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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편 Jan 20. 2024

안녕, 소중한 나의 아저씨

원더풀 라이프


나의 아저씨가 떠났다. 머릿속이 하얘지더니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하필이면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다시 책장에서 꺼내 읽던 무렵이었다.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하얀 어둠 속에 갇힌 채 눈이 멀어 버린 것만 같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황망한 마음에 무엇을 어찌해야 할 줄 몰라 넷플릭스 상자에서 <나의 아저씨>를 불러낸 채 멍하니 화면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몰입하지 못하고 무심히 흘러가는 장면들은 겉돌기만 했다. 그러다 중저음으로 흘러나오는 아저씨의 말이 송곳처럼 명치에 박혔다.

“너희들은 걔 안 불쌍하냐? 경직된 인간들은 다 불쌍해. 살아온 날들이 말해 주잖아. 상처받은 아이들은 너무 일찍 커 버려. 그게 보여. 그래서 불쌍해. 걔의 지난날들을 알기가 겁난다.”


불현듯, 이제는, 나의, 아저씨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슴에서 멍울이 되어 치받더니 목울대를 타고 넘어왔다.     


처음 <나의 아저씨>가 방영되기 시작하면서 텔레비전을 잘 켜지 않는 나는 늘 그렇듯이 나의 아저씨를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드라마가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역시 그저 세간의 시선을 끄는 정도로만 여겼다. 여주인공 지안과 아저씨의 관계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면서 미소녀에 대한 성적 욕망을 다룬 소설에서 비롯된 ‘롤리타 콤플렉스’ 논란에 휩싸일 때조차 가십거리 정도로만 일축한 채 내 관심사가 되지는 못했다.

그러던 것이 드라마가 끝이 난지 2, 3년이 지나고 누군가로부터 인생 드라마였다는 얘기를 들었다. 세상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인생 드라마 운운은 내 귀를 솔깃하게 했고, 그제야 나는 넷플릭스 상자에서 빛바랜 ‘나의 아저씨’를 끄집어냈다.     


“건축사는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구조기술사는 그 디자인대로 건물이 나오려면 어떤 재료를 어떻게 만들어야 안전한가 계산하는 사람이고, 말 그대로 구조를 짜는 사람.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 있으면 버티는 거야.”

주인공 동훈의 직업은 건축구조기술사이다. 건물의 구조적 안정성을 평가하는 업무는 윤리적 직업의식을 요구하고 그의 올곧은 성품과 맞닿아 있다.


그런 동훈을 시험하듯 그에게 오천만 원 상당의 상품권이 잘못 배달돼 오고 그로부터 빚어지는 해프닝으로 드라마는 시작된다. 직장 내 권력을 차지하려는 그저 그런 암투를 명품화시킨 것은 동훈이라는 인물이 보여주는 갈등으로부터이다. 형제들의 경제난까지 책임지고 있는 그로서는 잠깐 상품권에 대한 유혹을 느낀다. 그런 허점을 비집고 들어오는 말단 비정규직 사원 지안과의 에피소드는 주인공의 절대 선이라는 공식을 깨고 인간이 얼마나 허술한 존재인가를 엿보게 한다. 

하지만 동훈은 이내 자신의 본성인 선으로 무게추를 옮기고, 그 과정에서 어려운 지안의 가정환경을 알아차린다. 어린 나이에 부모의 빚을 떠안고 말조차 하지 못하는 할머니의 손에서 길러지던 지안은 사채업자가 할머니에게 폭력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그를 죽이게 된다.

이후 사채업자의 아들이자 어릴 적 지안의 친구였던 광일은 지안에게 빚 독촉을 한다는 명분으로 주변을 맴돌며 그녀를 모질게 괴롭힌다.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 확 죽여버릴까. 그냥 내가 죽어버릴까.” 

광일도 자신이 지켜주고 싶어 했던 여자아이와 아버지를 죽인 살인자로 탈바꿈한 지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애증으로 갈등하는 인물일 뿐 절대 악의 존재는 아니다.

그렇듯 이 드라마에서는 누구도 절대 선일 수 없으며 절대 악일 수 없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삼 형제 중 일찌감치 명퇴당하고 사업 전선에 뛰어들었다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고학력 빙신 중 첫째 상훈, 떠오르는 신예 영화감독이었으나 첫 장편 데뷔작이 흥행과 작품성 모두 참패하고 반백수로 지내는 막내 기훈, 그들의 무게까지 감당하느라 휘청이는 둘째 동훈은 그래서 늘 지친 모습을 하고 있다. 

“현실이 지옥이야. 여기가 천국인 줄 아냐.”

그의 아내는 자신보다 형제들이 우선인 남편을 견디지 못해 동훈의 회사 상사이자 대학 후배와 바람을 피운다.

