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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편 Feb 24. 2024

가버나움: 자신을 위로하는 성전

원더풀 라이프


제 부모를 고소하고 싶어요.

루미에 소년 교도소에서 아동학대를 다루는 생방송 도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우리는 잠시 여기서 숨을 골라야 한다. 자그마치 부모다. 부모라는 전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강요받아온 우리로서는 그 숭고한 대상을 향해 손가락을 겨눈다는 것은 돌로 쳐 죽일 놈의 일이다. 그렇더라도 백 번 양보해서 이유라고 알고 보자.

"왜 네 부모를 고소하겠다는 거냐?"

바로 그 물음에 관한 진실, 영화는 절대 직시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비추고 있다.

나를 태어나게 해서요.

깡마르고 왜소한 아이가 늘어진 속옷만 걸친 채 온전히 카메라의 피사체로 노출돼 있다. 유치가 다 빠졌으니 적어도 열두 살은 되었으리라 의사는 추정한다.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아서 자신의 나이조차 정확히 알지 못하는 소년 자인, 그가 우리 앞에 서 있다. 당혹스럽다. 유교권 국가에서 자라나 오롯이 교육의 힘만으로 선진국에 진입해 있는 대한민국의 관객으로서는 이렇듯 미개하기 그지없는 환경이 낯설기만 하다.


"학교는 뭐 하러 간다는 거냐?"

"어렵게 생각할 거 뭐 있어. 학교에서 음식도 주고 옷도 준대."

자인은 어쩌면 그렇게 학교로 보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바닥은 허구의 세계가 아니다. 레바논의 현실은 그들을 어떤 심층까지 떨어뜨릴 수 있는지 조명하고 있다.

물탱크에 물을 채울 때마다 방으로 흘러내려서 물을 퍼내야 하는 자인의 엄마는 늘 징징거리며 자신이 왜 이런 지경에 처해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무기력한 아버지는 자식을 창조하는 일 외에 아무런 행위를 하지 않는다. 방안에는 그가 창조해 낸 아이들이 한가득이다. 그 어린애들이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는 방식은 각자 거리로 나가 음료 따위를 파는 행위이다. 그것도 모자라 아들인 자인은 오후에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진열하거나 배달 심부름을 한다. 그런데도 하루가 멀다 하고 태어나는 생명을 다 먹여 살리기에는 역부족이다.

자인은 위조된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마약류의 약을 처방받고 엄마는 그것을 빻아 물에 타서 옷에 적신 뒤

교도소에 있는 아들에게 넘긴다.

"옷을 쥐어짜느라 손이 너덜너덜 해졌어요.

"특제 주스가 고깃값보다 비싸네."

그들은 서로 환한 웃음을 교환한다. 열심히 살아내고 있다는 존재 증명은 그렇게 불법으로 얼룩져 있다.


"계집년이 책은 읽어서 뭐 하게?"

동생인 아들에게는 각종 권투 글러브며 야구글러브, 축구공 따위를 사주시는 아빠가 늘 내게는 인색하게 구셨다. 서러움이 북받쳐 하루종일 흘러내린 눈물로 눈꺼풀은 퉁퉁 불있었다. 계집애가 집구석에서 눈물이나 쥐어짜고 있으니 되는 일이 없다며 밥상을 엎어버렸다. 돈에 관해서라면 짠내 나는 엄마가 조용히 손에 지폐를 쥐어주셨다.

난생처음 가 본 서점에는 너무나 많은 책이 쌓여 있었고 나는 뭘 골라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눈앞에 공주 그림 하나가 보였다. <백설공주> 나는 조심스레 그 책을 추켜들었다. 첫 투쟁의 대가였다. 나는 그 책이 닳고 닳도록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쁜 마녀가 헤치려 하지만 결국 왕자님을 만나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는 꿈만 같았다. 그렇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용궁에 있는 어느 여왕처럼 돋보이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누구에게도 함부로 여겨지지 않으며 순수하게 빛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 원죄가 너무 컸다.

