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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유라 Sep 12. 2024

이화동, 깊은 언덕 집(창작소설)

7. 강남 아파트

7. 강남 아파트   

    

  동찬의 아파트는 서울 강남에 새로 들어선 단지 안에 있었다. 단비는 윤숙의 특별한 호의로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단비는 이전 명절 오후에 몇 차례 와서 놀다 간 적이 있어서 집이 낯설지는 않았다. 동찬은 단비와 모처럼 함께 지내게 되자 아빠 노릇을 해보고 싶은 기대가 컸다. 동찬은 일하는 아줌마가 잠깐씩 쉴 때 쓰던 방에 새로 책상과 침대를 들여놨다. 아침이면 만원 버스를 타고 한 시간씩 걸려 학교 가는 단비를 생각해서 동찬이 매일 단비를 학교까지 자신의 차로 데려다주었다. 동찬은 단비가 윤숙과 사는 것은 내켜 하지 않을지 몰라도 산동네를 벗어나 아파트에서 사는 생활 만큼은 좋아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무렴 꼭 그래야 했다. 동찬 인생에서 가장 큰 성취는 산동네에서 벗어나서 강남 아파트에 입성한 것이었다. 동찬은 그 혜택을 자신의 딸도 누리기를 바랐다. 

  단비 역시 처음 겪어보는 아파트 생활의 편리함이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샤워할 수 있는 목욕탕이었다. 안방에 온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티브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방에 있다가 티브이를 볼 때는 거실에 나온다는 것이 단비에게는 현대적인 생활 방식으로 보여 좋았다. 또 단비는 생애 처음으로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쟁반이나 상에 받쳐 들고 거실로 옮길 필요도 없이 곧바로 먹을 수 있는 주방 구조도 참 편리해 보였다. 산동네 집에서의 생활과 아파트 생활은 당연히 비교 불가였다. 그러나 단비는 산동네에서 살다 온 주제에 건방지고 당돌하게도 아파트가 제공하는 모든 편리한 생활에 엄청 감격하지는 않았다. 한 두달이 지나지 아파트가 제공하는 생활방식에 시큰둥해했다. 단비에게 아파트란 현대적이고 편리하지만, 멋대가리 없는 건물일 뿐이었다. 단비의 눈에는 아파트 건물 자체보다 아파트 단지가 더 멋없고 황량하게 보였다. 왜 아파트를 한, 둘이 아니라 삼, 사십 개씩 무더기로 촘촘히 모아서 단지를 만들어놓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단지 입구에는 효율성만을 강조해서 군대 막사처럼 지어놓은 상가 건물이 있었다. 거기다가 그 동네 거리 가로수들은 모두 나무 시장에서 막 옮겨 심어놨는지 아직 가지는 앙상해서 어색해 보였다. 몇 년 지나 나무들이 자라면 동네 풍경과 잘 어울릴 것도 같았지만 아직은 썰렁하기만 했다. 

  단비의 이런 감정을 모르는 동찬은 아침에 자신의 차로 강남 길을 가면서 길이 도시 계획에 따라 직선으로 바둑판처럼 뚫려 있어서 길 익히기가 아주 쉬운 동네라고 떠들어댔다. 그러나 단비 눈에는 비슷한 유행에 따라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건물과 아파트들이 늘어서 있어서 길 구별하기가 오히려 어려운 곳일 뿐이었다. 동찬의 눈에 그 동네의 모든 것이 좋아 보였던 이유는 장기적으로 그 동네의 자산 가치가 올라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찬은 일 때문에 정부 도시계획 관계자를 접촉할 일도 여러 번 있었고 많은 정보를 접했다. 돈이 앞으로 어디로 모이는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강남 아파트 단지를 바라보는 동찬의 얼굴엔 뿌듯한 미소가 절로 퍼졌다. 그 곳은 능력이든 운이든 뭔가 하나는 손에 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고, 어쨌든 아파트에 살면 손해 볼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단비가 모르는 세계였다. 동찬이 강남에 대해 갖는 자부심을 단비가 알 리가 없었다. 단비는 자신의 눈에 비친 아름다움을 기준으로 평가할 뿐이었다.      