 “다들 평생 뭘 가져보겠다고 고생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데 뭘 갖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뎌 무너지고,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 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깨진 채 금이 갔을망정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고 싶어 하는 동훈은 이미 선을 넘어버린 아내를 내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채 버거운 일상을 이어간다. 퇴근하고 나면 친구와 형제들이 있는 사랑방 <정희네>는 그래서 더욱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후계동 길목에 버젓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희네는 그렇듯 고단한 하루를 보낸 사내들이 하나둘 모여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녹록지 않은 일상을 털어내는 아지트이다.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여주인장 정희는 그런 친구들을 맞이하며 혼자만의 외로움을 달랜다. 

그렇듯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주며 힘겹게 버티는 그들의 모습에서 우리네의 현실과 다른 모습을 엿보게 되는데, 바로 그들 각자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우리를 이루고 있다는 지점이었다. 그런 드라마를 마주하며 ‘나도 저 판때기에 끼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때면 이내 시린 가슴 한구석에 훈훈한 온기가 돌고 벼린 날이 누그러지곤 했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을 지안의 불만 가득 찬 눈초리는 젊은 날의 나를 고스란히 가져다 놓은 듯했다. 없는 게 차라리 나았을 법한 부모, 울타리 없는 세상을 혼자 싸우며 버텨야만 했던 어린 날, 상처받아서 일찌감치 커버렸던 아이, 그게 나였다. 

하지만 지안과 달리 내게는 살아오는 내내 ‘나의 아저씨’ 따위는 없었다.     

   



“왜 그렇게 얼굴이 어두워? 뭐 걱정거리 있으면 편하게 말해.”

설마, 설마, 설마마, 했지만 결국 또 올 게 오고 말았다.

댁들이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내 얼굴을 구겨놓은 거잖아.

사장에게 그런 항변을 쏟아내고 싶었으나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테이블에는 주머니에서 함부로 꺼낸 돈뭉치가 올라와 있었다.

“돈이라면 말만 해.”

돈으로 말할 것 같으면 물론 사는 동안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곳에 그딴 식으로 놓여 있을 때는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정액이 묻은 것 같이 불결하기 그지없는 쓰레기 더미에 불과했다.

미심쩍은 직원들 일로 물어볼 게 있다며 조용히 나오라고 불러내더니 역시나 그런 말 따위는 언급할 리가 없었다.

“부담 가질 것 없어. 그냥 나랑 여행이나 좀 다니고 말벗이나 해 주면 돼.”

간신히 어거지로 눌러 앉히고 있던 엉덩이가 스프링처럼 튀어 올랐다.

“좋아. 오백 세잔만 마시고 가자.”

첫 잔은 원샷, 둘째와 셋째 잔은 투샷으로 깔끔하게 마무리지었다. 지금이야 숨이 차서 엄두도 못 내는 일들이 젊음이라는 마법의 에너지 속에서는 가능했다. 그것도 빨리 자리를 모면해야 할 구역질 나는 상황이라면 가속도는 더해지기 마련이었다.

호프집 문을 박차고 나와서 택시를 잡았다. 기어이 택시에까지 올라탄 나의 개 같은 아저씨는 내가 취기로 의식을 잃고 정신줄을 놓기를 바라마지 했을 테지만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일이었다.

“너, 굴러온 복을 찬 거다.”

“사장님 실수하신 겁니다.”

집으로 가는 동안 팽팽한 신경전이 오가고 택시 기사는 백미러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사장으로서는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나는 비로소 집 어귀에서 내릴 수 있었다.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간신히 언덕을 기어오르다시피 지하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암전(暗轉), 불이 꺼졌다. 나는 또다시 마음의 빗장을 걸고, 집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매번 저잣거리에 벌거벗겨진 채 서 있는 것 같아 한없이 몸을 웅크린 채 숨죽여야 했다.

세상 누구도 내 편이 아닌 절망감, 위로가 되기는커녕 모진 말로 나를 들쑤셔대던 나의 개 같은 아저씨, 아줌마들, 무기력한 나를 탓하던 가족들, 지나온 날들은 길고 긴 터널이었다.

더 이상 이 판때기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나이 들 거 생각하면 끔찍하죠?”

정희네의 여주인 정희가 지안에게 묻는다.

“저는 빨리 그 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인생이 덜 힘들 거잖아요.”

그랬다. 나는 지안의 말처럼 나이 들수록 세월이라는 더께를 뒤집어쓰고 맷집이 생기면서 인생이 조금은 덜 힘들어졌다. 한 아이라는 생명의 울타리가 되어야 했던 굴레는 나를 단련시켰다.