"네 년이 뱃속에 들어서는 바람에 나가지도 못하고 당한 시집살이 징글징글하다."

잘못도 없이 매로 온몸을 얻어맞고 있으면 옆집 아줌마까지 거들었다.

"어머! 기집애가 저렇게 고집이 세서 어디다 써? 없이 살면서 나긋나긋한 맛이라도 있어야지. 잘못했다고 빌면 끝날 것을 쯧쯧."

동네북이었다. 부모가 북을 치듯 두들겨 패니 이웃들도 덩달아 두들겨댔다. 매를 맞는 것보다 그게 더 아팠다. 모멸감. 그때는 그런 단어를 알지도 못했지만 내가 울었던 것은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치욕스러운 모멸감 때문이었다.

"누나야, 빨리 잘못했다고 해."

하지만 나는 어떤 오류도 범하지 않았다. 오류를 범했다고 한들 고작 국민학교 1학년 짜리 아이가 얼마나 잘못을 했길래 몇 시간 동안씩 매를 맞아야 했을까.

학교에서 돌아오면 참고서를 펴놓고 숙제를 하고 받아쓰기는 선생님이 불러주시기도 전에 이미 끝나 있었다. 또래의 애들이 범할 수 있는 사소한 잘못조차 저지르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다. 가난하고 무지한 집 계집애가 너무 꼿꼿한 허리를 갖고 태어난 것이다.


여동생 사하르가 생리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고 자란 자인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저 사람들이 왜 여기에 와 있죠?"

자인이  하는 가게의 사장 아사드가 아버지를 대동하고 집에 와 있다. 평소 사하르에게 눈독을 들이며 사탕을 쥐어주던 그가 불과 열한 살짜리 어린아이와 혼인이라는 거사를 치르겠다며 들이닥친 것이다. 집세조차 내지 못하고 살던 부모로서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닭을 주고 사하르를 데려가려는 거겠죠."

"네 동생들이랑 신을 걸고 맹세하는데 오해야."

오우 마이 ! 그들의 신이 얼마나 허술한 존재인지 엄마는 거짓을 말할 때마저 신을 들먹인다.

자인은 사하르를 데리고 지옥에서 탈출하려던 계획에 실패하고 혼자서 버스에 오른다. 할머니집으로 가던 도중 옆자리에 앉은 스파이더맨의 사촌 바퀴맨 할아버지를 따라 놀이공원에서 내린다. 일자리를 구해보려 하지만 열두 살인 자신의 나이보다도 어려 보이는 체구의 자인에게 어떤 일도 주어질 리가 없다.

그나마 관심을 보이는 라힐을 뒤따라 가며 먹을 것을 구걸하지만 그녀가 끌고 가는 장바구니에는 몰래 숨겨놓은 아기 요나스가 들어 있을 뿐이다. 불법체류자로 아기를 뺏길까 봐 노심초사하던 그녀는 자인에게 요나스를 맡기고 일터로 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의 위조된 체류증 만기일이 다가오고 새로 체류증을 위조하기 위해서는 1500달러가 필요하다. 단, 아들 요나스를 넘겨준다면 그 돈은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내 아이는 내가 먹이고 입힐 거예요."


가출을 결심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옷보따리를 싸들고 도로까지 나가 사방을 둘러보았다. 차들이 내 앞에서 쌩쌩 내달렸다.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울타리가 없는 거리에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구덩이의 정체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다.

"넌 아무 데도 못 가."

주인집 중학생 아들이었다. 그가 이죽거리며 내 팔을 붙들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내 힘으로 벗어날 수 없으리라는 것을 몇 차례의 경험으로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집에는 나를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아빠는 자인의 아버지와 달리 가만히 있지 못하는 분이셨다. 막내아들인 그를 손위 형제들은 가죽을 벗긴 뒤 살을 바르고 마지막 한 점까지 핥고 나서 뼈다귀를 토해냈다. 도륙이 끝나고 너덜거리는 살림살이로도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는 유교적 맹신으로 본인의 가족 따위에는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오직 예외는 자신의 뒤를 이을 아들에게만 향해 있었다.  