  단비가 이사 온 후 석 달이 후딱 지나서, 겨울이 되었다. 몇 개월 지내보니 의외로 윤숙과 지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어차피 단비는 동찬의 집에 들어올 때 그 집을 '기숙사'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윤숙은 이 기숙사를 지키는 성질 더러운 사감 선생님일 뿐이었고, 단비는 조용히 지내면서 고등학교까지만 그곳에서 끝마치면 되었다. 윤숙과 단비는 한우리에 사는 사자와 호랑이처럼 서로가 알아서 피하니 큰 불편 없이 지내었다. 의외로 단비 눈에 거슬리는 것은 동찬이었다. 동찬은 아침마다 시간이 없어서 쩔쩔매면서도 온 식구를 불러 아침 식탁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그런데 단비는 아침 식탁에서 동찬과 얼굴을 맞대고 밥 먹는 것이 고역이었다. 김 여사와 살 때는 김 여사가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먼저 요기를 했고 단비는 등교 전에 혼자 밥을 먹었다. 김 여사는 단비가 밥 먹는데 일절 말을 거는 법이 없었다. 그렇게 지내온 단비에게 누군가의 잔소리를 들으며 아침밥을 먹는 일은 참으로 짜증 나는 일이었다. 윤숙은 동찬의 '드라마 속 보통 가정 흉내 내기'를 언제 그만두는지를 지켜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단비는 동찬이 밥상머리에서 하는 말을 듣는 것도 거북스러웠지만, 동찬이 말하는 것들은 대해 하나 같이 동의할 수가 없었다. 그 중에는 ‘좋은 학교’에 대한 기준도 있었다. 동찬은 B 여고가 나쁜 학교인 이유로 주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없다는 것을 들었다. K 고가 명문인 이유는 아파트 단지가 옆에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명문대학 진학률이라든가 학교 시설이나 분위기, 선생님들에 대한 언급은 그다지 없었다. 단비가 보기에 K 고등학교의 좋은 점은 학생들의 집과 학교와의 거리가 가깝다는 것뿐이었다. 학교와 집 사이에 빵집, 치과, 운동용품점, 문구점, 세탁소 정도밖에 없어서 학생들이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좋은 점을 늘어놓을 수가 없었다. 반면 단비가 한 번 가본 B 여고 근처엔 아파트는 없었고, 고만고만한 주택들이 모인 곳조차 별로 없었다. B 여고는 서울의 옛 도심 한복판에 있다 보니, 관공서나 공공건물, 화랑가와 연극 극장이 주변에 있었고 학교 뒤쪽으로 개발 제한 지역인 한옥 마을이 있었다. 단비는 동찬이 왜 입만 열면 위치를 들먹이면서 K 고등학교를 찬양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좋은 학교라는 게 좋은 학생들이 만든다는 거죠?“     

  단비는 동찬의 말에 언젠가 교무실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리고는 불쑥 뱉어봤다. 동찬은 쀼루퉁한 얼굴로 홍당무를 골라내고 있던 단비가 자신의 말에 대꾸를 하자 표정이 급속도로 밝아졌다.     

  "내 말이 그거야. 중상류층이 많이 사는 아파트 옆에 있는 학교엘 가야 대학을 잘 간다는 거지. 이 동네를 봐라. 좋은 학생들이 모여 있으니까 선생은 거저 유능한 선생이 되잖냐."     

