나마 잘 살고 있노라 했다.  

"이랑이는 ㅇㅇ호텔 소속 콜걸로 일해."

"걔가 왜?"

뒤늦게 공부해서 그나마 전문대라도 들어갔던 애였다. 집안 형편도 괜찮았고, 예쁘장하니 눈웃음치던 눈매가 호감이 가는 얼굴이었다. 그게 오히려 문제였나?

여하튼 내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하지만 내가 알 수 없는 세계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너를 데려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토요일 밤이면 어둠 속으로 사라지던 친구가 막연히 밤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었듯, 나 역시 그런 곳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듯 가보지 않은 길이란 있기 마련이었다.

친구 역시 사범대를 나왔으니 키팅 선생과 같은 길을 가고 있을지 밤의 경계에 있다 그 세계로 빠져들었을지 잘 모르겠다. 아니면 아직도 낮과 밤의 경계를 서성이고 있을지도.


학교를 떠나게 된 키팅 선생은 자신의 소지품을 챙기러 교실로 들어선다. 임시수업을 맡은 교장은 학생들이 찢어버린 서문을 다시 가르치는 중이다.

교실을 나서는 선장을 향해 야성을 드러낸 토드가 책상 위로 올라간다.

오 캡틴, 마이 캡틴!

토드를 이어 하나씩 하나씩 책상 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그들은 선장을 향해 경의를 표하고 선장은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하지만 세상이 늘 그렇게 돌아가듯 책상 위로 오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인 학생들도 반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물론 그들도 책상 위에 오르지 않을 권리쯤은 가지고 있다. 비록 그것이 비굴한 선택일 망정 선택은 선택인 것이다.

단, 그 선택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된다는 전제가 따라야 한다. 그게 콜걸이든, 우리의 항해를 이끌어줄 선장이든 결코 누군가를 해치지 않는 방식이어야만 하는 것이다. 비굴할지언정 결코 비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믿음 없는 자들로 이어지는 도시, 바보들로 넘쳐흐르는 도시,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을까   

대답은 한 가지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

화려한 연극이 계속되고,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과연 이 시대에 시는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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