물론 엄마도 바쁘셨다. 이미 아빠에게서 마음이 떠난 엄마는 사내들의 팔을 붙들고 춤도 춰야 하고, 그곳에서 만난 남자들과 애정행각도 벌여야 했다.

"네년 성질머리가 더러워서 그래."

내가 이상증세를 보였던지 딱 한 번, 엄마가 신경정신과에 데리고 갔었다. 부모에게 외면당한 나는 어느 누구도 믿지 않았다. 입을 다물었고, 의사는 내게서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었다.  

동생은 골목을 누비며 구슬치기를 하느라 바빴다. 빈집을 지키고 있는 나는 그 감정들의 하수구였다. 모든 오물들이 내게로 와서 쌓였다. 심지어 주인집 아들의 정액까지도 내게로 쏟아졌다.

"네 엄마도 그 짓거리 하러 갔어."

내가 얼마나 만만한 아이인지, 함부로 굴려도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 않을 존재인지, 건드려도 되는 물건인지, 그 빡빡이 어린놈도 알고 있었다.

온몸에 분노가 치밀었다. 더 이상 공포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눈물이 솟구친 것은 순전히 분노 때문이었다. 그 분노들이 끌어올라 내 눈을 통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사지를 허우적거리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가 내 입을 틀어막았지만 분노와 함께 터져 나오기 시작한 괴성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목을 물린 채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날것의 소리가 내 목구멍을 타고 빈집에 울려 퍼졌다. 나조차 더 이상 나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슬그머니 틀어막고 있던 손을 풀었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내 몸에 들어 찬 독기는 가시지 않았다. 그를 쏘아보며 이글거리는 눈길로 한 없이 그를 찔렀다. 독사의 몸뚱이처럼 내 몸을 감싸고 있던 팔과 다리가 멀어져 갔다.

그리곤 근처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한동안 심장이 두근거리는 불안은 계속됐지만 곧 평화가 찾아왔음을 깨달았다. 두 번째 투쟁의 승리였다.  


"왜 여기 있는 줄 아니?"

재판석에 앉은 판사가 자인에게 물었다.

제가 어떤 개자식을 찔렀거든요.

라힐은 손님이 남기고 간 케이크를 가져다 촛불을 밝혀준다. 자인은 촛불을 끄며 행복한 웃음을 짓는다. 고작 열두 살짜리의 천진한 표정을 짓던 어린아이가 왜 어떤 개자식을 찔러야만 했을까?

아들 요나스를 자인에게 맡기고 외출한 라힐이 사라졌다. 요나스는 배가 고파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 자인은 아기의 울음을 멈추게 하려 안간힘을 다해보지만 그도 고작 열두 살짜리 아이에 불과하다. 대체 라힐은 아들 요나스를 버려두고 어디로 간 것일까?

어린 요나스를 안고 그녀를 찾아 나선 자인은 시장에서 가게를 하며 신분증을 위조해 주던 아스프로를 알게 된다. 라힐에게 그러했듯 요나스를 넘기면 그를 외국으로 보내주겠다며 유혹의 손을 내민다. 자인이 인간이라는 증거, 신분증만 가져오면 이 지긋지긋한 거리를 벗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자인은 자신을 증거 할 출생증명서를 찾아 다시 집으로 향한다. 검은 상복을 입고 있는 엄마와 마주한 자인은 출생증명서를 들먹인다. 아버지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며 서류통을 들고 나온다. 퇴거 통보서, 병원에서 받은 서류... 하지만 출생신고조차 하지 않은 자인의 출생증명서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우린 그저 벌레야, 기생충이지. 서류 없는 삶을 인정하고 살든지, 창밖으로 뛰어내리든지 둘 중 하나야. 널 낳은 인간들은 저주를 받아야 해."