“엄마 늙어서 아무도 안 쳐다봐.” 

그렇게 훌쩍 시간이라는 무기는 늙음을 선사해 주었다. 

그런데도 상처 입고 가슴에 상채기가 날 때면 텔레비전을 켜고 넷플릭스를 뒤져 나의 아저씨를 만났다.  

   

지안이 빚 때문에 범죄에까지 연루된 것을 알아차린 동훈은 사채업자 광일을 찾아가 지안의 빚이 얼마인가를 묻는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 삼 형제야. 삼 형제는 숟가락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장난 아니게 싸워. 맷집 장난 아냐. 그러다 스무 살이 되면 싸움을 안 해. 왜 안 하는 줄 알아? 내 펀치가 장난 아니구나. 이러다 누구 하나는 죽겠구나.” 

그들은 뒤얽힌 채 서로를 향해 주먹을 날린다.

“왜 애를 때려?”

“그년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까.”

“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팬 새끼들은 다 죽여.”

동훈의 이야기를 도청해 듣고 있던 지안은 난간을 붙들고 통곡하기 시작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아저씨의 한마디에 그녀를 감싸고 있던 적의가 무장해제 되는 순간이다.

후계동 주민들은 동훈이 누군가에게 공격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삽시간에 아저씨를 구하러 몰려간다.     


“별 볼 일 없다 싶으면 빠르게 왕따시키는 직장 문화에서 스스로 알아서 투명 인간으로 살아왔습니다. 회식 자리에 같이 가자는 그 단순한 호의의 말을 박동훈 부장님한테 처음 들었습니다. 박동훈 부장님은 파견직이라고, 부하직원이라고 저한테 함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좋아했나?” 

“좋아합니다. 존경하고요. 무시 천대에 익숙해져서 사람들한테 별로 기대하지도 않았고, 인정받으려고 좋은 소리 들으려고 애쓰지도 않았습니다. 근데 이젠 잘하고 싶어졌습니다. 제가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어쩌면 지탄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 오늘 짤린다고 해도 처음으로 사람 대접 받아봤고, 어쩌면 내가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해 준 이 회사에 박동훈 부장님께 감사할 겁니다. 여기서 일했던 3개월이 21년 제 인생에서 가장 따뜻했습니다.” 


그런 아저씨를 떠나보내야만 한다. 그토록 사람들을 배려하고, 드라마 속의 아저씨처럼 따뜻하고 소탈해 보이던 배우 이선균이 생의 너머로 사라졌다.     


     



개 같은 나의 아저씨, 사장이 운영하던 가게는 5층 건물 통째가 횟집이었다. IMF 직후라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 카운터 모집 공고에 무턱대고 이력서를 냈다. 횟집은 내 주머니 사정과는 달리 연일 손님들로 북적였다. 활어가 양식화되면서 광어회가 대중들의 주머니를 마구잡이로 벌려놓던 무렵이었다.

1층은 단체석, 2층은 칸막이의 온돌방 구조였고, 3층은 참치회를 찾는 VIP 공간으로 홀의 바와 다다미방이 분리되어 있었다. 낮에는 바의 불을 끈 채 다다미방 안으로 한두 팀의 손님들이 드나들었는데 서빙을 보던 종업원이 사라지고 나면 그 공간에서 손님들과 이만저만한 역사가 이루어지는 일도 있곤 했다.

1, 2층이 만석에 이르면 4층이 오픈했다. 주말 초저녁이면 5층까지 만석을 이루었다. 사장은 그런 날에만 손을 보탰다. 그 손놀림으로 5층 건물을 세우고 돈을 쓸어 담은 칼잡이니 직접 보지는 않았어도 손재간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그날도 그런 주말 저녁 중 하루였다. 담당하던 4층 카운터에 서 있는데 젊은 청년이 자신보다 등치가 큰 여자를 둘러메고 화장실로 향하는 게 눈에 띄었다. 여자는 아예 몸을 가누지 못한 채 청년의 몸에 업히다시피 다리를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분명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서빙을 보던 언니에게 카운터를 맡기고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노크를 했다. 제일 구석의 화장실이 오래도록 문을 잠근 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계속해서 문을 두드려도 기척이 없었다. 세차게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자 하는 수 없이 문이 열렸다. 미처 매무새를 수습하지 못한 여자의 속옷이 삐져나온 채 반쯤 가슴이 드러나 있었다.

“누가 경찰에 신고 좀 해줘요!”

나는 홀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자 친구가 취해서 좀 도와주려 했던 것뿐인데 뭘 잘못했다고 그래요?”

사내는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여자의 입에서는 술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가 여자에게 손을 대지 못하도록 가로막은 채 몸을 일으켜 세우려 해도 바닥에 축 늘어진 채 꿈쩍을 하지 않았다. 