  동찬은 단비가 B 여고가 아니라 신흥명문 K 고에 입학하게 될 것에 대해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과외 선생을 불러 공부시키기만 하면, 단비가 번듯한 대학 문턱도 사뿐하게 넘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 얼추 부모 노릇은 다 한 셈이었다. 동찬은 진심 그렇게 생각했다. 동찬은 아침 식탁에서 '물고기가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법', 그러니까 자신이 살면서 깨우친 삶의 지혜를 딸에게 넘겨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동찬이 깨우친 지혜란, 할 수만 있으면 무조건 강남에 발을 담그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장 최고가 아니더라도 강남에서 구르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최고가 된다고 계산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 대해 동찬은 의심하지 않았기에 사랑하는 딸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런 생각이 시대를 뛰어넘는 지혜는 아닐지라도 이삼십 년 안에서 한국에 사는 한 진리라고 봐도 될 것 같았다. 그것은 동찬의 막연한 생각이 아니라, 나라를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그들이 짜놓은 개발계획을 검토해서 내린 결론이었다. 동찬은 어느 정도 세상의 움직임을 내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성향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내다 볼 수 없었다. 단비는 강남 아파트의 미래 가치에 감격하기에는 어렸다. 단비는 아파트 단지 주변 건물들이 만들어낸 직선의 풍경에 감흥이 없었다. 단비에겐 황주미의 피가 반은 섞여 있었다. 동찬은 아침 식탁에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혼자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늘 그런 식이었다. 단비는 같이 살면서 동찬을 속속들이 알게 될수록 동찬에게 실망했다.      

  겨울 어느 오후, 단비가 거실로 나와 리모콘으로 티브이를 켰는데 마침 공항 국제선 출국장을 배경으로 동찬이 티브이에 나오고 있었다. 동찬은 보도 프로그램에서 사회 현상을 지적했다. 


  "여행 자유화 이후, 해외 관광 수지 적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무분별한 여행과 목적 없는 연수, 유학으로 인한 외화 유출은 국민 경제를 어렵게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단비는 리모콘을 든 채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고급 바바리코트를 입고 선 동찬은 '국제수지', '외화' 같은 어려운 말을 하고 있었다. 동찬의 모습을 보고 단비는 코웃을 쳤다. 윤숙과 단국이는 미국, 엘에이에 사는 윤숙의 여동생 집에 가서 한 달 정도 머무르려고 준비 중이었다. 동찬에게 자신의 가족이 하는 해외여행은 꼭 필요한 것이고, 남들이 하는 해외여행은 주제넘은 낭비였다. 단비가 티브이를 꺼버리자, 소파 뒤에 걸린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단비가 아파트로 이사 오자마자 동찬이 우겨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단비는 윤숙이 단비와 사진 찍기는 싫다고 말해 주기를 바랐는데, 무관심한 얼굴로 동의해 버렸다. 액자 안에서 동찬, 윤숙, 단국, 단비, 네 사람은 언뜻 보면 웃고 있었다. 하지만 단국이를 제외한 세 사람의 눈은 허공을 응시한 채 입꼬리만 말아 올려 웃고 있었다. 그 부자연스러움 때문에 사진 속의 얼굴들은 공포 영화 포스터 속의 인물들처럼 섬뜩했다. 단비는 사진 속의 동찬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단비는 자신이 이 집에 들어와 사는 것에 대해서 동찬이 흡족해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족 모두에게 방 하나씩 돌아가는 아파트와 자동차, 일하는 아줌마를 두고 사는 아내 그리고 건강한 딸과 아들, 동찬이 생각하는 완벽한 가정이라는 그림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동찬은 자신만만했고 의기양양했는데 단비는 동찬의 얼굴에서 그런 만족감을 읽어 낼 때마다 살짝 역겨움을 느꼈다.     

  겨울이 지나고 중학교 졸업이 다가올 즈음, 단비의 고등학교 배정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단비는 남녀공학인 K 고가 아니라 김 여사네 동네 애들이 가는 B 여고로 배정되었다. 강남 쪽에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많은 학생이 강북의 학교로 배정을 받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해만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동찬은 소식을 듣고 아침 식탁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혼자 화를 내다가 단비에게 꼭 전학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 단비는 특별히 K 고에 배정이 되기를 바란 적이 없었는데도, 막상 B 여고로 배정되었다는 통지서를 받아 들고 나니 실망스러웠다. 다만 단비는 괜히 공부 잘하는 학교에서 중간도 못 하는 것 보다, 좀 못 하는 학교에서 중간 정도라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냥 김 여사 집에서 살았으면 버스 타고 십 분이면 도착할 거리였는데, 동찬의 아파트로 들어오는 바람에 버스만 한 시간씩 타고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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