"누가 병원에 갔는데요?"

자인은 여동생 사하르의 죽음을 알아차린다. 부엌의 칼을 쥐고 질주하던 자인이 얼굴에 피를 묻힌 채 체포된다.

열한 살이 결혼할 나이인가? 판사의 물음에 휠체어를 타고 나타난 사하르의 남편은 이미 꽃이 피었으니까 그래도 되지 않느냐는 대답을 한다.

"사하르가 감자냐? 아님 토마토야? 꽃이 피게."

감자도 토마토도 아닌 사하르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는 바람에 임신중독으로 하혈을 하다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그것이 딸의 행복을 위해서였다고 항변한다. 적어도 침대에서 잘 수 있지 않느냐.

"아들이 사람을 찔렀는데 제가 행복할까요? 저도 이렇게 나서 자랐을 뿐이에요. 가정을 꾸린 걸 후회합니다. 제 인생을 망쳤으니까요."

함부로 태어나 세상에 버려지는 존재들, 그들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것이다.


"신은 하나를 거둬가면 다시 하나를 주신단다."

면회를 온 엄마는 다시 임신 사실을 알린다. 오우 마이 ! 그놈의 신은 왜 이리도 잔인한가.

"엄마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찌르네요."

교도소에서 텔레비전을 보던 자인은 아동학대를 다루는 생방송 도중 전화를 건다.

애들을 돌보지 않는 부모가 지긋지긋해요. 사는 게 개똥 같아요. 내 신발보다 더러워요. 지옥 같은 삶이에요. 인생이 거지 같아요. 자라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었어요. 하지만 신은 그걸 바라지 않아요. 우리가 바닥에서 짓밟히길 바라죠. 뱃속의 아이도 나같이 될 거예요. 애를 그만 낳게 해 주세요.

"더 이상 애를 낳진 않을 것 같네요."

판사의 대답이다. 그들의 부모가 어떤 판결을 받게 될지 가늠하게 된다.

불법체류로 교도소에 붙잡혀 있던 라힐은 고국으로 돌아가던 출국장에서 극적으로 요나스를 찾게 되고 아기를 끌어안는다.  


내게도 잠시나마 평화가 찾아왔다. 도륙을 당하셨던 아빠의 뼈에도 새 살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성실함만은 따라올 자가 없었고, 살림살이가 나아지자 무리였지만 집을 사 이사도 했다.

알고 싶은 게 많았던 나는 공부라는 게 그리 어럽지 않았다. 숙제를 마치고 나면 엄마가 사주신 동화책 전집을 펼쳐놓고 가만히 앉아 책을 읽곤 했다. 계몽사 아저씨 덕분이었다. 책 판매원들이 각종 전집 카탈로그를 들고 집집마다 계몽을 하러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전집의 할부금이 끝나갈 즈음이 되면 어김없이 계몽사 아저씨가 집으로 찾아왔다. 비좁은 방에는 책장이 놓였다.

내가 가장 빛나던, 화양연화와 같은 시절이었다.


가버나움, 신이 축복을 내렸으나 그들의 어리석음으로 다시 축복을 거두어들인 땅 가버나움의 어원은 자신을 위로하는 성전이라 한다. 과연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은 위로받고 있는가?


이 글을 시작하면서 가슴속 깊이 파묻혀 있어서 풀어내야 할 말들이 많았다. 그런데 역시 감정이 추슬러지지 않아 오늘은 이만 접으려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상처를 들추어내는 일이란 역시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저 다음 편에 조금 더 감정을 다잡고 마음이 안정돼서 정작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얘기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다음 편 읽으라는 협박은 이렇게 하는 거다.

물론, 농담이다. 너무 어두운 글이다 보니 이렇게라도 농담으로 맺어야 할 것 같았다.


자인은 처음 영화가 시작되던 때와 같이 다시 카메라 앞에 피사체로 노출돼 있다.

웃어 자인. 사망 진단서가 아니라 신분증 사진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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