소란이 일자 직원들이 하나둘 몰려왔다 눈길을 피하며 사라졌다. 사장의 형이자 지배인 격인 부사장이 화장실로 들어섰다. 빤한 상황을 목격한 부사장은 내게 호통을 치며 청년이 여자를 업고 돌아가도록 길을 내줬다.

놓쳤다

“지들끼리 재미 좀 보겠다는데 니가 뭐라고 난리를 쳐?”

눈앞에서 뻔뻔스럽게 사라지는 범죄자의 뒤통수를 보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분노로 그날 많이 울었다.      


이후 한참이 지나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의 붐이 일었고, 그로 인해 세상의 성인지감수성은 많이 바뀌었다. 정치인이라는 자의 책에 버젓이 돼지 발정제 운운하던 시대는 지났고, 함부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폭력은 줄어 들었다.
하지만 권력이 대중에게 가하는 위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법이라는 잣대로 아무렇지도 않게 법을 무너뜨리며 망나니처럼 칼춤을 추는 것을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보기만 해야 한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빙신’일 뿐이다.     




문득 기자들 앞에 서서 날것 그대로 노출돼 있던 아저씨 이선균의 검은 낯빛이 떠오른다. 새카맣게 타들어 갔을 애간장이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그가 그토록 고통받는 동안 우리는 모두가 침묵했다. 국민의 알권리라는 명분으로 저잣거리에 세워 놓은 채 카메라를 들이대고, 법이라는 칼날로 그를 난도질하는 동안 우리는 그저 천박한 관음으로 흘끔거리며 팔짱을 끼고만 있었다.

나의 아저씨가 그토록 듣고 싶어 했을 단 한 마디조차 건네주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아무, 것도, 아니다.’
 

타인의 기쁨에는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슬픔에는 외면하던 세상 사람들에 익숙해 있던 나에게 아저씨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세계가 되고 말았다.

“다시 태어나면 이 동네에서 태어나고 싶어요.”

지안이 다시 태어나고 싶어 했던 후계동, 나의 아저씨가 태어나 훌쩍 중년이 되도록 떠나지 못했던 후계동의 주민들,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못하고, 함께 슬퍼하고, 자신의 품을 내어주던 너른 어른들이 살아가던 터,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이상사회였다. 연대야말로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 하나하나가 커다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다.

그러한 터전 속에 비로소 지안은 편안함에 이를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세상에서라면 다음 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후계동의 언덕 꼭대기 집이라도 좋으니 그곳에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 그런 세계는 없다. 우리는 불의에 맞서 작은 돌멩이 하나 던질 용기조차 없었다. 파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세상은 검은 침묵에 휩싸여 있다. 나는 무엇이든 해야 할 것만 같아 내가 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애도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함부로 아저씨를 입에 올리기에는 한없이 무거워지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래도 작은 짱돌 하나 던지는 심정으로 이 글을 갈무리하기로 했다.

다들 가슴에 짱돌 하나씩 품고 어둠 속으로 힘껏 던지기를 바라며, 그 돌들이 모여 거대한 탑을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는 심정이다. 그것이야말로 아저씨를 떠나보내며 용서를 비는 우리의 애도가 될 것이다.     

드라마 OST <어른>은 아저씨가 가는 길에 외치는 비명이다. 모두 마음속으로 함께 읊조리기를 바라며 가사를 음미해 본다.


고단한 하루 끝에 떨구는 눈물 난 어디를 향해 가는 걸까

아플 만큼 아팠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한참 남은 건가 봐

이 넓은 세상에 혼자인 것처럼 아무도 내 맘을 보려 하지 않고 

아무도     


눈을 감아 보면 내게 보이는 내 모습 지치지 말고 잠시 멈추라고

갤 것 같지 않던 짙은 나의 어둠은 나를 버리면 모두 갤 거라고     


웃는 사람들 틈에 이방인처럼 혼자만 모든 걸 잃은 표정

정신없이 한참을 뛰었던 걸까 이제는 너무 멀어진 꿈들

이 오랜 슬픔이 그치기는 할까 언젠가 한 번쯤 따스한 햇살이 내릴까.     


나는 내가 되고 별은 영원히 빛나고 잠들지 않는 꿈을 꾸고 있어

바보 같은 나는 내가 될 수 없단 걸 눈을 뜨고야 그걸 알게 됐죠.

어떤 날 어떤 시간 어떤 곳에서 나의 작은 세상은 웃어줄까?     



안녕, 늘 내게 위안이 되어 주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내게 위로가 되어 줄 나의 소중한, 아저씨.

한 번 안아 봐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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